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구약성경에 묘사된 일견 잔인해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 당황해한다. 그들은 신약성경에서는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는 예수를 접하는데 반해 구약성경에서는 전쟁과 살육을 부추기는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에 대한 정복을 읽을 때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하나님은 가혹하고 잔인한 분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의 원주민을 대량 학살하도록 몰아붙이는 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나님은 “집단 학살”을 행하시거나 용인하시는 우주적 괴물일까?
이 질문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어려움을 가져왔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들이 성경과 성경의 하나님,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할 때 가나안 정복을 주요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가나안 정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 성경과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의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과 회의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가혹하고 잔인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떤 해석가는 하나님은 실제로 가혹하고 잔인한 분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독자적으로 땅을 정복한 뒤에 그것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으로 기록했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다른 해석가는 하나님이 이 정복을 일으킨 실제 주동자시고,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은 정당화된다고 해석한다. 그는 가나안 정복을 거룩한 전쟁(holy war)으로 정당화한다. 달리 말해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이교도를 쓸어버리라고 진격 명령을 내린 책으로 이해된다. 이와 다르게 어떤 해석가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올바르게 행동하시므로 그 땅의 백성을 멸절시키는 정당한 윤리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변증하기 위해 그 이유를 재구성한다.
복음주의 구약학자인 존 월튼과 그의 아들 하비 월튼은 위의 해석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고대 “문화의 강”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현대인들이 가나안 정복을 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월튼 부자는 대표적인 단어로 “헤렘”을 든다. 고대 근동에서 헤렘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인종적 청소와 같은 대량 학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현대의 일반적 번역(“진멸”)은 오도된 번역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월튼 부자는 고대 근동의 유사 문헌들, 고대 언어의 어휘론, 고대의 문학적 관습으로서의 과장법 등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고대 문헌 기록 방식과 문학적 관습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그 결과 헤렘은 일방적인 대량 학살 개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한 영토 안에서의 정화 작업이며, 이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싸움으로 연결된다.
가나안 정복 사건 때문에 하나님을 가혹하고 잔인한 분으로 생각해서 성경과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신의 신앙까지도 의심한 이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설득해 더 나은 여호수아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픈 사람들에게 이 책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관점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이 질문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어려움을 가져왔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들이 성경과 성경의 하나님,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할 때 가나안 정복을 주요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가나안 정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 성경과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의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과 회의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가혹하고 잔인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떤 해석가는 하나님은 실제로 가혹하고 잔인한 분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독자적으로 땅을 정복한 뒤에 그것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으로 기록했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다른 해석가는 하나님이 이 정복을 일으킨 실제 주동자시고,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은 정당화된다고 해석한다. 그는 가나안 정복을 거룩한 전쟁(holy war)으로 정당화한다. 달리 말해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이교도를 쓸어버리라고 진격 명령을 내린 책으로 이해된다. 이와 다르게 어떤 해석가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올바르게 행동하시므로 그 땅의 백성을 멸절시키는 정당한 윤리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변증하기 위해 그 이유를 재구성한다.
복음주의 구약학자인 존 월튼과 그의 아들 하비 월튼은 위의 해석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고대 “문화의 강”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달리 말해 그들은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현대인들이 가나안 정복을 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월튼 부자는 대표적인 단어로 “헤렘”을 든다. 고대 근동에서 헤렘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인종적 청소와 같은 대량 학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현대의 일반적 번역(“진멸”)은 오도된 번역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월튼 부자는 고대 근동의 유사 문헌들, 고대 언어의 어휘론, 고대의 문학적 관습으로서의 과장법 등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고대 문헌 기록 방식과 문학적 관습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그 결과 헤렘은 일방적인 대량 학살 개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한 영토 안에서의 정화 작업이며, 이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싸움으로 연결된다.
가나안 정복 사건 때문에 하나님을 가혹하고 잔인한 분으로 생각해서 성경과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신의 신앙까지도 의심한 이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설득해 더 나은 여호수아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픈 사람들에게 이 책은 신선하고 독창적인 관점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가나안 정복의 잃어버린 세계 : 언약과 응보 그리고 가나안 족속의 운명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