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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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도서출판 문예바다가 기획한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여섯 번째로 정복선 시인의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가 출간됐다.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한 정복선 시인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특유의 시적 감성으로 불교적 세계관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삶의 빛과 어둠, 있음과 없음,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마음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구도적 사유를 노래함으로써 시로 음악적 자서전을 쓰고 있다.
저자

정복선

-1948년전주출생
-전북대학교,성신여대대학원졸업
-1988년『시대문학』으로등단
-시집『종이비행기가내게날아든다면』『마음여행』『여유당시편』등7권
-영한시선집『SandRelief』
-평론집『호모노마드의시적모험』
-동인지『현대향가』제1-4집,『유유』제1집
-한국시문학상,한국꽃문학상대상등수상

목차

시인의말

제1부우주로부터시가쏟아져내렸다
구두화분한켤레
겨우살이
우주로부터시가쏟아져내렸다
죽로차竹露茶
무공적無孔笛
코르시카장인의칼
백조자리캠핑
향기를품는잔
마술사K
여유당與猶堂시편
1%,원초적인
페사와르시장의찻집

제2부바람이쓴글
운주사
바람이쓴글
타클라마칸
아무곳이나다도원
우전차雨前茶,어느것한가진들
달팽이집을지고
방초따라갔다가
일파만파一波萬波
종소리는어느깊이에서잠자는가
달에게묻다
노을강
북방긴수염고래가시인에게
빛나는선물
오래묵힐수록
창호지窓戶紙연가
나는영화다
헤밍웨이
트라우마
존재,주홍빛Vermilion
연기법緣起法

제3부꽃잎한켜
2악장
북카페,북스피리언스
붉은점모시나비·겨울잠
인디아,내마음의릴리프4
전주박물관에가면
기린봉1
덕진연못
히아신스꽃컵
기일아침
어버이날
어머니,그곳
춘포역
꽃잎한켜,하늬바람한줌
나도고향이되어간다
도라지꽃
영천사여영정餘影亭에부침
한파주의보
범종56점
가시연꽃도가시를거두고싶다
질마재에는신화가산다


제4부아다지오칸타빌레
마음여행,일년초
마음여행,파도타기
마음여행,황룡사터
마음여행,무너진탑
마음여행,만다라
감은사지삼층석탑
연꽃나루지기
안단테칸타빌레
뜨거운피다식었다
가을비가悲歌8
아다지오칸타빌레
이데아

서정抒情을향하다ㆍ젖은날개를햇살과바람에말리며저너머로

출판사 서평

오늘아침엔문득바람이되고싶었다.
이제그만이지구를떠나
어딘지모르지만본래있었던곳,
본래의존재혹은물질로되돌아가고싶었다.
그것이저어린멧새의깃털하나이거나,
수만광년저쪽‘우리은하’의
궁수자리나선팔에서흩날리는별빛이거나.
-「시인의말」

*
아픔도꽃이될수있다고생각한순간
아아픔은꽃이되었구나라고깨달았습니다
남들이몇십년걸려돌아올거리를
천만리나헤매어다녔습니다
너무많은것들을보았고숨쉬었습니다
이를테면바람의몸뚱어리와날카로운발톱
바람의머리칼과타오르는눈빛그리고들키지않게
둘러쓰는바람의망토까지도샅샅이뒤졌기에
바람,하면긴숨을토해내는것입니다
본것은안본것으로되돌릴수가없지요
있던것은영원한없음으로보내버릴수도없습니다
왜그토록오래아파야했는지
왜그토록덧문흔들어댔는지
핏방울마다피어난꽃숭어리
그것이그대가쓴혈서입니다
-「바람이쓴글」

*
느닷없이이가을아침에마음속악기하나있어
통주저음으로울린다해도

누가있어화답해주겠는가

대종천어디쯤에수장되었다는전설을따라
대종을찾고자해도쓰라릴뿐인화인火印의깊이
너무늦었다그종을금생에한번만더울리고싶은데,
흐르는피에방패가떠내려갈지경이었다는김부식의기록처럼
찢긴상처마다쏟아낸종소리의파편을주워서라도
복원하고싶지만

종이다시돌아오겠는가

이삶에이사하여당신들참고되게견디었다
사라져도무늬없는꽃잎과꽃잎들사이
무너진층계참에가랑잎이말라붙어간다
서리와파도가번갈아위문오는부두의,

사랑맺지못한어미의가락으로
이아침에악기하나울린다해도

세세토록따라울종소리는어느깊이에서잠자는가
-「종소리는어느깊이에서잠자는가」

*
꿈속에는온갖집들이있다살아본적도없고상상불가능한집들이다

때론철썩이는파도로둘러싸여있기도하고,휑뎅그렁한한옥,겹겹층층방안에정리되지못한짐들……가족이나친지,고인,낯선사람들이등장하는꿈속,매번다른,그렇게나많은나의집들속에거주하고있다니,중첩된삶의두루마리에찍힌고대문자같다

관사를전전했던유년의집은대체로학교크기만했고지붕은하늘만했다중학교에들어가니갑자기세계가구체적인마당이되었다어머닌더이상아버지의임지에안따라가셨고적산가옥에서시작된허술한무너진층계의나날들……과,결혼후,서울,내집까지의거리는삐뚤거렸고길었으나,

어딘가에는장미원이있었다……길잃기와길찾기의되풀이

다시시골학교같은전원주택,지붕에는천상열차분야지도의별자리들이새겨지고
나와나무들과별들은닮아가며,

언젠가는전생과후생의모든집에서저녁연기가피어오를것이다,
-「트라우마」

*
평생1악장은되지못했다
말앞세우기도하고
등뒤에숨기도하고
쪽동백그늘아래서휘적휘적
젊은낙서질이나하는동안
치맛자락을끌고서초원의새벽안개로가는
미망未忘,그달무리,
날아갈수있는것들은모두제자리를박차고날아갔다
아으병풍속기러기들처럼
3악장이시작되어도남은건몸살바람뿐
-「2악장」

*
젊은절망의책갈피에서늙은희망이숨죽인다

떠남이곧지루한순례인사람과머묾이곧이슬비인사람이

찻잔에발효시킨새를키우거나붉디붉은꽃잎의돛을띄우는사이

들어오는문은하나,나갈문은언제나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북카페,북스피리언스」

*
이바람과이햇살과,이대지의어둠을
온몸으로끌어안겠어,
이목마름을절룩거리며건너가겠어,

더이상그대를부르지도찾지도않고
더는절벽을깎아서그대와나의틈새를메우지도않고,

평생을기울여짠내촘촘한거미줄한채로
그대가흘려보내는마음의강물에그물을쳐서
반짝이는이슬에그냥젖겠어

그대떠나간마른풀더미,그겨울까지깊이깊이저장하겠어,
단일년의이쓰디쓴축복,정주定住의삶을오래오래기억하겠어,

저기,날아가는기러기떼좀봐
-「마음여행,일년초」

*
끝없이이어진지상의능선을따라서천천히날아오는내내,이삶의쓰고시고달고따가운맛을달래어가고있다.바람에노란은행잎처럼뒹구는신세의,청춘의겁없던화살들에서문득천둥벼락과비바람과꽃잎들을추억해내며,저기,과녁에서함초롬히이슬을머금고떨고있을,단한개의화살을찾으려지금시간여행중이다.두렵지만,지구를다녀가는한존재/존재자로서의신호를깜빡이며,밤하늘의별똥별처럼스러져가면서.
-「서정을향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