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우물에서 만나

보름 우물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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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차디찬 우물가에 버려진 아이 정이
비단 댕기 반쪽을 들고 비밀을 찾아 떠나다
공식적으로 한국 천주교 교회가 세워진 때는 1784년(정조8년)이지만 실제 역사는 더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7세기 중국 사절단으로 파견되었던 지식인들이 서학을 접하고 하나의 학문으로써 관심을 가지면서부터이다. 천주교 서적을 읽던 선비들은 ‘하느님 인간의 평등 사상’에 매료되어 공부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점차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한국의 천주교는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 신앙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문제는 성리학 기반의 조선 왕조에서 외래 종교가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더욱이 천주교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을 베풀던 정조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으니, 순조의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와 노론 세력에 의해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윤수의 역사동화 『보름 우물에서 만나』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된 시기, 그중에서도 1801년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름 우물에서 만나』의 주인공 정이는 갓난아기였을 때 부모를 잃고 최씨 부부 집에 의탁하여 매일매일 구박을 받으며 부엌데기로 살아간다. 동갑내기 정우가 슬쩍슬쩍 마음을 써 주지만 천애고아의 신세가 달라질 리 없다. 정이가 유일하게 위로를 받는 곳은 자신이 버려진 장소, ‘보름 우물’이다. 망나니 딸의 저주에 걸려 한 달에 보름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보름 우물. 정이는 보름 우물에 물을 길러 오가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고, 슬프고 외로울 때면 우물벽에 기대어 마음을 다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열두 살 정이는 그야말로 혈혈단신 외톨이가 되고 만다. 이제 정이는 정우가 남긴 편지와 길게 찢겨 있는 푸른 비단 댕기 하나를 들고 홀로 살아가야 한다.
버려진 아기의 품에 있었다는 비단 댕기는 정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왜 버려졌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글을 몰라 읽지 못하는 편지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이야기는 정이가 푸른 댕기와 정우의 편지에 담긴 비밀을 찾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어린 정이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야 하는 동시에 매일매일 먹고 자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선 시대 보육시설인 ‘유집소’, 거지 아이들이 모여 사는 움막집, 북촌 양반 집의 행랑채 등을 옮겨 다니며 돌봐주는 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 길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부모가 누구이고 자신이 어떤 이유로 버려졌는지 알게 되는 정이. 이제 정이는 온전한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저자

윤수

저자:윤수
2021년경상일보신춘문예에동화가당선되어동화작가가되었다.2023년서울문화재단첫책발간지원사업에선정되었으며,장편동화『요괴수호자』를지었다.『펭귄의파란조끼』에단편동화「아슬랑캠프-단한줄의편지」가,『친구가좋아하는아홉가지이야기』에단편동화「코딱지나무」와「라벤더」가실렸다.아이처럼상상하고이야기나누는일을좋아한다.‘윤수’는필명이다.

목차


1.이별7
2.유집소27
3.억울한누명47
4.수표교로65
5.거지골81
6.북촌의삶115
7.재회141
8.불신의시대159
9.밀고179
10.푸른댕기의비밀189
11.우물속으로201
12.붉은우물물215
13.보름우물가소녀225
작가의말239

출판사 서평

1801년신유박해와한국천주교의역사
이름없이사라진사람들을기억하는이야기

일가친척하나없는떠돌이소녀에게세상은삭막하고비정한곳이다.정이는양반의권세에눌려누명을쓰거나속좁은어른들에게배척을받는등온갖시련을겪는다.특히같은처지에있는친구복순이에게배신당하고멍석말이를당한일은깊은충격과상처를남긴다.어째서가난하고힘없는사람들끼리싸워야할까?조선처럼신분제가엄격한사회에서천민,고아와거지,병자,정이처럼불쌍한이들이사람대접받고사는일은영영불가능한일일까?모든상황이여의치않지만정이가쉽사리좌절하지않는것은기꺼이도움의손길을내밀고자신이가진것을나누어주는사람들이있기때문이다.거지아이들을돌보고이끌어주는왕초홍월과구걸한밥을나눠주는만이,가난하고비천한자들에게잔치음식을베풀어주는북촌마님등은정이에게함께어울리고서로돕는일이얼마나중요한지일깨워준다.

정이는북촌마님에게글을배우는동안,나라에서금하는천주학을믿는사람들에게호기심을느낀다.모든사람이다똑같이사랑받을존재라니,이보다더좋은말이있을까.평생쓸쓸하고외롭게자란정이에게는국가의이념이나사대부선비들의정쟁보다하느님의사랑이훨씬이해하기쉽다.더좋은뜻을위해모여서기도하는사람들과신앙을가졌다는이유로사람들을잡아가두고죽이는국가권력중정이가어느편에설지는분명해보인다.우여곡절끝에정이가자신보다더어리고더연약한아이들의보호자가되어주기로나서는것은필연적인결말일것이다.

‘보름우물’은지금도서울한복판에석정보름우물터라는유적지로남아있는데,실제로신유박해당시수많은순교자들이발생하자갑자기물맛이써졌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또한작품속에는북촌과명례방(명동)을중심으로비밀리에형성되었던신앙공동체,주문모신부와강완숙,정약용형제등실존했던역사적인물들도대거등장한다.그러나『보름우물에서만나』는천주교에대한박해나정치적탄압에초점을맞추는대신이비통하고혼란스러운시기,열두살정이가자신의뿌리를찾아가는이야기를중심에놓는다.천애고아정이는오직살아남기위해온갖시련을겪으며,비단댕기를쥐고자신의이야기를찾아나선다.비록그끝에는신분상승을이뤄줄출생의비밀도,따스한해피엔딩도없지만사람과사람을이어주는보편적인사랑의의미를깨닫게된다.이름없이사라진사람들을기억하는이야기이자,그사랑과신념이어떻게다음세대로전해졌는지이야기하는묵직한작품이다.최근콘클라베로주목을받았던가톨릭이한국에서어떤의미를갖는지이해하는데도움이되는동시에씩씩하고당당한주인공과속도감있는전개가돋보이는동화로,고학년어린이독자들이몰입해서읽기좋다.

책속에서

“어,내일부터일줄알았는데…….원래이우물이보름동안은물이탁해지고맛도없어서못먹고요,나머지보름동안은물맛이좋아지거든요.그때는늘사람들로붐벼요.그래서이우물이름도보름우물이고요.”
“그래?”
정이는작은목소리로여인에게말했다.
“아주아주먼옛날에양반아들을사랑한망나니의딸이여기에빠져죽었대요.예전에는전혀먹을수없었는데임금님이망나니딸의혼령을위해제를지내고나서야,그나마보름동안은먹을수있게되었다고하더라고요.아마,망나니딸의화가반만풀렸나봐요.”
“참신기한이야기구나.”
여인은정이를유심히바라보더니환하게웃었다.(12쪽)

정이는가만히서서바라만보았다.소달구지에실린짐,최씨아저씨,최씨부인,그리고정우까지.그들의모습이덜커덩거리며점점멀어졌다.
달구지가시야에서완전히사라지는순간,정이의다리가힘없이풀렸다.마당에주저앉았다.흙바닥의냉기가고스란히느껴졌다.손가락이떨리고가슴이아팠다.매섭게부는바람에뺨이시려왔지만,뜨거운눈물은멈출줄모르고계속흘렀다.(25쪽)

“저아이를당장멍석말이하거라.다섯대만쳐도죽을것이다.”
“아니,저아니에요!”
정이가소리쳤다.마지막기대를담아복순이를바라보았지만,복순이는정이를외면했다.정이의가슴이철렁내려앉았다.
“사,살려주세요!”
정이의억울한외침이멍석과함께말려들어갔다.
순식간에시야가어두워졌다.퍽하는소리와함께허벅지에불타는듯한고통이전해졌다.목이바짝마르고손끝이싸늘해졌다.정이는정신이아득해졌다.두번째퍽하는소리에등은화끈거리고차가운공기가폐속으로스며드는것같았다.온몸이점점굳어졌다.세번째매질에점점의식이희미해졌다.눈꺼풀이스르르감겼다.(63쪽)

“그래도일단데려가는게어때?여기있다간금세떠내려갈지도몰라.왕초가사람은서로돕고살아야한댔잖아.서로사랑하면서말이야.천치님의뜻이라고알려줬잖아.”
“이바보야!천치님이아니고천주님!그리고너!왕초가사람많은데서천주님소리하지말랬지.머리에돌이들었냐!”
개똥이가버럭소리를질렀다.
“아,천치든천주든.우리왕초라면당연히얘를데리고갔을거라고.”
“안된다고분명히말했어.너자꾸내말안들을래?”
“그게아니고…….왕초가!”
만이의말을듣는둥마는둥개똥이는아랑곳하지않고걸음을재촉했다.나머지아이들도떨떠름하게그뒤를따랐다.정이는수표교아래에서점점멀어지는아이들을바라보다가무언가를결심한듯벌떡일어났다.(78쪽)

“너도믿을거야?”
복순이의목소리에특별한감정이묻어나진않았다.장터에서신기한물건을구경할때처럼,그저가벼운호기심인듯했다.
정이는한참을고민하다가조심스레입을열었다.
“잘모르겠어.여기오는사람들보면천주학에서는서로도우며착하게살아가라고가르치는것같거든.우리마님이나같은아이글공부도알려주고…….그런거보면천주학이나쁜것같지않은데왜나라에서는금지하는걸까?”
복순이가피식웃었다.
“못하게해서그래.하지말라니까사람들이몰래몰래믿고,몰래몰래이집에오는거지.우리마님이양반인데다가,남편도없이혼자살고.게다가여긴여인들만사는곳이라서관아에서함부로뒤지지못한대.그래서이집으로천주학을믿는사람들이점점더모이는거라더라.”
정이는말없이복순이의말을곱씹었다.천주학은나라에서금하는것이었다.하지만그안에서마님은다른어떤양반보다도자유로워보였다.오히려거리낌없이자신의신념을지켜나갔다.정이는그모습이우러러보였다.(136쪽)

“정이야,어떻게왔니?다치진않았니?”
“저는괜찮아요.”
홍월이정이의손목에묶인푸른댕기를바라봤다.홍월의눈동자가살짝흔들렸다.
“정이야.잘들어.그댕기에대해말해줄게.”
정이의심장이크게요동쳤다.온몸이얼어붙은듯움직이지않았다.
“너를찾으려고내가거지골왕초가된거야.혹시널,어디선가마주칠수있을까싶어서…….”
“설마……제어머니세요?”(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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