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도영 시인의 새로운 시집이 상재되었다. 시인이 「프롤로그」에서 의미심장하게 썼듯, 우리는 매 순간 미세하게 혹은 폭발적으로 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생활의 곳곳에서 한없이 낯선 자아를 만나기도 한다. 정체성을 상실한 ‘익명’의 제3지대는 “문제는 집이 너무 크고 식구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늑하지 않은 약점이 있어요/ 마실 오는 이도 없구요/ 그래요, 그래서 무너지고 자꾸 무너져요/ 바람이 많은 유배지”(「샤갈의 마을」)로써 ‘내’ 삶에 엉겨 있다.
마음 한구석에 ‘유배지’를 마련해야 하는 우리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끊임없이 익명으로 밀려나는 이 지독한 천형은 누구의 심판이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익명’은 존재의 필연적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막 세수한 맨 얼굴로/ 렌즈 밖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주인공일 필요가 없는/ 드디어 드디어/ 행인 1, 행인 2가/ 제 걸음을 걷”(「프롤로그」)게 되는 것이다.
이름을 박탈당한 미지의 존재들이 ‘제 걸음’을 걷는다는, 이 독특한 발견은 “그런 길이 있군요/ 모터 갈고 밸브 바꾸느니/ 차라리 사시죠!// 심장 갈고 허파에 기포 빼내고 혈관 교체하면서라도/ 사시죠// 관절이탈 혈관폐쇄/ 아무리 흔한 증세라고 하여도/ 나는 나만의 사건이지요”(「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라는 고백으로 이어지며, 이로써 “노예근성의 DNA를 잃어버리고/ 거룩한/ 새로운 생물이 나는 되는 중이다”(「지금 탑석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선언이 가능해진다.
주목할 것은, 이 선언이 자기 확신과 더불어 진리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바디우가 통찰했던 것처럼, 예술도 진리 추구의 한 영역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물’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인이 갈망한 변화의 이미지(혹은 사건)를 구축할 수 있다.
시인은 우선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종교’를 뒤집어 버린다.
하느님과 나는 체급이 다르다
우리는 한 링 위에 섰다
주최 측의 농간
그의 집안이 정말 대단한가 보다
대단한 집안의 남자가 날 사랑한다네
소문 하나 거대하다
난 이제 시집은 다 갔다
그는 처녀에게 임신시키는 잔인한
주거 부정의 발바리
- 「일요일」 부분
신과 인간은 체급을 비교할 수조차 없는데, 시인이 보기에 그 두 존재는 “한 링 위에” 서 있다. 이 무슨 참담한 설정일까. 주최 측의 농간이라고 불만을 터트려도 신은 모른 척한다. 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겁하다. 나의 모든 것이 ‘신의 것’이 되어 버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종교다. 나의 모든 티끌을 고스란히 죄악으로 기록하며, 외출을 허락받아야 하고, 히잡을 써야 하는 계율은 법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새로운 생물’이 된 시인은 신의 분별없는 일방통행을 정확히 짚어 낸다.
시인은 또한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꿈을 꾼다.
나와 너는 다르지 않으며, 또한 인간과 자연도 동일하다. 공간은 사물의 무수한 연장이고, 시간은 지속으로써 이어진다. 요컨대, 책은 책장의 품에서 공간을 정하고, 책장은 벽에 기댐으로써 곧게 선다. 벽은 그 너머의 벽장으로, 벽장은 수다한 옷으로 이어진다. 벽장이 열리는 반경에는 침대가 있다. 하나의 사물을 출발점으로 가정하면, 그 좌표는 우주 전체로까지 확대된다. 뿐만 아니다. 우리에게 매일 찾아오는 아침은 시작과 끝이 있는 한계-영역이 아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은 이미 저녁을 가정하며, 저녁 또한 새벽의 태양을 품는다. 씨앗이 맹글로브나무의 일생을 함축하는 것처럼.
저녁을 품고 떠오르는 아침처럼
내년의 봄을 품고 이 가을에
멀리서 씨앗으로 뜬
전해 내려오는 의식이
이렇게 예외가 없다
- 「자작나무가 걸어오리라」 부분
마지막으로 시인은 감정의 무기력한 공회전을 최소한으로 줄여놓는다.
이로써 타자의 시선에 분별없이 방치된 ‘나’는 온전한 자기로 회귀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일정한 서식지가 없는 대신/ 주로 살아 있는 것들의 가슴께쯤 둥지를 틀어/ 울먹거린다// 처음 고생대 화석 ‘울다’라는 지층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짐작하건대 도처에서 자생하는 원시적이고 토착적인/ 토템의 사상을 갖고 있어 하늘물고기로 불리기도 한다”(「울어」)는 문장에 암시된 것처럼, 시인은 ‘울음’을 자기회귀의 시원이자 방법으로 삼기도 한다.
다행이다
나는 낡아서
그러므로 겁내지 않아도 된다
손을 베이는 일이 없을 것이다
덥석 물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한 어두우므로
눕거나 쉬거나 졸거나
좋을 것이다
적당히 게을러도 좋은
실밥이 터져도 무난한
잔액이 모자라도 괜찮은
나의 항해에는 익숙한 깃발이
순탄할 것
- 「해치지 않아」 부분
마음 한구석에 ‘유배지’를 마련해야 하는 우리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끊임없이 익명으로 밀려나는 이 지독한 천형은 누구의 심판이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익명’은 존재의 필연적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막 세수한 맨 얼굴로/ 렌즈 밖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주인공일 필요가 없는/ 드디어 드디어/ 행인 1, 행인 2가/ 제 걸음을 걷”(「프롤로그」)게 되는 것이다.
이름을 박탈당한 미지의 존재들이 ‘제 걸음’을 걷는다는, 이 독특한 발견은 “그런 길이 있군요/ 모터 갈고 밸브 바꾸느니/ 차라리 사시죠!// 심장 갈고 허파에 기포 빼내고 혈관 교체하면서라도/ 사시죠// 관절이탈 혈관폐쇄/ 아무리 흔한 증세라고 하여도/ 나는 나만의 사건이지요”(「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라는 고백으로 이어지며, 이로써 “노예근성의 DNA를 잃어버리고/ 거룩한/ 새로운 생물이 나는 되는 중이다”(「지금 탑석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선언이 가능해진다.
주목할 것은, 이 선언이 자기 확신과 더불어 진리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바디우가 통찰했던 것처럼, 예술도 진리 추구의 한 영역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물’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인이 갈망한 변화의 이미지(혹은 사건)를 구축할 수 있다.
시인은 우선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종교’를 뒤집어 버린다.
하느님과 나는 체급이 다르다
우리는 한 링 위에 섰다
주최 측의 농간
그의 집안이 정말 대단한가 보다
대단한 집안의 남자가 날 사랑한다네
소문 하나 거대하다
난 이제 시집은 다 갔다
그는 처녀에게 임신시키는 잔인한
주거 부정의 발바리
- 「일요일」 부분
신과 인간은 체급을 비교할 수조차 없는데, 시인이 보기에 그 두 존재는 “한 링 위에” 서 있다. 이 무슨 참담한 설정일까. 주최 측의 농간이라고 불만을 터트려도 신은 모른 척한다. 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겁하다. 나의 모든 것이 ‘신의 것’이 되어 버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종교다. 나의 모든 티끌을 고스란히 죄악으로 기록하며, 외출을 허락받아야 하고, 히잡을 써야 하는 계율은 법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새로운 생물’이 된 시인은 신의 분별없는 일방통행을 정확히 짚어 낸다.
시인은 또한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꿈을 꾼다.
나와 너는 다르지 않으며, 또한 인간과 자연도 동일하다. 공간은 사물의 무수한 연장이고, 시간은 지속으로써 이어진다. 요컨대, 책은 책장의 품에서 공간을 정하고, 책장은 벽에 기댐으로써 곧게 선다. 벽은 그 너머의 벽장으로, 벽장은 수다한 옷으로 이어진다. 벽장이 열리는 반경에는 침대가 있다. 하나의 사물을 출발점으로 가정하면, 그 좌표는 우주 전체로까지 확대된다. 뿐만 아니다. 우리에게 매일 찾아오는 아침은 시작과 끝이 있는 한계-영역이 아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은 이미 저녁을 가정하며, 저녁 또한 새벽의 태양을 품는다. 씨앗이 맹글로브나무의 일생을 함축하는 것처럼.
저녁을 품고 떠오르는 아침처럼
내년의 봄을 품고 이 가을에
멀리서 씨앗으로 뜬
전해 내려오는 의식이
이렇게 예외가 없다
- 「자작나무가 걸어오리라」 부분
마지막으로 시인은 감정의 무기력한 공회전을 최소한으로 줄여놓는다.
이로써 타자의 시선에 분별없이 방치된 ‘나’는 온전한 자기로 회귀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일정한 서식지가 없는 대신/ 주로 살아 있는 것들의 가슴께쯤 둥지를 틀어/ 울먹거린다// 처음 고생대 화석 ‘울다’라는 지층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짐작하건대 도처에서 자생하는 원시적이고 토착적인/ 토템의 사상을 갖고 있어 하늘물고기로 불리기도 한다”(「울어」)는 문장에 암시된 것처럼, 시인은 ‘울음’을 자기회귀의 시원이자 방법으로 삼기도 한다.
다행이다
나는 낡아서
그러므로 겁내지 않아도 된다
손을 베이는 일이 없을 것이다
덥석 물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한 어두우므로
눕거나 쉬거나 졸거나
좋을 것이다
적당히 게을러도 좋은
실밥이 터져도 무난한
잔액이 모자라도 괜찮은
나의 항해에는 익숙한 깃발이
순탄할 것
- 「해치지 않아」 부분
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 (이도영 시집)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