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모두에게 뿌리로 연결되어 오래오래 살아 숨 쉴 할머니 나무의 이야기
뜨개실에 줄줄이 매달린 포근하고 다정했던 할머니의 기억
서너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종일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 방 벽 한쪽에는 매일이고 보고 싶은 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얼마나 문지르고 닦았는지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할머니의 보물 1호, 자개장이 있습니다. 또 언제든 몸을 편히 누일 수 있는 두툼한 요와 무료함을 달래 줄 텔레비전도 있지요. 할머니가 눕는 요 주변에는 리모컨과 휴지, 가족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노트 등 자주 쓰는 물건들이 뜨개실에 줄줄이 매달려 있습니다. 실만 살짝 당기면 물건을 집을 수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활하기 위한 할머니의 지혜였습니다.
할머니는 이 방에서 느리고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해가 나면 해가 나는 대로 해바라기를 하고, 해가 지면 해가 지는 대로 고요한 밤을 보냈습니다. 마치 집 안 화분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처럼, 가늘고 긴 뿌리를 움직이듯 뜨개실을 당겼다 풀었다 할 뿐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대바늘로 자개장 아래를 훑으며 잃어버린 보청기를 찾았습니다. 엉뚱하게도 대바늘에 걸려 나온 것은 낯설지만 익숙한 뜨개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실을 감으며, 이 실로 무엇을 만들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떠올렸습니다. 자식과 손녀를 위해 목도리를 뜨고 장갑을 뜨던 포근하고 다정했던 기억들이었지요.
다시 찾아올 할머니의 봄을 위해 할머니는 자개장 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그 구멍 안에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들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구멍 너머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꽤 긴 세월을 살아온 것 같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서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자개장에 새겨져 있던 새들이 재잘거리며 날아다녔고, 사슴이 경쾌한 걸음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조금 더 숲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잊고 있던 젊은 시절, 푸릇하고 싱그럽던 할머니의 봄이 있었습니다. 여린 새잎처럼 부드럽고, 이슬처럼 반짝이던 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와 무시무시한 바람을 감내해야 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계절들을 덤덤하게 목도하며, 쥐고 있던 실을 돌돌돌 감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느슨하고 부드럽게 자신을 감싸고 있던 나이테를 실 삼아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경험과 지혜를 담아 고이고이 엮었습니다. 기쁨과 위로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갈 자손들에게 남기는 귀한 유산이었습니다.
모든 게 홀가분해진 할머니는 뿌리를 땅에 내렸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되었고, 사락사락 내리는 눈이 할머니를 포근하게 덮어 주었습니다. 할머니 나무는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잠에 들었습니다.
과연 할머니에게 봄은 또 언제쯤 찾아올까요? 그리고 봄이 되면 할머니 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할머니와 우리가 뿌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한다면 《할머니 나무》는 할머니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에게 뿌리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살아 숨 쉰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재)대한불교진흥원에서 주최한 ‘제2기 대원불교 학술·콘텐츠 공모전’에서 수상하였습니다.
글을 쓴 석양정 작가는 아흔 살을 맞는 할머니의 죽음이 머지않음을 느끼며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할머니가 실내에 심어진 나무 같다고 생각하며, 오랜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다음 봄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렸지요. 석양정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이별은 우리의 끝이 아님을, 할머니의 삶은 하나도 빠짐없이 귀하고 아름다웠음을,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이 자손들에게 연결되어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조영지 작가는 정겨우면서도 따듯한 할머니를 그려 내 이야기 속 할머니를 살아 움직이게 했습니다. 실제 우리 할머니의 방처럼 늘 그리운 공간을 생생하게 그려 냈고, 수많은 할머니 나무가 살아 숨 쉬고 있을 아름다운 숲을 환상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자개장에 새겨진 섬세하고 우아한 나전 칠기가 펼쳐지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지요.
두 작가가 이렇게 함께 완성한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과, 모든 자손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결코 단절과 소멸을 뜻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사는 동안 가족에게 베풀었던 사랑과 희생,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들이 우리 마음과 마음 사이, 단단한 뿌리로 연결되어 오래오래 살아 숨 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미 겪은 이별도, 다가오는 이별도 조금은 덜 슬플지도 모릅니다.
그림책 《할머니 나무》의 할머니처럼 숲으로 소풍을 간 모든 할머니가 평온하기를, 또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남은 계절을 기쁘게 이어 가기를 바라 봅니다.
서너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종일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 방 벽 한쪽에는 매일이고 보고 싶은 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얼마나 문지르고 닦았는지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할머니의 보물 1호, 자개장이 있습니다. 또 언제든 몸을 편히 누일 수 있는 두툼한 요와 무료함을 달래 줄 텔레비전도 있지요. 할머니가 눕는 요 주변에는 리모컨과 휴지, 가족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노트 등 자주 쓰는 물건들이 뜨개실에 줄줄이 매달려 있습니다. 실만 살짝 당기면 물건을 집을 수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활하기 위한 할머니의 지혜였습니다.
할머니는 이 방에서 느리고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해가 나면 해가 나는 대로 해바라기를 하고, 해가 지면 해가 지는 대로 고요한 밤을 보냈습니다. 마치 집 안 화분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처럼, 가늘고 긴 뿌리를 움직이듯 뜨개실을 당겼다 풀었다 할 뿐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대바늘로 자개장 아래를 훑으며 잃어버린 보청기를 찾았습니다. 엉뚱하게도 대바늘에 걸려 나온 것은 낯설지만 익숙한 뜨개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실을 감으며, 이 실로 무엇을 만들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떠올렸습니다. 자식과 손녀를 위해 목도리를 뜨고 장갑을 뜨던 포근하고 다정했던 기억들이었지요.
다시 찾아올 할머니의 봄을 위해 할머니는 자개장 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그 구멍 안에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들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구멍 너머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꽤 긴 세월을 살아온 것 같은, 아름다운 나무들이 서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자개장에 새겨져 있던 새들이 재잘거리며 날아다녔고, 사슴이 경쾌한 걸음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조금 더 숲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잊고 있던 젊은 시절, 푸릇하고 싱그럽던 할머니의 봄이 있었습니다. 여린 새잎처럼 부드럽고, 이슬처럼 반짝이던 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와 무시무시한 바람을 감내해야 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계절들을 덤덤하게 목도하며, 쥐고 있던 실을 돌돌돌 감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느슨하고 부드럽게 자신을 감싸고 있던 나이테를 실 삼아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경험과 지혜를 담아 고이고이 엮었습니다. 기쁨과 위로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갈 자손들에게 남기는 귀한 유산이었습니다.
모든 게 홀가분해진 할머니는 뿌리를 땅에 내렸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되었고, 사락사락 내리는 눈이 할머니를 포근하게 덮어 주었습니다. 할머니 나무는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잠에 들었습니다.
과연 할머니에게 봄은 또 언제쯤 찾아올까요? 그리고 봄이 되면 할머니 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할머니와 우리가 뿌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한다면 《할머니 나무》는 할머니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에게 뿌리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살아 숨 쉰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재)대한불교진흥원에서 주최한 ‘제2기 대원불교 학술·콘텐츠 공모전’에서 수상하였습니다.
글을 쓴 석양정 작가는 아흔 살을 맞는 할머니의 죽음이 머지않음을 느끼며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할머니가 실내에 심어진 나무 같다고 생각하며, 오랜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다음 봄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렸지요. 석양정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이별은 우리의 끝이 아님을, 할머니의 삶은 하나도 빠짐없이 귀하고 아름다웠음을,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이 자손들에게 연결되어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조영지 작가는 정겨우면서도 따듯한 할머니를 그려 내 이야기 속 할머니를 살아 움직이게 했습니다. 실제 우리 할머니의 방처럼 늘 그리운 공간을 생생하게 그려 냈고, 수많은 할머니 나무가 살아 숨 쉬고 있을 아름다운 숲을 환상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자개장에 새겨진 섬세하고 우아한 나전 칠기가 펼쳐지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지요.
두 작가가 이렇게 함께 완성한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과, 모든 자손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결코 단절과 소멸을 뜻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사는 동안 가족에게 베풀었던 사랑과 희생,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들이 우리 마음과 마음 사이, 단단한 뿌리로 연결되어 오래오래 살아 숨 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미 겪은 이별도, 다가오는 이별도 조금은 덜 슬플지도 모릅니다.
그림책 《할머니 나무》의 할머니처럼 숲으로 소풍을 간 모든 할머니가 평온하기를, 또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남은 계절을 기쁘게 이어 가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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