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상 (권정현 소설)

미미상 (권정현 소설)

$11.00
Description
혼불문학상, 현진건 문학상 수상 권정현 신작 소설
그녀가 갔다. 한 존재가 사라졌다.
추운 날 우리는 얼마나 자주 미미상 앞을 서성였던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이별 앞에 선 남자의 기이한 열정과 환상
사랑의 상실과 존재의 소멸을 받아들이려면 얼마큼의 시간을 견뎌야 할까?
2016년 단편소설 「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로 현진건문학상을, 2017년 장편소설 『칼과 혀』로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권정현 작가의 신작 소설. 어느 날 갑자기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남자가 실연 후에 보이는 기이한 열정과 환상을 다룬 작품이다. 화자가 헤어진 여자 친구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해골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으로 데려가 함께 지내다 처음 자리로 돌려놓기까지가 이야기의 큰 줄기이며, 그 과정에서 사랑과 죽음, 기억과 소멸에 관한 관념과 환상이 경계 없이 펼쳐진다. 때로 아찔할 만큼 냉철하고 때로는 시적인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 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탐색과 사유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그 흡인력에 한번 빠져들면 쉽사리 책장을 놓지 못한다.
작가는 상원사에서 〈십우도〉를 보고 이를 소설로 풀어보리라 생각하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화자가 자신에게 닥친 이별이라는 사태를 통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흡사 구도의 과정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화자는 해골과 함께하며 지난한 이별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 비로소 존재의 소멸을 받아들이고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 ‘미미상(美味傷)’은 캄캄한 밤 골목에서 마치 조어등처럼 불빛을 반짝이며 손님을 끌어당기는 주점으로, 집착에서 놓여난 화자에게 열린 새로운 시공이자 구원처럼 다가오는 장소다.
나무옆의자의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열다섯 번째 작품이다.
저자

권정현

충북청주에서태어나천안에서고등학교를마쳤다.펴낸책으로소설집『굿바이명왕성』(2009),『골목에관한어떤오마주』(2017),장편소설『칼과혀』(2017),『검은모자를쓴여인』(근간),장편동화『톨스토이할아버지네헌책방』(2012)등이있다.2016년현진건문학상,2017년혼불문학상을받았다.

목차

미미상美味傷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사랑이떠난자리에‘그것’이들어왔다
나는이제그것을사랑하게되었다
이별이란“더는한존재와눈을맞출수없다는슬픔,더는그존재와이골목에대하여,이나라에대하여,함께밥을먹는기쁨에대하여말할수없다는불안,영원히침묵해야한다는암담함,두사람사이에생겨난언어의영혼이상실되고그동안쌓아올린말의탑들이무너져추락을거듭할운명을받아들여야만하는현실”이다.그러니까,누군가와헤어져서슬픈게아니라밥을먹고대화하고산책하고살을맞댈대상이사라져서견딜수없는것이다.학원에서물리를가르치는강사이자소설가인‘나’는이받아들일수없는현실에상심하여헤어진연인‘달’의집앞을배회하다골목언저리에서해골을만난다.그는정체를알수없는그것을무언가에사로잡힌듯발굴하여집으로데려가씻기고침대에눕힌다.그렇게한여자가가고다른무엇이그의방을채운다.
그의방에서그의일부가된해골은존재자체로공간에생기를불어넣으며조금씩제영역을넓혀간다.어느날그는금속막대로해골의가슴뼈하나를퉁겨본다.믿을수없이맑은소리가난다.사랑해!하고뼈가말한다.그는해골에골(GOL)이라는이름을붙여준다.이름을부여받자골은갑자기인격을지닌존재가되어그와마주한다.그는어느순간자신의존재를비추는골을사랑하게되며,골의몸에조금씩살이붙고관절이생기고피가흐르는것을느낀다.그는다시달을만나는일따위는없을거라다짐하며골을끌어안고차가운입술에입을맞춘다.

골을안고골에입을맞추고골과대화를하는날이많아질수록가슴한쪽에서불안감이자라났다.그럴수록나는그것에집착했다.매일같이골의몸을씻고텅빈하관으로물을넘기고흰손목을꽉움켜쥐며온기를확인하기위해애썼다.꿈인듯생시인듯가슴으로안겨오는감촉을느끼다가놀라눈을번쩍뜨기도했다.(147쪽)

이러한그의집착은자신의몸짓에아무반응이없는골을향한횡포로이어진다.그는자신의열띤마음과달리어떠한말도행위도하지못하는골이갑자기보기싫어져골을내팽개친다.이제골을원래자리로보내야할때라고생각한그는새벽에골을업고달의집골목으로향한다.

우리모두몸속에해골하나씩을숨기고있다
해골은화자의집착과미망이만들어낸환영일까.이제껏그를떠나간여자들의귀환일까.역설적으로해골은집착으로부터벗어나있는존재다.까마득한세월을견뎌화자에게발견된해골에게는기억이없다.살아어떤사랑을하고어떤슬픔과기쁨을맛보았든해골의과거는오래전에해골과분리되었다.수많은질문과기호를숨기고있는해골은보는이에게일차적으로죽음과체념을상기시킨다.우리모두가몸속에해골하나씩을숨기고살아간다는것은어떤의미로모두똑같이퀭한죽음을품고살아간다는뜻인지도모른다.
어찌됐든화자에게해골은떠난자들이남겨놓은그리움,그들이남기고간흉터를지워내는구실을한다.그러다해골이자신과하나가되었다고생각했을때그는그것을처음있던자리로돌려놓기로결심한다.집착으로부터자유롭기위해그것을버리기로한것이다.그는골과함께마지막으로달의집창을바라보며그동안무엇이자신을그토록괴롭혔는지를자문한다.

도대체무엇이었을까.지난두달동안나를들끓게했던미혹은어디서비롯되었을까.그것은순식간에내삶을전복시켰다.나는자신의운명을믿지않았고시간을믿지않았으며공간에대하여공포심을느꼈다.매일밤나자신으로부터멀리달아나기위해술을마시고해골을두드렸다.(……)그런데그녀는변함없이그자리에있다.나는무엇으로부터계속뒷걸음질을쳐온것일까.(167쪽)

그는골을묻고집으로돌아오면서한존재가한존재를떠난다는것의의미에대해생각한다.그것은순환이고중첩이며,삶이란요란하지도않고영원히슬프지도않은것이라는자각이뒤따른다.

나는달이라는한여인을알고있다.어쩌면달이라는이름은사랑에빠진모든심장의이름일지도모른다.나는한때그것을완벽하게소유했고여전히무수한공간속에그런기억이중첩되어있다.시간은어떠한경우에도멈추는법이없다.그러므로인간은앞으로나아가야하고,추억은갱신되어야한다.(169쪽)

미미상:추운날캄캄한골목에서불을밝히고우리를기다리는곳
화자는한존재와철저히단절되었다는절망감을잊기위해자주골목을거닐며옛시절을회상하는데,어느날늘눈길만주고지나쳤던미미상이라는특이한이름의술집에들어간다.해골이아닌살아있는사람이그립기도했기에.아름다울미(美),맛미(味),상처상(傷)으로이루어진이름.30대중반의여자가운영하는그곳에홀로앉아그는생각한다.그녀도결국은몸속에비슷하게생긴해골하나를숨기고있을거라고.그리고미미상이존재하는한마치뼈대처럼그녀가거기에있으며,이골목을오가는누군가는그런것에의미를두고위안을받을지도모르겠다고.
얼마간의시간이흘러달에게영원한이별을고하고골도본래의자리로돌아간후그는먼발치에서마치자신을기다리듯환한불을밝히고있는미미상을바라본다.골과달사이를오가며한없이추락하거나난폭하게요동치던마음을단단하게바로세우리라마음먹은터.그는다른시공의문을열듯그곳으로헤엄쳐들어간다.

불빛에드러난내그림자를질질끌고한발두발계단으로내려갈때텅텅,발걸음소리가리듬을타며골목바깥으로새어나갔다.마침내계단을다내려갔을때거기전에본적있는어깨와입꼬리와허리와미소와말씨를지닌주인여자가,마치내가올것을예상이나했다는듯이아무도없는가게안쪽에우두커니서있다가눈인사를건넸다.
“어서오세요.밖은여전히춥죠?”(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