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시대의 언어들)

훈의 시대 (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시대의 언어들)

$15.07
Description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작가의 신작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 시대의 욕망을 마주하다

《대리사회》가 우리 사회의 몸의 기록이었다면
《훈의 시대》는 그 언어의 기록이다!


어느 시대에든 그 구성원들을 규정하고 통제하기 위한 언어, ‘훈’이 있다. 우리가 이미 소멸되었을 것으로 믿는 순결, 정숙, 착한 딸, 근면,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등의 언어들이 학교에, 회사에, 개인이 존재하는 모든 일상의 공간에 새겨져 있다. 이전에는 별 문제 없다고 여겼던 일상의 언어들이 조금은 다른 눈높이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한 시대가 가진 적나라한 욕망이다. 이 훈들은 물리적 실체를 가진 상징물이라기보다는 마치 액체처럼 개인에게 가서 닿는다. 때로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때로는 잘게 분사되어 그 구성원들을 그 욕망에 젖은 대리인간으로 만들어 낸다.
와이즈베리 신작 《훈의 시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대리사회》의 전작들을 통해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개인의 행동과 언어들을 피력한 저자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개인들에게 보내는 작은 제안이다. 아내를 통해 듣게 된 출신여고의 교훈이, 대리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회사의 사훈이, 친구와 동네를 걷다가 마주한 빌라의 이름들처럼 우리 일상의 평범한 훈들이 저자의 물음표를 계속 크게 만들어 주었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일은 누군가를 구속시키고 승리를 선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 주변의 언어를 전복시킬 때 비로소 찾아온다.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고, 우리를 규정하는 언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대리인간’이 되지 않고 이 ‘훈의 시대’를 살아가게 할 것으로 믿는다.
저자

김민섭

1983년,서울에서태어났다.309동1201호라는가명으로《나는지방대시간강사다》를썼고,그이후대학에서나와서‘김민섭’이라는본명으로이사회를거대한타인의운전석으로규정한《대리사회》를썼다.저자는대학에서교수도아니고학생도아닌,어느중간에위치한경계인이었다.그는그러한중심부와주변부의경계를넘나드는이들에게보이는어느균열이있다고믿는다.그시선을유지하면서작가이자경계인으로서개인과사회와시대에대한물음표를당신에게건네려고한다.가볍지만무거운,그러나무겁지만가벼운김민섭이라는하나의장르가되고싶어한다.
대표저서로는《아무튼,망원동》,《고백,손짓,연결》등이있다.

목차

추천의말

프롤로그:이글은한개인의‘제안’이다

1부욕망의언어,‘훈’에대하여
훈은우리에게무엇이었나
액체화된근대,대리인간이된개인들

2부학교의훈
참된일꾼,착한딸,어진어머니
‘여학교’라는이름의훈
순결캔디와겨레의밭
공부하는몸이될수없는존재들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린
애국조회와교‘장’의욕망들
훈을바꾸는어려움:원주여고의사례
훈을바꾼학생들:강화여고의사례

3부회사의훈
우선,대기업이란무엇인가
헌법이된사훈들
고객의만족,그리고도전적인회사원
창업주의훈을책임지는‘을’들
나쁜훈,이상한훈,우아한훈

4부개인의훈
당신이사는곳이당신을증명합니다.
폐쇄,단절,통제로서의고급화
자신의할일을한관리소장
CCTV에갇힌건물주들
집결되는욕망들,기업도시와박사마을
15,000원의오늘의훈
당신이잘되면좋겠습니다

에필로그:우리가무엇을바꿀수있을까요

출판사 서평

우리사회의또다른‘괴물’에조요경을비추다

1990년대이전에학창시절을보냈던세대라면애국조회를선명하게기억할것이다.매주월요일이면전교생이운동장에모여‘국기에대한맹세’를하고,교장선생님의‘훈화’를들은뒤‘교가’를부르고,‘교훈’과‘급훈’이칠판옆높은곳에내걸린교실로들어가곤했다.그때학교에서익힌것은국영수같은교과지식뿐만이아니었다.온갖형식의‘가르침’,요란한구호,기념일노래등을영혼없이부르고외치면서부지불식중에그것에내포된은밀한함의에젖어들곤했다.이러한무감각한의례는학교를졸업한뒤에도끝나지않고군대는물론회사등사회에진출해서도계속이어진다.이과정을거치며개인은점차비판적인사유없이온갖‘가르침의말씀’을받아들일만큼수동적인인간으로변한다.
전작《나는지방대시간강사다》,《대리사회》등으로출판계의주목을받았던김민섭작가는와이즈베리신작《훈의시대》에서이러한‘가르침의말씀’에조요경(照妖鏡,《서유기》에서요괴가아무리변신을해도본모습이드러나게하는거울)을들이댔다.작가에게‘가르침의말씀’은우리에게너무나익숙해서아무도신경을쓰지않지만어두운곳에숨어개인이주체로서는것을방해하는‘괴물’이다.이괴물은“개인을시대에영속시키는동시에끊임없이지워왔으며특히사유의범위를그함의의테두리에가두고나아가지못하게한다는점에서문제적”이다.작가는이괴물을‘규정된언어’라고정의하면서‘훈訓’이라는이름을붙였다.

‘훈’이라는말은우리가흔히받아들이듯이‘가르침’의의미다.가정(가훈),학교(교훈),군대(훈련),회사(사훈),국가(훈령)에이르기까지,주로누군가를가르치거나,아니면위계적으로강요하는‘계몽의언어’인동시에‘자기계발의언어’로우리사회구석구석에존재한다.저자의말에따르면,‘훈’은한개인이가정,학교,회사등생애주기에서반드시거쳐야할모든공간의언어로전달된다.따라서훈이란시대가개인에게품은‘욕망’이다.일상공간에서지속적으로강요되는훈에서누구도자유로울수없으며,한개인의몸을만드는데직간접적인영향을받는다.이렇게본다면훈은결국한인간의격格을결정하는중요한사회적기제라고할수있다.


뒤틀린훈,기괴한훈,법보다가까운훈

저자는사회적기제로서‘훈’이작동하는형태를개인의성장과정에따라크게세가지로나눈다.첫째는학교의훈,둘째는회사의훈,셋째는개인의훈이다.

학교의훈은교훈이나훈화,훈시,급훈,교가등의형태로존재한다.2018년기준으로우리나라남녀고등학교에서높은빈도로권장된훈은,여고에서는‘순결’,‘정숙’,‘예절’,‘배려’,‘사랑’,‘겸손’등이고,남고는‘단결’,‘용기’,‘개척’,‘책임’,‘명예’,‘열정’등이다.여고의교훈이정적이고과거지향적이라면,남고의것은역동적이고미래지향적이다.이처럼근대인을대량생산해왔던학교라는울타리안에서모든남자와여자는훈을통해저마다의역할과기대치를암묵적으로부여받아왔다.그러나‘참된일꾼,착한딸,어진어머니’라는교훈을바꾸려다가‘전통’을지켜야한다는일부동문의거센반대로실패한원주여고의사례에서보듯이개인이자신을둘러싼언어를전복하는일은쉽지않다.저자는이대목에서자신이없다고고백하면서도,교훈을바꾸려했던재학생과졸업생들이언젠가사회에진출해자신을둘러싼언어를변화시킬수있는주체로서살아가기를기대한다.

우리가회사에서마주하는훈은기괴하다.“남들보다두배더열심히일하고”,“남들보다두배더빨리출근한다”는식의지킬수없는공허한외침이며,제대로기억하는사람도별로없다.기억한다고해도그저경영진이바뀔때마다취향이나경영방침에따라바뀌는,TV속광고의이미지처럼존재할뿐이다.그럼에도회사의훈은때론‘헌법’적지위를얻기도한다.저자는회사의훈이“대한민국의헌법보다도가까운일상의헌법”이며,“개인에게국가보다큰권력을가진실체로존재하는공간에서법보다가까운법”이라고말한다.사훈은눈에보이는공간은물론소속임직원의머릿속그어디에도없지만,그어디에나존재한다.


학교나회사보다훈이더욱직접적이고적나라하게드러나는곳은평범한개인의의지가그대로반영된개인의일상공간이다.“당신이사는곳이당신이누구인지말해줍니다”라는아파트광고처럼,개인이바라보는시선의끝,일상화된공간에저마다의특별한훈을전시하고싶어한다.따라서개인의훈만큼욕망을착실하게드러내는것도없다.이욕망은거리에,하나의블록에,거주공간에,작은방에,책꽂이,SNS에서발견된다.


우리가무엇을할수있을까요

사실훈은개인의훈말고는구체적으로기억하는경우가드물다.출신학교의교훈이나사훈을제대로기억하는사람은찾기어렵다.하지만훈은그저공허하고추상적인구호에그치거나아무도신경쓰지않는별것아닌존재가아니라그시대를관통하며구성원을규정하고통제한다.‘순결’,‘정숙’,‘착한딸’,‘학도’,‘건아’,‘건설’,‘우리는남들보다두배더열심히일한다.’식의언어들이학교에,회사에,개인의일상공간에아직도익숙한방식으로아로새겨져있다.우리는훈을잘의식하지못하지만,훈은우리를잘알고있다.이런훈을전복시키지못한다면우리를규정하는언어에노골적으로잠재해있는욕망에잡아먹히고‘대리인간’에서벗어나주체의삶을살아가는새로운시대를맞을수없다.

그렇다면우리는무엇을할수있을까?‘액체처럼우리를감싸고있는훈’을어떻게걷어내고뒤집을수있을까?교훈을바꾸려다가실패한학교사례에서보듯이,전통이라는탈을쓰고여전히우리를옥죄는훈의감옥에서탈출하기란정말버거운일이아닐까?

“이것들을이제폐기하고스스로의훈을만들필요가있다.새로운시대의논리가다시우리를잠식하기이전에주변의훈을바꿔나가는작업을해야만한다.”

작가는야만적이고낡은훈을폐기하고새로운훈을만드는것에희망을걸고있다.그희망은막연한기대나선언에서끝나지않고실제로시도를한다.작가는SNS에서화제가된‘김민섭찾기프로젝트’를통해얻은경험을담아조심스럽게자신의훈을제시한다.

“당신이잘되면좋겠습니다.”

이훈은아무에게도강요하지않고,아무에게도상처주지않으며,아무에게도무겁지않다.낮고따스하고부드러운음성의이훈은우리사회에서계속대학원생,시간강사,대리기사같은철저하게을로살아온작가가우리시대에내놓은작은‘제안’이며,이책을쓰게된동기이기도하다.

작가는‘훈의시대’를살아가는우리에게마지막으로이렇게당부한다.
“끊임없이의심하고불편해하고물음표를가져야한다.(...)큰용기를내거나무언가를포기해야한다는부담감없이‘한번바꿔볼까?’하는말한마디로변화를추동해낼수있다.(...)이것은대학생도,회사원도,한집안의부모들도모두할수있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