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연습 (심아진 짧은 소설)

무관심 연습 (심아진 짧은 소설)

$14.00
Description
관계의 내면, 무수한 찰나의 표정을 밝히는
심아진의 짧고 깊은 이야기
이 잔향 짙은 이야기들을 기어이 읽지 않고서야 배길 수 있으랴.
임정연(문학평론가)

날렵한 감각이 우아하게 착지한 스물여덟 편의 이야기

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부딪히고 견뎌내며 길을 찾는 인물들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그려온 작가 심아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짧은 소설집이다. 등단 초기 10년을 해외 이주 등으로 독자 곁에서 떠나 있었던 작가는 그 시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지난 10년간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고 사이사이 동료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품집에도 신작을 발표하며 부지런히 독자를 만났다. 『무관심 연습』은 세계의 이면과 인간 심리의 뒤편을 탐구해온 작가의 날렵한 감각이 짧은 형식과 우아하게 결합한 어쩌면 가장 심아진다운 소설집이라 하겠다.
책에는 ‘모르는 만남’, ‘쉬운 어긋남’, ‘따가운 얽힘’, ‘희미한 열림’, ‘얕은 던져짐’ 등 다섯 개의 주제로 묶인 스물여덟 편의 소설이 실렸다. 만나고 어긋나고 얽히다 열리고 던져지는 삶의 사소하고 특별한 순간순간이 그만의 개성적인 언어로 펼쳐질 것임을 짐작케 하는 주제들이다. 그 예감대로 작가는 나와 우리, 우리와 세계가 맺는 관계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표정과 감정을 또렷하게 붙잡아낸다. 슬피 눈물 흘리는 인간(Homo Lacrimosus)과 웃는 인간(Homo Ridens) 사이를 가로지르는 서늘한 통찰은 좋은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각각의 작품 끝에 딸려 있는 ‘흐르는 말’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작가가 슬그머니 건네는 단상이자 작품에 대한 열쇠말이다.
저자

심아진

1999년『21세기문학』에중편소설「차마시는시간을위하여」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0년「가벼운인사」로동아일보신춘문예동화부문에당선되었다.소설집『숨을쉬다』,『그만,뛰어내리다』,『여우』,장편소설『어쩌면,진심입니다』가있다.

목차

l.모르는만남
섬의여우
산책
한사람
감자와나
결전
나를안다고하지마세요

2.쉬운어긋남
우연의도시
도끼는도끼다
비밀
징후
왜?
사과

3.따가운얽힘
두자매
세자매
왕놀이
호모그무엇이든
천사의벌

4.희미한열림
랍스터도난사건
낙차
친구에게가는길
재회
신입사원
혁명

5.얕은던져짐
그저우연일뿐이겠는가?
개와개
모의
개와사람
이유있는길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모르는만남:“나를안다고하지마세요.나도나를알지못한답니다.”

1부‘모르는만남’에서는낯선세계,모르는존재와의대면을각기다른스타일로전개한다.상처를안고스스로섬에들어가고립된여성이뒤뜰에나타난여우가다시찾아오길간절히기다리는「여우」,짖는개를데리고동네를산책하지만세상과의거리를좁히지못하는이방인여자를그린「산책」은모국어가통하지않는이국의장소가배경이다.어려운수학문제는척척풀면서도간단한감자요리하나를해내지못해좌절을거듭하는인물(「감자와나」)이나먹성을통제하지못하는자신과의결전을결심하지만또다시패배하는인물(「결전」)들은참으로알수없고어찌할수없는존재가‘나자신’임을이야기한다.「한사람」은“한사람은결코한사람이아니며,무수한사람이깃든한사람과의사투가삶”이라는사실을한밤의돌연한릴레이방문으로보여준다.매혹과쓸쓸함,이해와오해,자포자기와적의가뒤섞인만남들이다.

쉬운어긋남:“도끼에꽃을달면도끼가아닌가요?”

2부‘쉬운어긋남’에서는친구,연인,부부사이에나타나는균열과어긋남의지점들을포착한다.균열은끝내상실로이어지고치명적인파국을불러오기도한다.프러포즈를받은호텔에서남편의배신을목격하는방식으로과거몸담았던도시와재회하는「우연의도시」,자상함이라는탈을쓴지배와통제를다룬「도끼는도끼다」,사랑이라는이름의소유욕을보여주는「비밀」,사랑이착착치워지고있었다는사실을뒤늦게알게된남자의망연함을그린「징후」등이수록되었다.「사과」에서는단한번의어긋남으로인생전체가흩어져버린사람의이야기를아름답고아프게묘사한다.

따가운얽힘:“안타깝게도,그병이십니다.”

3부‘따가운얽힘’은누구도외면할수없는노화와질병과죽음의문제와돌봄을주고받는가족에주목한다.몸이불편한언니에게거짓말을가득담아외출보고를하는동생과그말을들으며찡그렸다웃었다하는언니의하루를따라가는「두자매」,치매에걸린큰언니와그를돌보는두동생,한집에서의좋게사는60대의그들에게차례로‘그병’이닥친다는기막힌사연을따뜻한시선으로그린「세자매」,남편이코로나로세상을떠난줄도모르고병상에누워간병인이읽어주는아들의문자를듣는아내의현실이안타까움을자아내는「왕놀이」,치매에걸린어머니를돌보는딸의고뇌를인간을명명하는수많은말의무용함으로표현한「호모그무엇이든」등은관계의그물망속에서가족이야말로가장따갑게연결되어있는사람들임을새삼스럽게일깨운다.

희미한열림:“나는그에게,그는나에게구속된적이있었던가.”

4부‘희미한열림’은사람들사이를가로막는모종의‘간격’이줄어들거나허물어지는순간에대한이야기다.코로나19로인한격리상황을입주도우미의시선으로위트있게그린「낙차」는고용인과피고용인사이의엄연한격차를보여주면서도뜻밖의교감을놓치지않는다.그런가하면엉뚱한사건이때로가슴뭉클한연대의계기가되기도한다(「랍스터도난사건」).
그러나그열림의가능성은또다른벽에부딪혀언제든멈출수있다.수년만에우연히만난옛친구를다시보기위해지리산골짜기로다른세친구와함께떠난‘나’는길을헤매다결국포기하고친구가보고싶다는사실마저부정한다.나에게는특별한다른세친구가있으니까(「친구에게가는길」).신입사원에게꼰대로보이지않으려는황부장의선의와노력은번번이허방을짚는다.그가애를쓰면쓸수록속수무책,점입가경으로꼰대에가까워진다(「신입사원」).오래전적들과싸우며소위사는것처럼살았던세친구는이제변화된시속과노쇠하고볼품없어진자신들의모습을쓸쓸히받아들여야한다(「혁명」).

얕은던져짐:“시간의무기는철갑을두른영원,개의무기는넝마를꿴잠.”

5부‘얕은던져짐’은일상의바깥,경계너머를상상하는작품들이다.여러생명체의몸속을드나들면서죽을위기를넘겨가며번식하고알을낳는간질(肝蛭,간디스토마)의한살이(「그저우연일뿐이겠는가」),지루한연대기적시간을끊어내고기회의세계로뛰어든개와그개를보아온한사람(「개와사람」),흥많고재주많은두두리(도깨비)들이사라지지않도록하려는역사적모의(「모의」)등의이야기는답답한현실에묶여살아가는독자에게위로와해방감을느끼게해줄것이다.

우리를위한공간을더욱넓혀줄‘무관심연습’

작가심아진은짧은분량안에삶의속내를날카롭게잡아내는이장르의고수다.한치의흐트러짐없는서사는문학평론가임정연의표현대로“기발하다가아찔하다,과감하다가집요하다,날카롭다가서늘하다,쓸쓸하다가아득하다.”작가는이작품들을‘나’보다‘우리’를생각하며썼다.그래서“나를덜보고덜찾고덜만지”는‘무관심연습’을하며우리를위한공간을더넓히는것에대해생각했다.그것은그가추구하는문학을행하한일이기도하다.

내가사랑하는문학은,나만옳고나만소중한치졸한그릇이아니다.과도한자기애,자기연민을우주밖으로던져버린후나를포함한우리모두에게젖과꿀을나눠주는호방한그릇이다.(‘작가의말’에서)

『무관심연습』은그가바라는문학처럼우리를행복하게한다.그러니“이잔향짙은이야기들”을“기어이읽지않고서야”배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