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

페넬로페: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

$25.00
Description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
여행가방을 풀자, 죽은 소녀가 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남자들이 세상을 떠도는 동안 집을 지키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남자들은 모두 집을 떠나 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자, 아들인 텔레마코스도 아버지를 찾아 집을 떠난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 주위에 몰려든 구혼자들 역시 따지고 보면 제 집이 아닌 곳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남편과 아들이 없는 집에서 온갖 유혹에 시달리며 꿋꿋이 버티는 인물이다. 여자들이 어머니나 아내로 형상화되고 집과 고향에 붙박인 존재로 여겨진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집밖으로 나와 자기 몫의 직업과 재산, 명예를 갖게 된 여성이란 지극히 현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벨기에 작가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그래픽노블 『페넬로페: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는 그리스의 서사시를 뒤집어 현대적인 버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 작품에서 집을 떠나는 사람은 여자이자 엄마인 페넬로페다. 인도주의 의료단체에서 일하는 외과의사 페넬로페는 수시로 폭격이 일어나는 시리아에 머물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휴가 기간에만 얼마간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딸을 만난다. 폭격을 맞아 피를 흘리는 시리아 소녀는 시를 쓰는 다정한 남편이나 이제 막 사춘기에 이른 귀여운 딸만큼이나 페넬로페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페넬로페에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사로서 자아실현을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인류를 위해 이바지한다는 좀더 고귀한 삶의 목표와 의미에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비록 중동 지역의 분쟁은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요원하고, 수술에 실패해 어린 소녀의 죽음을 보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지만 페넬로페는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벨기에 집으로 돌아와 평화롭고 세속적인 일상을 맞닥뜨리는 순간, 페넬로페의 삶은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과연 진짜 내 자리는 어디인가.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동안 페넬로페가 겪는 혼란과 불안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벨기에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자 가방 안에는 페넬로페가 치료하다 결국 죽어버린 시리아 소녀가 들어 있다. 물론 페넬로페는 죽은 소녀가 실재할 수 없으며, 부부의 침대 속까지 따라와 눕는다는 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심리 상담을 해봐도 딱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시리아 소녀는 페넬로페가 마음 편히 느긋하게 휴가를 보내는 걸 바라는 것 같지 않다. 페넬로페는 소녀를 옆에 둔 채 벨기에에서 보내는 안온한 삶을 미심쩍게 바라본다. 그저 길을 걷다가도 폭탄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태로운 소녀에게 라틴어 시험과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새 외투를 사러 엄마와 함께 외출하는 벨기에 십대 소녀는 얼마나 먼 존재였을까. 크리스마스 트리와 와인에 대해 고심하고 밤새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쓰는 태평한 삶이란 이미 죽어 버린 시리아 소녀에게 얼마나 아득한 일이었을까. 페넬로페는 이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유럽 지식인으로서 두 세계의 간극과 거리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괴로워한다. 말하자면 페넬로페에게 진득하게 따라붙는 시리아 소녀의 환영은 페넬로페가 짊어진 죄의식인 셈이다. 이때 페넬로페가 느끼는 죄의식은 오래전 유럽 제국주의가 피식민지에 저질러놓은 악에 대한 원죄 같은 것이다. 이 도저한 죄의 대가를 어떻게 치를 수 있을까.
저자

유디트바니스텐달

1974년생,벨기에만화작가이자일러스트작가.정치망명난민인아프리카토고의청년과벨기에여대생의사랑을그린첫작품〈소녀와흑인소년〉으로단번에독자들의마음을사로잡았다.2권으로된이이야기는앙굴렘만화페스티벌에서두번이나대상후보에올랐고,여러언어로번역되었다.2012년에출판된그래픽노블〈당신의목소리가사라지는동안〉은출판되자마자비평가들로부터찬사를받고,세번이나아이스너상의후보로지명되었다.유디트는아이들을위한책의삽화들도그리고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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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페넬로페가머물곳은어디인가

전쟁영웅오디세우스가전쟁이끝난이후에도끝없이바다위를헤맨것은신들의분노라는외부적힘때문이다.『페넬로페:전쟁터에서돌아온여자』의페넬로페는자의에의해집을떠났으나끝없이집으로돌아오라는요청에시달린다.요행히가정적인남편이집을지키고딸아이를키우지만늘상집을떠나있는페넬로페에게는예의불편하고까칠한시선이따라붙는다.아이는누가키우느냐는질문은남자동료들은결코받지않을종류의것이고,아이가자라는동안옆에있어주지못하는엄마에대해원망과안타까움이섞인잔소리도예사로쏟아진다.왜집에머물러있지않느냐는질문은여자들에게가해지는사회적인압박이며,인류애에이바지하는외과의사에게도예외가아닌것이다.따라서벨기에집으로돌아온페넬로페는결코편하지않다.한번쓰고버려질플라스틱장식품으로가득한크리스마스시장과어둡고축축한시리아소녀의환영,부재중인엄마에대한유형무형의비난이뒤죽박죽인크리스마스파티란따뜻하고안락한삶의자리가될수없는것이다.
그러나알고보면,페넬로페를딱하게바라보는언니는자신의삶을강력하게통제하고있는강한모성이라기보다아이들을위해바람피는남편을무력하게바라보는텅빈존재다.엄마의삶이란,여자의삶이란어떻게든위태로울수밖에없으며,공허할수밖에없는것일까.그렇다면페넬로페의불안과슬픔은어디에서연유하는것일까.『페넬로페:전쟁터에서돌아온여자』는겉으로보기에성공한외과의사로서가치있는삶을살고있는듯보이는페넬로페가겪는혼란을펼쳐놓음으로써현대여성이겪는다양한방면의고통을들여다본다.우리는페넬로페의짦은휴가기간을통해이러한고통이페넬로페한사람의개인적인문제가아니며사회적·역사적맥락을갖고있다는것,문제가한없이복잡한만큼손쉬운해결책역시없다는것을이해하게되는것이다.그러므로우리의시선을문제로부터거두지말아야한다는것도.이야기의마지막에페넬로페는다시여행가방을싼다.시리아소녀와함께자신이있어야할곳으로돌아가기위해.폭탄이쏟아지고피흘리는소녀들이있는그곳으로.아무래도페넬로페가머물곳은집이아닌것이다.
유디트바니스텐달은벨기에의만화작가이자일러스트작가로,그의첫작품『소녀와흑인소년』이정치망명난민인아프리카토고의청년과벨기에여대생의사랑을그린데서알수있듯이,국제분쟁과인종차별,난민문제등에꾸준한관심을기울이고있다.현대자본주의의수혜자로서유럽인이가져야할책임의식에대해,개발도상국시민들의고통과슬픔에대해이야기하며결국은보다가치있는삶이무엇인가에대해생각해보기를권하는작가다.유디트의작품들은유연한그림과장면전환,내레이션과인물간대화가리드미컬하게전개되며한편의영화를보는듯감상할수있다.이진중한작가는유럽문학의무거운주제를컷분할된만화를통해전달함으로써독자들이묵직한주제에보다쉽고편하게접근할수있도록안내하는것이다.최근벨기에에서가장주목받는그래픽노블작가라할만하다.그래픽노블은텍스트로가득한소설보다금세,쉽게읽을수있지만책장을덮은다음다시앞으로펼쳐보았을때새로운이야기가시작된다는것이장점이다.『페넬로페:전쟁터에서돌아온여자』는여러번읽을수록행간에놓은다양한메시지와질문들이반짝거리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