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붕대스타킹 - 반올림 62

얼음붕대스타킹 - 반올림 62

$17.80
Description
성폭력은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우리가 슬픔과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이야기는 아주 충격적인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망설이다가 들어선 어두운 골목길, 얼굴 없는 두 사람의 취객, 내팽개쳐진 책가방과 찢겨 나간 교복 치마, 뺨을 갈기고 온몸을 밀착해 들어오는 거대한 공포, 그리고 필사의 탈출…… 김하은의 청소년소설 『얼음붕대스타킹』은 첫 장부터 열일곱 살 여학생에게 가해진 성폭행 미수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면 안 돼!”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외침에 따라 가까스로 성폭행은 피했으나 누군지도 모를 사내로부터 당한 폭력적이고 굴욕적인 대우는 선혜를 차츰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더구나 비밀에 부쳐 두었던 불운한 사고가 학교 안에서 심심풀이 이야깃거리로 소비되며 성폭행 사건이라고 퍼져 나가자 선혜는 날씨와 상관없이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에 시달린다. 교복이 동복에서 춘추복으로, 다시 하복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검정색 겨울 스타킹을 벗을 수 없는 것은 다 그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나의 아픔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교복 입은 여학생에게 나름의 꿈과 첫사랑의 희망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술 취한 사내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테고, 사고를 당한 누군가가 겪고 있을 지옥 같은 시간을 이해했다면 아이들이 악의 없는 호기심으로 소문을 부풀려나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결국 선혜가 추위에 시달리는 근원적인 이유는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다는 고립감이다. 악착스럽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엄마는 하나뿐인 딸을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지만 정작 딸의 아픔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알긋나?” 그리하여 선혜는 아무 일도 아닌 듯 다짐을 받는 엄마에게 분노하는 한편, 짝사랑하는 선배의 안부 문자 한 통에 절실하게 매달린다. 누군가 나의 스위치를 켜 준다면!
그러나 선혜를 구원해주는 손길은 전혀 엉뚱한 데로부터 다가온다. 어렸을 때부터 한동네에 자라 요리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일과처럼 선혜네 슈퍼마켓에서 늘 바나나우유를 사 마시는 중학교 동창 창식이. 심심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를 물어 오는 창식이는 차츰 선혜의 일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부담스럽지 않게 선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선혜가 ‘그 일’에 대해 털어놓자 창식이는 말한다. “너, 힘들었겠다.” 그 순간, 오래 눌러두었던 울음을 터뜨리는 선혜에게 문득, 한여름의 더위가 급습해온다. 선혜에게는 아무 일 아니라고, 힘내라고, 잊어버리라고 힘주어 건네는 말보다는 힘들었겠다고, 다 알겠다고,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마음이 훨씬 절실했던 것. 그리고 마침내 선혜는 자신의 스위치를 자신의 힘으로 켠다.

추위를 감싸안고 꽃을 피워낼 수 있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얼음붕대스타킹』은 불시에 닥친 사고와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 때문에 고통 받는 선혜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전개하지만 선혜의 문제가 오로지 성폭력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명문 외국어고등학교와 학교 앞 고시원이 배경이니만큼 선혜와 선혜 주위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사회적 배경은 녹록치 않다. 중학교 때 공부를 곧잘 잘했던 선혜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고민하고, 원어민 수준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친구들 때문에 기가 죽기 일쑤다. 여기에 고시원 옆방에 살면서 선혜에게 도움을 주는 현이 언니는 취업과 알바 때문에 고단한 생활을 해 나가는 인물이다. 현이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근사한 삶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나도 대학 나왔거든. 그것도 어마어마 좋은 학교야. 그럼 뭐하냐.”
그렇다고 『얼음붕대스타킹』이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을 절망적으로 그리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선혜는 친구들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소문을 퍼뜨리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지만 그들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공유하면서 큰 위로를 받는다. 악의 없이 행동하는 친구들을 미워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친구들에게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선혜의 모습은 본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바람직한 자질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선혜가 그 위험한 순간 온 힘을 다해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끝내 슬픔과 상처를 극복한 것도 결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고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빛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므로.
『얼음붕대 스타킹』은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의 전방위적인 성폭력 문제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되기 이전에 십대 성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청소년소설이다. 이 조심스러운 이야기는 성폭력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소재 차원에서 접근하는 대신 십대 특유의 예민한 정신세계에 가해진 폭력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앓아누웠으면서도 아무 일 아니라고 고집을 피우는 엄마를 향해 선혜가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긴 뭐가 없어!”라고 외치며 유리창을 박살 낼 때,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옆 사람의 괴로움에 눈감을 것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한 것이다. 또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기를 기다리던 선혜가 창식이를 만나 위로받고 자기 안에 담긴 용기를 되찾는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십대를 위한 연애소설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으리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최소한의 몸짓이 필요한 법. 알고 보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이 소설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새롭게 개정판을 출간한다. 김하은 작가는 개정판을 준비하며 새로운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초판에서 익명으로 처리했던 가해자들이 검거되어 처벌받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작가는 “독자의 요구이면서, 선혜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기를 원하리라 판단했다. 더불어 2차 가해나 방관도 멈추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잘못한 사람은 벌 받고, 피해자는 몸과 마음을 잘 회복하는 과정이 당연한 사회이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조금 따뜻해질 테니까.” 어둡고 외로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가닿으면 좋을 소설이다.

저자

김하은

저자:김하은
산책을좋아하고다양한분야에관심이많다.『꼬리달린두꺼비,껌벅이』로한국안데르센대상을,『얼음붕대스타킹』『변사김도언』으로한국문화예술위원회창작기금을받았다.『네소원은뭐야?』『우리반퓰리처』『우리반안중근』『달려라,별!』『나한테사과하세요!』『우리는지구를지키는요리사』등의동화와청소년소설『오늘밤앱을열면』『트라우마』등을썼다.

목차

프롤로그7
1.그날9
2.얼어붙는단어22
3.얼음붕대33
4.아무거나누구거나41
5.비밀남자친구57
6.반바지70
7.바나나우유81
8.검정스타킹92
9.문자99
10.학생증107
11.스위치114
12.맨다리128
13.깨진거울135
14.선혜슈퍼145
15.빈터154
16.두사람165
17.고백179
18.매듭192
19.녹아내린얼음붕대201
에필로그211

작가의말218
작가가하고싶은말222

출판사 서평

성폭력은영혼을어떻게망가뜨리는가
우리가슬픔과상처를극복하는방법

이야기는아주충격적인사고로부터시작된다.망설이다가들어선어두운골목길,얼굴없는두사람의취객,내팽개쳐진책가방과찢겨나간교복치마,뺨을갈기고온몸을밀착해들어오는거대한공포,그리고필사의탈출……김하은의청소년소설『얼음붕대스타킹』은첫장부터열일곱살여학생에게가해진성폭행미수사건을정면으로다룬다.“무슨일이있어도두려워하면안돼!”머릿속에맴돌고있던외침에따라가까스로성폭행은피했으나누군지도모를사내로부터당한폭력적이고굴욕적인대우는선혜를차츰고통으로몰아넣는다.더구나비밀에부쳐두었던불운한사고가학교안에서심심풀이이야깃거리로소비되며성폭행사건이라고퍼져나가자선혜는날씨와상관없이온몸이얼어붙는듯한추위에시달린다.교복이동복에서춘추복으로,다시하복으로바뀌는동안에도검정색겨울스타킹을벗을수없는것은다그때문이다.
누군가의고통을똑같이느낄수있다면,나의아픔을누군가와나눌수있다면이세상의모든폭력은사라질지도모른다.교복입은여학생에게나름의꿈과첫사랑의희망이있다는걸알았다면술취한사내들도함부로대할수없었을테고,사고를당한누군가가겪고있을지옥같은시간을이해했다면아이들이악의없는호기심으로소문을부풀려나가지도않았을것이다.결국선혜가추위에시달리는근원적인이유는누구에게도이해받지못한다는고립감이다.악착스럽게슈퍼마켓을운영하는엄마는하나뿐인딸을위해어떤희생도마다하지않지만정작딸의아픔에는공감하지않는다.“니는아무일도없었다.알긋나?”그리하여선혜는아무일도아닌듯다짐을받는엄마에게분노하는한편,짝사랑하는선배의안부문자한통에절실하게매달린다.누군가나의스위치를켜준다면!
그러나선혜를구원해주는손길은전혀엉뚱한데로부터다가온다.어렸을때부터한동네에자라요리고등학교에진학했고,일과처럼선혜네슈퍼마켓에서늘바나나우유를사마시는중학교동창창식이.심심하게,아무렇지도않게안부를물어오는창식이는차츰선혜의일상에서한자리를차지하게되고,부담스럽지않게선혜에대한마음을고백한다.그리고선혜가‘그일’에대해털어놓자창식이는말한다.“너,힘들었겠다.”그순간,오래눌러두었던울음을터뜨리는선혜에게문득,한여름의더위가급습해온다.선혜에게는아무일아니라고,힘내라고,잊어버리라고힘주어건네는말보다는힘들었겠다고,다알겠다고,이해한다고고개를끄덕여주는마음이훨씬절실했던것.그리고마침내선혜는자신의스위치를자신의힘으로켠다.

추위를감싸안고꽃을피워낼수있게
너의이야기를들려줘

『얼음붕대스타킹』은불시에닥친사고와주위사람들의몰이해때문에고통받는선혜의이야기를중심에놓고전개하지만선혜의문제가오로지성폭력문제에국한되는것은아니다.명문외국어고등학교와학교앞고시원이배경이니만큼선혜와선혜주위인물들을감싸고있는사회적배경은녹록치않다.중학교때공부를곧잘잘했던선혜는성적이잘나오지않아고민하고,원어민수준의외국어를구사하는친구들때문에기가죽기일쑤다.여기에고시원옆방에살면서선혜에게도움을주는현이언니는취업과알바때문에고단한생활을해나가는인물이다.현이는대학에입학한이후근사한삶을꿈꾸는아이들에게퉁명스럽게말한다.“나도대학나왔거든.그것도어마어마좋은학교야.그럼뭐하냐.”
그렇다고『얼음붕대스타킹』이이시대청춘들의현실을절망적으로그리고있는가하면그렇지않다.선혜는친구들에게비밀을털어놓지못해전전긍긍하고가장가까운친구가소문을퍼뜨리는모습을무기력하게바라보지만그들과함께평화로운일상을공유하면서큰위로를받는다.악의없이행동하는친구들을미워하기보다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또친구들에게위화감을느끼면서도그들에게알게모르게긍정적인영향을받는선혜의모습은본래청소년이라면누구나갖고있는바람직한자질로보인다.어찌되었든선혜가그위험한순간온힘을다해도망칠수있었던것도,끝내슬픔과상처를극복한것도결국은스스로의힘으로해낸일이다.어떤상황에서든우리는누군가를만나인연을맺고관계를진전시켜나가면서살아가야한다.그러다보면그들에게서위로를받고빛을보고앞으로나아갈힘을얻는것이므로.
『얼음붕대스타킹』은미투운동으로우리사회의전방위적인성폭력문제가적극적으로이야기되기이전에십대성폭력문제를정면으로다룬청소년소설이다.이조심스러운이야기는성폭력문제를본격적으로다루면서도소재차원에서접근하는대신십대특유의예민한정신세계에가해진폭력의문제로확장시킨다.앓아누웠으면서도아무일아니라고고집을피우는엄마를향해선혜가“제발,제발!아무일도없긴뭐가없어!”라고외치며유리창을박살낼때,그것은타인의고통에둔감하고옆사람의괴로움에눈감을것을요구하는세상을향한것이다.또누군가에의해구원받기를기다리던선혜가창식이를만나위로받고자기안에담긴용기를되찾는모습은무척이나매력적이다.십대를위한연애소설이라고봐도큰무리가없으리라.다른사람의아픔을이해하는데특별한용기가필요한것은아니다.단지누군가의이야기를귀담아들으려는최소한의몸짓이필요한법.알고보면우리가소설을읽는이유도바로그것이아닐까.
시간이흘러도여전히유효한이소설의의미를되살리기위해새롭게개정판을출간한다.김하은작가는개정판을준비하며새로운에필로그를덧붙였다.초판에서익명으로처리했던가해자들이검거되어처벌받는장면을넣은것이다.작가는“독자의요구이면서,선혜도가해자가제대로처벌받기를원하리라판단했다.더불어2차가해나방관도멈추길간절히바라는마음을담았다”고설명했다.“잘못한사람은벌받고,피해자는몸과마음을잘회복하는과정이당연한사회이길바란다.그래야우리도조금따뜻해질테니까.”어둡고외로운고통의터널을지나고있을모든이들에게가닿으면좋을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