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 정미경 장편소설)

큰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 정미경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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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미경 장편소설 『큰비』는 조선 숙종 연간에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무녀들의 순수하고도 불길한 역모의 꿈을 좇는 소설로, 경기도 양주의 무당 무리들이 도성에 입성하여 미륵의 세상을 맞이하려 했다는 당시의 실제 역모 사건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들은 큰비를 내려 도성을 휩쓸어버린다는 ‘대우경탕(大雨傾蕩)’을 내세우며 거사를 도모했는데,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용을 움직여 큰비를 내리게 하는 열아홉 살 무녀 원향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구상하며 무엇이 무녀들로 하여금 역심을 품게 했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뜬구름처럼 허황하기 그지없는 대우경탕설이 어떻게 무녀들을 사로잡았는지, 원향과 그를 따르는 무녀들은 어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지 자문한다. 이 물음은 필연적으로 조선시대 무녀의 삶과 존재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큰비』는 유교의 예를 숭상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음란하고 사악한 존재로 내몰려 추방당한 무녀의 삶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불러온다.
저자

정미경

저자정미경은1973년광주에서태어났다.서울의대학에진학하고나서도한참동안전라도사투리를쓰며살았다.대학원에서여성학을공부한후페미니스트저널이프의편집장을지냈다.이후에도숱한글을쓰며살았지만소설을써야겠다는생각은뒤늦게찾아왔다.조선숙종기무녀의순수하고도불길한역모의꿈을소재로한장편소설『큰비』로2017년제13회세계문학상우수상을수상했다.20년간의서울생활을끝내고고향으로돌아와소설쓰기를업으로살고있다.

목차

청배
한탄강
칼과영
보름달
용녀
신의일,사람의일
어의동
죽을길
큰비
결초

이소설을쓰기까지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큰비를내려세상을쓸어버리리라!”
조선무녀들의순수하고도불길한역모의꿈
300년의시간을뛰어넘어부활하는여성들의이야기

유교의나라조선에서역모를꿈꾼무녀들
무릇전복과변혁의서사는읽는사람의가슴을뛰게하고피를뜨겁게한다.하물며역사의무대에서늘뒷전으로밀려나있던억눌린여성들이서사의주체로섰을때는그두근거림의강도가한층거세지게마련이다.2017년제13회세계문학상우수상을수상한정미경의장편소설『큰비』는바로그런이야기다.『큰비』는조선숙종연간에새로운세상을열고자했던무녀들의순수하고도불길한역모의꿈을좇는소설로,경기도양주의무당무리들이도성에입성하여미륵의세상을맞이하려했다는당시의실제역모사건이작품의모티브가되었다.이들은큰비를내려도성을휩쓸어버린다는‘대우경탕(大雨傾蕩)’을내세우며거사를도모했는데,그중심에있던인물이불가사의한힘으로용을움직여큰비를내리게하는열아홉살무녀원향이었다.

지금여기생생한현재성으로다가오는여성들의이야기
페미니스트저널이프전편집장정미경의강렬한데뷔작
작가는소설을구상하며무엇이무녀들로하여금역심을품게했는지,그때나지금이나뜬구름처럼허황하기그지없는대우경탕설이어떻게무녀들을사로잡았는지,원향과그를따르는무녀들은어떤깊은이야기를품고있었을지자문한다.이물음은필연적으로조선시대무녀의삶과존재성에대한탐구로이어진다.그리하여『큰비』는유교의예를숭상하는사대부의나라조선에서음란하고사악한존재로내몰려추방당한무녀의삶과목소리를생생하게불러온다.그들은하늘과통하는신이한힘으로말미암아유교지배이데올로기아래에서철저히짓밟히고배제되었다.하지만바로그런능력으로인해여전히뭇사람들의슬픔과고통을위로해주고응어리진한을풀어주는존재였다.늘빼앗기는삶을살아야했던가난한백성들을품어주고,살아서는욕되고죽어서는원통한여인들을넋을달래주는게그들의역할이었다.사대부들조차도사람의힘으로어찌해볼수없는일앞에서는남몰래무녀를불렀다.
신과사람의매개자인조선무녀들의삶과새로운하늘을열려는그들의꿈을작가는한없이사려깊고치밀하게,뛰어난미학적성취로그려낸다.세계문학상심사를맡은소설가구효서는“(무녀들이)제힘으로부활해서제입으로말하고권부의핵심을향해진격하도록내버려두는작가의자기은닉이참으로미덥다”고평했으며,문학평론가정홍수는“정확하고명징한서술이지긋이맺고푸는유연한문장의호흡속에단단하게감싸여있다”며“그문체가결국소설『큰비』의현재성이자글쓴이만의사상이고고유성”이라고칭찬했다.이러한“부활”과“현재성”이야말로이소설속이야기를300년이라는시간을뛰어넘어지금여기우리의이야기로가능하게하는핵심일터다.
무녀들이큰비로도성을쓸어버리고이루려던세상은천한사람이귀해지고핍박받는무녀들이자유로워지는세상이며,여인들의통한이사라지는세상이다.그오래된꿈에서2017년현재한국을뜨겁게달구고있는페미니즘을떠올리기는어렵지않다.대학원에서여성학을공부하고페미니스트저널이프의편집장을지낸작가는“여성의시선으로사회의불편속에있는누군가의고통과눈물을담아내겠다”는포부를밝힌바있다.『큰비』도여성의시선으로인간과세상을읽는한국문학서사의대열에확연한고유성을지닌작품으로함께자리할것이다.

태초의하늘을열려는조선무녀들의위태로운꿈
세상에서가장오래된그이야기가시작된다!
때는조선숙종14년인1688년7월13일.열아홉살의황해도만신원향은한탄강에서여환의무리와함께한양으로떠난다.뜻을같이하는수십명의사람들중몸과마음을정결히한열세명만이선택되어행로에오른다.이들은양주대전리를출발해동두천을거쳐양주목에서하룻밤을묵고도봉산누원에서흥인문을거쳐어의동에닿을계획이었다.이들이양주에서한양까지150리길을가는목적은대우경탕,즉큰비를내려도성을쓸어버리고미륵세상을맞이하기위함이었다.
열두살에내림굿을받고무당으로살아온원향은여환의무리에의해용녀부인으로추대되어거사에합류했다.여환이황해도로찾아와혼인을청했을때원향은송화마을의기우제로답을대신했다.잠자고있는용을승천시켜마른땅에비를내리는원향의신이한능력을보고여환은미륵이왜원향을원했는지를깨달았다.대장장이의아들여환은미륵이새로운세상을이끄는지도자로벌통(도성)에세운인물이었다.미륵은그징표로삼국을뜻하는누룩세덩이를여환에게주었다.미륵은새로운세상의시작과말세의대재앙을예언하며용이자식을낳아나라를다스릴것이라했고,이에여환은구름과비를일으키는용녀인원향과성혼했다.미륵과용신의결합.이로써큰비가도성을휩쓸고난후여환의무리가궐에입성하는거사의준비를마치게된다.
하지만원향의계획은여환과그무리들과달랐다.원향은계화를비롯한양주의성인무당들과그들만의거사를따로준비한다.무녀의세상을여는의례로그들이하려는일은18년전경술대기근으로나라전체가수렁에빠져있을때기우제를하던중목숨을잃은만신하랑의넋을건지는일이었다.조정의부름을받고죽음의길로걸어간하랑의넋을건지고그힘을얻어큰비를내림으로써무녀들을귀히여기는세상을열겠다는뜻이었다.
한편원향은한양으로가는도중칼을쓰려는무리와끊임없이갈등한다.가혹한세상에서한줌가진것을빼앗긴자들이검계니살주계니화적떼니해서칼의힘에의지하는때,그원한의칼이결국누구를향하는지원향은알고있었다.그칼은힘없는부녀자들을겨누었다.하여인간세계에서칼을드는자는순수할수없으며,미륵의세계를여는시작은인간의칼이아닌영의칼이어야한다는것이원향의생각이었다.
원향과무녀들이다른일을꾸미고있다는것을눈치챈무리는하랑의넋건지기굿을하는모화루에들이닥친다.굿판은아수라장이되고,격한언쟁과물리적충돌이빚어지는가운데원향이연못에빠지고만다.원향은죽음을경험하면서하랑의넋을만나비로소깨닫는다.자신이지금껏교만하게영의칼을휘둘러왔음을.열두살때내림굿을받을적에원향에게들어앉아원향과한몸이된하랑만신의유장한이야기가분노에차있는원향을일깨운다.쟁투하지말것이며,분노와원망마저태워텅빈채로사람들을품어안는크고강한만신이되거라!그때너의큰비가내릴것이며태초의미륵세상이열릴것이다!

원한과분노의칼날대신한올한올베옷을짜는
노동과보살핌의시간으로도래할여성성의후천
『큰비』는여환을통해세상을바꾸려는사람들의이야기와,단지그들이만들어놓은판에서꼭두놀음은하지않겠다는원향을중심으로결속된무녀들의이야기가맞물려전개된다.거기에신령이되어원향과함께하는만신하랑의사연과목소리가소설전반을감싸며무녀들의이야기가더욱전면으로부각된다.특히하랑이들려주는창세가는무녀들이열고자하는세상과그들이세상속에서펼치려는바가무엇인지를뚜렷하게지시해준다.
거인신미륵이땅과하늘을갈라세상을열고모든것을화평하고조화롭게운영하고있을때석가가나타나미륵의세상을빼앗으면서분별이생기고다툼이생겼다는이야기.거대한몸을한미륵이칡을베고삼고익혀실을만들고베틀앞에서옷감을짜는수고로운노동을마다하지않으며몸소옷을지어입었다는이야기.이것은무녀들이태초의미륵세상과같은조화로운세상을열고자함이요,사람들속에서아프고화를입고재앙을당한이들을알뜰하고촘촘하게품되그수고로움을기꺼이감당하겠다는의미다.
원향도처음에는이를온전히알지못한다.그래서칼을쓰는자들을경계하면서도스스로영의칼을휘두르려했다.그역시신령의힘을빙자한파괴의심성과다르지않았다.그러다하랑의넋과만나면서만신이가야할길,열어야할세상은그것이아님을깨닫는다.미륵의힘은다른곳에있는것이아니라원향안에있었다.그러니죽음을겪고난원향이뭇사람들곁으로돌아가는것은참으로마땅한결정이다.그속에서원향은이세상에서가장오래된이야기를새로이시작할것이다.

부풀어오르는대신비어있고사람들사이에있어야하며사람들을품어안아야했다.그랬을때,원향의하늘은열릴것이었다.원향의큰비가내릴것이었다.태초의미륵세상,하늘에축원해사람을갈구하여있게한그미륵의큰세상이열릴것이었다.당신손으로감을짜베틀로옷을짜입던그미륵의세상이올것이었다.세상을한번에갈라치는영의칼을휘두르는것이아니라,한올한올베옷을짜는마음이미륵의세상을열것이었다.(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