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인이며 수필가인 허창무 씨가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와 한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은 작품들을 묶어 첫 수필집을 펴냈다. 때로는 가족들과 화목하기도 하고 삐걱거리기도 하는 진솔한 고백을, 때로는 자연 속에서 고요히 젖어드는 상념을, 때로는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정치와 사회의 비리에 대한 비분강개를 매끄러운 문체로 잘 다듬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생활은 왜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엇박자였을까? 피차에 자존심 때문에 자신을 과장하거나 기만하는 행위로 상대편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열하고 위험한 짓이었던가!
이제부터라도 얄팍한 자존심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내에게나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사소한 행복감이나마 지닐 수 있으리라는 각성이 내 가슴을 처절하게 때렸다.
- 「콩국수」 중에서
그러나 나는 자식들에게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첫째는 생존단위 또는 생활단위로서 가족의 개념이다. 가족은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과는 살점을 떼어 줄 만큼 친하다가도 의가 상하면 그만이고, 배신을 당하면 그것으로 인간관계가 끝나지만, 가족관계는 죽자 살자 다투거나 의가 상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원위치로 환원한다. 문제는 원위치로 환원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성숙한 인격일수록 그 시간은 짧아진다. 그러나 미성숙한 인품, 뒤틀린 인격은 원상 복구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다 보면 아예 건너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일상의 불협화음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가정 행복의 관건이다. 그것은 상호이해와 양보의 미덕을 베푸는 것이다.
- 「나의 고희연」 중에서
봄철 날씨가 풀리면 두껍게 쌓인 퇴비더미에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곳에 가까이 귀를 기울이면 들릴 듯 말 듯 옷깃 여미는 소리가 난다. 액체가 기화되어 승천하는 소리는 귀 밝은 사람에게만 들린다. 그것은 우주와 교감하는 숭고한 합창이다.
- 「고향의 소리」 중에서
농촌의 삼라만상에 서설의 이부자리가 곱게 덮이면 마을도 긴 동면에 든다. 그렇지만 마당에서고 지붕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참새의 지저귐으로 동네의 생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녁이면 손전등을 들고 처마 밑에서 참새사냥을 하던 아이들이 참새 집에서 겨울잠을 자는 구렁이를 만지고는 혼비백산 소리치는 풍경도 옛 우리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볼거리였다.
이제 주인 잃은 집이 반이 넘었다. 그 정답던 소리도 점차 사라진다. 한 시대의 저녁 종소리만이 아득히 들리는 것 같다.
- 「고향의 소리」 중에서
나는 오늘도 그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까치와 딱따구리와 직박구리들이 노쇠한 나뭇가지에 앉아 통곡의 나무 대신 향수 어린 울음을 운다. 5월 훈풍이 불고, 주위에 수수꽃다리 향기는 그윽한데, 아아, 그 질곡의 시대에 질식했던 선열들의 통곡은 지금도 살구나무 꽃잎처럼 허공에 흩어진다. 그리고 곧 일제의 만행에 갈가리 찢어지고 피로 물든 수의를 걸친 애국선열들의 영상이 허공에 나타나,
- 흰 저고리 피로 물들어도 웃음으로 밝은 세상 꿈꾸리라. 죽어서도 차마 놓지 못할 광복의 그 찬란한 꿈
이라는 글자를 옥사 벽에 새기는 것 같다.
- 「서대문형무소와 통곡의 미루나무」 중에서
인왕산은 흰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늑한 잠에 빠져 있다. 이런 때는 실컷 늦잠을 자도록 놔둘 일이다. 심술궂은 삭풍이 가끔 산을 흔들어 댄다. 겨울바람은 사실 외로운 것이어서 산을 깨워 함께 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겨울바람은 이제 이별가를 부르며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겨울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계절이다.
- 「눈 오는 날의 풍경」 중에서
그런데 우리 부부생활은 왜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엇박자였을까? 피차에 자존심 때문에 자신을 과장하거나 기만하는 행위로 상대편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열하고 위험한 짓이었던가!
이제부터라도 얄팍한 자존심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내에게나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사소한 행복감이나마 지닐 수 있으리라는 각성이 내 가슴을 처절하게 때렸다.
- 「콩국수」 중에서
그러나 나는 자식들에게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첫째는 생존단위 또는 생활단위로서 가족의 개념이다. 가족은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과는 살점을 떼어 줄 만큼 친하다가도 의가 상하면 그만이고, 배신을 당하면 그것으로 인간관계가 끝나지만, 가족관계는 죽자 살자 다투거나 의가 상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원위치로 환원한다. 문제는 원위치로 환원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성숙한 인격일수록 그 시간은 짧아진다. 그러나 미성숙한 인품, 뒤틀린 인격은 원상 복구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다 보면 아예 건너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일상의 불협화음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가정 행복의 관건이다. 그것은 상호이해와 양보의 미덕을 베푸는 것이다.
- 「나의 고희연」 중에서
봄철 날씨가 풀리면 두껍게 쌓인 퇴비더미에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곳에 가까이 귀를 기울이면 들릴 듯 말 듯 옷깃 여미는 소리가 난다. 액체가 기화되어 승천하는 소리는 귀 밝은 사람에게만 들린다. 그것은 우주와 교감하는 숭고한 합창이다.
- 「고향의 소리」 중에서
농촌의 삼라만상에 서설의 이부자리가 곱게 덮이면 마을도 긴 동면에 든다. 그렇지만 마당에서고 지붕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참새의 지저귐으로 동네의 생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녁이면 손전등을 들고 처마 밑에서 참새사냥을 하던 아이들이 참새 집에서 겨울잠을 자는 구렁이를 만지고는 혼비백산 소리치는 풍경도 옛 우리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볼거리였다.
이제 주인 잃은 집이 반이 넘었다. 그 정답던 소리도 점차 사라진다. 한 시대의 저녁 종소리만이 아득히 들리는 것 같다.
- 「고향의 소리」 중에서
나는 오늘도 그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까치와 딱따구리와 직박구리들이 노쇠한 나뭇가지에 앉아 통곡의 나무 대신 향수 어린 울음을 운다. 5월 훈풍이 불고, 주위에 수수꽃다리 향기는 그윽한데, 아아, 그 질곡의 시대에 질식했던 선열들의 통곡은 지금도 살구나무 꽃잎처럼 허공에 흩어진다. 그리고 곧 일제의 만행에 갈가리 찢어지고 피로 물든 수의를 걸친 애국선열들의 영상이 허공에 나타나,
- 흰 저고리 피로 물들어도 웃음으로 밝은 세상 꿈꾸리라. 죽어서도 차마 놓지 못할 광복의 그 찬란한 꿈
이라는 글자를 옥사 벽에 새기는 것 같다.
- 「서대문형무소와 통곡의 미루나무」 중에서
인왕산은 흰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늑한 잠에 빠져 있다. 이런 때는 실컷 늦잠을 자도록 놔둘 일이다. 심술궂은 삭풍이 가끔 산을 흔들어 댄다. 겨울바람은 사실 외로운 것이어서 산을 깨워 함께 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겨울바람은 이제 이별가를 부르며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겨울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계절이다.
- 「눈 오는 날의 풍경」 중에서
꿈의 요람 (허창무 수필집)
$1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