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 (윤보인 장편소설)

재령 (윤보인 장편소설)

$13.00
Description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뱀》(2011)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2014)를 펴낸 윤보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재령』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욕망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보다 전통적인 문법으로 사람의 운명이라는 헤아리기 어려운 주제를 탐사하는데, 그 바탕에는 사주 명리학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

윤보인

서울에서태어났다.2007년『문학사상』으로등단했다.소설집『뱀』과장편소설『밤의고아』가있다.

목차

소한꿈의거리를헤매어왔노라
입춘눈속의봄은멀지않았으니
망종사랑을갈구하며찾아다니는
처서인생이풀리지않을때
우수밤에태어난사람,그인연
소설쓸쓸함에대해잘알고있다
대한굳이만나서로를위로하는일이없기를
백로오랜시간을뉴욕에서살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이강렬한소설은우리를환희로끓어오르게함과동시에
절벽끝에서있게한다.따뜻한파동이몸을극진하게데워준다.”
_이병률(시인)

『밤의고아』윤보인두번째장편소설!

명리.사람의운명이지.
그인연,참짧다.그치?

기억할까.내가그를찾아헤매던그순간을.

서울에서뉴욕으로,재령으로이어지는긴시간
쌍둥이오빠의죽음에서비롯된어떤운명을추적하는이야기

2007년『문학사상』신인상으로등단하여소설집『뱀』(2011)과장편소설『밤의고아』(2014)를펴낸윤보인의두번째장편소설『재령』이나무옆의자에서출간되었다.세계의이면에존재하는어둠과인간내면의원초적인욕망을그로테스크하면서도처연하게그려온작가는이번소설에서보다전통적인문법으로사람의운명이라는헤아리기어려운주제를탐사하는데,그바탕에는사주명리학이자리하고있다.그것은인연의부딪힘과헤어짐,죽음과삶의경계에대한의문을풀어가는과정이며예측할수없음이곧삶이라는진실을받아들이는일이기도하다.
소설의도입부에서화자는“이글은서울에서뉴욕으로,그리고재령으로이어지는긴이야기”이며“처음부터끝까지사주팔자,그어떤운명에대해추적하는글이될것이다.”고밝힌다.화자가처음으로운명에관심을갖는계기는쌍둥이오빠의죽음이다.같은날,단지7분차이로태어났을뿐인데한사람은십대후반에사고로죽고한사람은살아남아서죽은자를끝없이추억해야하는삶의비의에눈뜨게된것이다.
어머니는오래전에돌아가셨고아버지는집을나가연락이끊어진상태여서‘나’는오빠의죽음을뉴욕에있는큰아버지에게알리는데,그는조카의장례를치른후나에게뉴욕으로올것을권한다.의지할곳없는나는바다를건너기로결심하고뉴욕큰아버지집에서살게된다.그로부터큰아버지는나의삶에지대한영향을끼친다.그는내가살면서한번도본적없는기품있고그릇이큰어른이었다.고향인황해도재령을그리워하고〈황성옛터〉를즐겨듣는그는유명한역술가인아버지의영향으로명리학을공부했지만다른사람의운명에대해섣불리말하는법이없었다.

큰아버지의품성.내가그의집에얹혀있어도그는단한번도나에게잔소리를하거나무례한말을한적이없었다.그에겐어떤통찰,사람을헤아리는면이있었고너그러움과꼿꼿함,자존심같은게배어있었다.(중략)나는그에게서인생을배웠고삶의깊이를배운셈이었다.(204쪽)

큰아버지는재령으로가려던꿈을끝내이루지못한채,나에게훗날“이쪽공부”를하면삶에도움이될거라는말을남기고세상을떠난다.

사랑하게될것이라예감하지못했지만결국사랑하게된운명

큰아버지가족과특별한인연을맺고있는청년박재령또한나의삶을뒤흔든한사람이다.큰어머니가운영하는푸드코트에서일하며대학입학을준비하던그는큰아버지에게역학을배웠고재령이라는이름도큰아버지가새로지어준것이었다.처음만난날나에게생년월일과태어난시를물어보고는“그대여간난사를말하지마오.눈속의봄은멀지않았으니.”라는시를적어준사람.뉴욕에와서고독하고쓸쓸하던나는박재령과짧은대화를나누거나차를마시면서큰위로를받는다.그리고마음속에사랑이싹트고있음을느낀다.자신을과장하지않고고요한호수같은그에게나는조금씩다가가고싶지만그럴수없다.그의옆에명진애가있기때문이다.명진애는박재령에게적극적이다못해집착적인애정을표현하는데그방식이자못위협적이어서주변사람들을불안하게한다.그런명진애를박재령은늘아무반응없이피하기만하는데,상대가자기마음을받아주지않자명진애는박재령에게횡포를부리고떠나버린다.
명진애가사라진후박재령이대학에합격해보스턴으로가자나는말할수없는상실감을느낀다.박재령에대한사랑이소리없이깊어질때뜻밖의소식이들려온다.그가명진애와결혼한다는것이다.물과기름같은두사람이어떤연유로다시만나결혼까지하게됐는지알수없지만나는차라리박재령이명진애를사랑했기를진심으로바란다.얼마후그들이쌍둥이를낳았다는소식을듣지만그들의결혼생활은순탄해보이지않는다.어느날명진애는큰아버지집을찾아와이해할수없는행동을하더니,돌연쌍둥이를데리고한국으로들어가버린다.
나는위암선고를받은큰아버지가돌아가시기얼마전,그리고돌아가신후장례식을치르면서박재령과다시만난다.무언가체념한듯한그는“나는그애를사랑하지않아.”라며엉켜버린자신의삶에대해토로하고는이렇게당부한다.“너는자유롭게살아.누군가의죽음으로인해서너무슬퍼하지말아.삶을살아.죽음속으로걸어가지마.”
그후나는박재령을만나기위해보스턴으로간다.어떤목적이있어서가아니라멀리서그를한번더바라보고싶어서다.나는사랑이라는말같은것은언급하지않고아무일없었다는듯그를대한다.그것이최선이고그에대한예의이기에.타인의삶을파괴하지않는것,어느순간작별한다할지라도그를부서지게만들지않는것,그것을행하고싶었기에.
사랑하게될것이라예감하지못했지만결국사랑하게된사람.누군가자신을깊이사랑하는것도눈치채지못하고홀로외로이추위에떠는사람.나는박재령과의만남과헤어짐을운명이라생각한다.

손끝에인연이있는가.아니면우리가바라보는눈속에인연이있는가.당신을부르는나의음성에인연이있는가.후려치듯불어오는바람에,그속에인연이있는가.아마도당신조차나를이해하지못하겠지만아무래도눈물속에인연이있는것같다.인연이깊어지면눈물이나는걸보니,아무래도그속에비밀이있는것같다.(224쪽)

사주명리,겸허하게삶과인간을이해하는원리
사무치게다가온인연들과헤아릴수없는삶의비의에대하여

나는열아홉어린나이에바다를건너뉴욕이라는새로운장소에서인생의여러일들을겪으며운명에대한물음을던진다.
어머니는어찌하여그토록모진고생을감내하다젊은나이에돌아가셨을까.아버지는어찌하여자수성가한형들과달리그토록정처없이가난하게떠돌아야했을까.어떤경우한평생부를취하며어떤경우에가난을면치못하는가.만약처음부터그런게정해져있는거라면,좀잔인한일이아닌가.나의오빠는어찌하여다른젊은이들처럼이도시를멋지게걸어다니지못하는가.왜어떤사람에게는그런기회가주어지고어떤사람에게는평생그런기회가주어지지않는가.모든것이운명이고팔자라고말할수있는것인가.명진애는어찌하여박재령을그토록원했을까.박재령은왜그토록악연을피하려했지만엉킨실타래를풀지못했을까.사촌언니는왜한눈에도인연이아닌남자를사랑하여학교도졸업하지않은상태에서부모가반대하는결혼을하더니몇달만에이혼하는가.나는어찌하여박재령을사랑하게되었는가.
큰아버지가당부한것처럼나는명리를공부하지만그렇다고이모든의문에답할수는없다.소설에는주요인물들의사주명식과그풀이가나오는데그것으로한사람의성향과인생궤적을조금읽을수있을뿐운명을함부로말할수는없다.하지만생의무수한언덕과골짜기를통과하며삶과죽음의엇갈림,상실과아픔을경험하다보면운명이라고밖에말할수없는순간이있으며,그런순간들속에서도자신의선택과의지가삶을이끌어가는강력한동기임을깨닫게된다.

명리는하루아침에완성되는학문이아니며많은인내와자기절제가필요하다.인생에서여러어려움이있다는걸이해하고그것을안쓰럽게여기는넓은마음가짐과냉정한자기판단,통찰력이필요하다.
한사람의운명을들여다보면수많은산과펼쳐진길과흙과물과빛과어둠이있는것을발견하게된다.(107쪽)

누군가는태어나고누군가는죽는다.그순환속에서인간은살아간다.그속에비의가있고눈물이있고운명이있다.운명이란그런것이다.말할수없는것이다.말하기어려운것이다.(235쪽)

작가는명리가인간존재의불완전성에대한이해및측은지심과연결되어있음을분명히한다.그러한인식이부재할때인간과삶을이해하는겸허한원리는자칫혹세무민으로변질될수있음을경계하는것이다.소설곳곳에박힌아름다운문장들은가슴이아릴정도로생의비밀과본질을꿰뚫어본다.사무치게다가온인연들을더듬는작가의진중하고사려깊은시선은조금쓸쓸하면서도퍽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