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켤레의 여자 (김이은 소설)

열두 켤레의 여자 (김이은 소설)

$11.00
Description
“때로 힐은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된다.”
생의 결정적 순간에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여성들
그들을 둘러싼 네 개의 사랑과 네 개의 구두 레시피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꾸준히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작가 김이은의 신작 소설 『열두 켤레의 여자』가 나무옆의자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열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세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동안 현실과 환상,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탐구해온 작가가 처음으로 쓴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하이힐 전문 매장 ‘쏠라즈’를 주요 무대로 네 여성의 각기 다른 사랑과 욕망을 그린다. 쏠라즈는 한 번에 예약 손님 한 명만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구두들이 가득한 이 비현실적인 공간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한다. 누구는 사랑을 위해 누구는 이별을 위해 구두를 고르고, 누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누기 위해 가게를 찾는다. 스스로 구두 소믈리에라 말하는 주인 윤찬경은 손님의 심리와 상황을 세심하게 읽고 꼭 맞는 구두를 추천하는 일에 빈틈이 없다. 일종의 구두 레시피랄까.
실용성 없고 편하지 않고 활동적이지 않고 오래 신으면 반드시 발이 아프게 마련이지만 아름다운, 오직 아름다운 구두! 여기서 ‘구두’는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앞두고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여성들의 의지이자 그들에게 보내는 공감과 응원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기능적이거나 실리적인 가치는 없지만 에로틱한 자극을 주는가 하면 온몸에 긴장감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도구, 경계를 만드는 동시에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인 구두를 통해 그들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저자

김이은

2002년『현대문학』에단편소설「일리자로프의가위」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마다가스카르자살예방센터』『코끼리가떴다』『어쩔까나』등이있고,장편소설『검은바다의노래』『11:59PM밤의시간』등이있다.그외에『호아저씨,호치민』『부처님과내기한선비』『날개도없이어디로날아갔나』등을지었다.

목차

1장남경희
2장임수진
3장정하은
4장신종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첫번째이야기:신혼시절의달콤한부부관계를되찾은40대워킹우먼남경희
“실내에서도신을수있는하이힐을보고싶어요.”

공기업에서사장수행비서로일하는20년차워킹우먼남경희는최근사장이파면되면서인생최대의위기를맞는다.엎친데덮친격으로한밤에남편의망측한행동을목격하고망연자실어쩔줄모른다.다행히남경희는그순간탁월한선택을함으로써남편의자존심을지키고의도치않게신혼시절의달콤한부부관계를되찾는다.얼마후회사에서는파면당한사장의추천으로승진까지했으니전화위복이따로없다.남경희는남편과승진기념파티를하기로하고,파티용구두를고르기위해쏠라즈에간다.엘리트모범생인그녀가가장대중적인페티시로구두를선택한것이다.처음만난남경희와윤찬경.서로를탐색하는것도잠시,남경희는윤찬경의대담함과정확한감각에감탄하고윤찬경은남경희의의외성에놀란다.윤찬경은관능적인자극과환상을끌어내줄수있는실내용파티구두를골라준다.남경희가최종선택한것은발목에스트랩이달린갓피어난장미색깔의하이힐이다.

아마도남경희는몸에오직새하이힐만장착한채로박병호와은밀한시간을보내게되겠지.과거에는상상도해보지않았던그낯선경험이이후의삶에새로운물꼬를터주리라는것을남경희는알았다.뭐랄까.생의반경이넓어지고그테두리가모호해지며딱딱한돌처럼굳어가던삶이말랑한스펀지처럼흡수력과적응력이넓고깊게확장되어스스로와세상의진실을좀더담백하게받아들일수있게될거라는짐작.(46쪽)

두번째이야기:가스라이팅을일삼는남자친구와결별하려는20대피아노강사임수진
”오늘은힐을살거예요.아주높고섹시하고예쁜걸로요.“

임수진은중요한일을실행하기에앞서용기를얻기위해쏠라즈에간다.오늘그녀는남자친구에게이별을고할작정이다.증권회사펀드매니저인최창수는임수진에게옷차림부터사람을대하는태도까지자기식대로하길종용한다.임수진이반발하면그녀를물정모르는어리바리한사람으로취급한다.밝은색을좋아하는임수진은최창수의취향에맞춰늘무채색의옷을입고무채색의플랫슈즈만신을정도다.그녀는최창수가보잘것없는자신을아끼고사랑해주는것이라여기고그의말을따랐지만언제부터인가자신이돌멩이나유리인형이된기분을느낀다.하여그녀는마음을바꾼다.사랑을버리기로.분노하기로.첫번째이별은두려움때문에실패했지만이번에는더용기를내기로한다.
늘낮은신발만찾던그녀가오늘은힐을살거라는말에윤찬경은그녀의결심을짐작한다.임수진은윤찬경이골라준새구두를신고두번째이별을하기위해씩씩하게길을나선다.

걸을때마다날카로운뒷굽소리가긴장감을불러일으켰다.스스로그런분위기를만들었다고생각하니까어쩐지자신감이솟아나는것같았다.조금은세상이만만해지는기분이었다.임수진은천천히윤찬경의손을놓고걸어보았다.또각또각.(78쪽)

세번째이야기:여행지에서만난어린남자와사랑에빠진30대간호사정하은
“나오늘여기서굽이제일높은구두살거야.”

스타일리시하고섹시한정하은은쏠라즈에가장어울리는고객이다.유독구두를좋아한다는점에서도윤찬경과통하는면이많다.정하은은요즘자신보다스무살많은이동섭이유난히늙어보이고자신이사랑에빠졌던그사람이맞나의심이든다.그가사랑을담아쏟아내는말도연극대사를읊는것처럼작위적으로들리고그의손길도숨이막힌다.얼마전그녀는제주여행중에스페인청년알리오를알게되었고,그와일주일을함께보냈다.바람을피운것이다.20대남자는섹시하고강렬하고황홀했다.사실을알게된이동섭은화를내는대신정하은을더다정히대하지만그녀는오히려그의관대함과집착을이해하기힘들다.그는다용서한다며청혼까지하는데용서라니,누가그런자격을그에게준것일까.이동섭과헤어져야할지는모르겠으나새구두를신고알리오와여행하고싶다는그녀.정하은은15센티스틸레토힐을신고곡예를하듯아슬아슬하게걸음을옮긴다.

정하은은섹시했다.섹시함이란규정되지않으며선명하지않은것에서비롯되는에너지다.미리정해진모든것과,관습으로굳어져옳다고믿는것을‘의심’하는것.그리하여섹시함은홀로헤치고나아가며스스로의기준을따로마련해실천한다.그러자니언제나혼돈이함께하는삶.정하은은지금혼란한가.윤찬경은정하은에게있어서그혼란이오래지속되지는않을거라고짐작했다.그것이정하은이니까.(108~109쪽)

네번째이야기:출발이잘못된관계를끝내고구두가게를연윤찬경
“나줄거면딴데가서여기없는구두를사와야지.”

네번째손님은윤찬경의전남편신종현이다.윤찬경과신종현은잘맞는듯했지만출발부터어긋난관계였다.둘은서로에게진심을다했으나신종현은번번이자기마음만앞서상대에게무신경하게폭력을저지르고상처를입히곤했다.윤찬경은그를사랑했기에용서하고노력했지만점점지쳐갔다.그녀는비로소잘못된출발로시작한사랑을,용서할수없는사실을용서해야하는사랑을중단해야한다는것을깨달았다.신종현과헤어지고슬픔에빠져있던어느날윤찬경은땅속에씨앗하나를심었다.오랜기다림끝에씨앗이싹을내밀었을때,그녀는좋아하는구두가게를열기로마음먹었다.구두는확실하니까.
쏠라즈를방문한신종현은짐짓다른이에게선물할구두를찾는시늉을하며윤찬경이골라준니하이부츠를사서그녀에게건넨다.“이구두는꼭한번은신어줘.”

잘못에대해가끔은용서를받아야한다.또가끔은용서대신처벌을받아야한다.그것은바로또다른용서다.윤찬경은신종현에게그것을했어야하지않을까.그랬다면적어도삶이지금보단낫지않았을까.용서는때로두사람모두를고통속으로밀어넣는다는걸신종현과윤찬경은결혼을하고이혼을하는긴시간을통해서야깨달았다.(165쪽)

새로운걸음앞에선여성들,꼭필요한만큼의공감과유대

이소설의흥미로운요소중하나는나이와직업,성격과스타일이다른네명의손님과윤찬경이나누는대화일것이다.윤찬경은구두소믈리에이지만한편으로는심리상담가이기도하다.손님들의마음을읽고꼭필요한만큼의위로와공감을전하는것은물론이고,자신의이야기를들려주거나우회적인질문을던짐으로써손님이자기감정과현실을제대로들여다보도록이끌기도한다.말하자면구두레시피를줄뿐아니라심리세러피까지수행하는셈이다.
그녀는복수하기위해구두가게를열었다고농담삼아말하곤한다.“한달에한켤레씩새구두를신고매번새로운남자를만나구두굽으로그남자를짓밟아주려고생각했어요.여기이름도그래서‘열두켤레의여자’라고짓고싶었어요.매번남자들에게그따위로살지말라는교훈을주고벌을주는거죠.”우스갯소리지만과거의상처받은마음의일단이비치기도한다.그러나지금그녀가추구하는것은누군가를상하게하는것이아니라아름다움으로누군가를다시일으켜세우는것이다.아름다움은그런거니까.새로운발걸음을준비하며쏠라즈를찾은이들이기대하는것도이러한격려와자극이리라.그녀의구두레시피가손님을매료시키는이유도거기에높은안목과함께정서적유대가녹아있기때문일것이다.그리하여쏠라즈는그이름의뜻그대로서로의틀을뛰어넘어‘마음의위안’을선물받는장소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