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교체기 대명 해로사행로의 노선과 지명 재구 및 인문지리학적 고찰 1: 산동 등주부 (양장본 Hardcover)

명청교체기 대명 해로사행로의 노선과 지명 재구 및 인문지리학적 고찰 1: 산동 등주부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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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명청교체기 대명 해로사행로의 노선과 지명 재구 및 인문지리학적 고찰』 제1권은 조선 해로사항의 인문지리학적 연구 시리즈 도서로서 명청교체기 대명 해로사행로의 노선과 지명 재구 및 인문지리학적 고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왕가

중국옌타이대학(烟台大學)에서한국어학과를졸업하고한국공주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중국웨이팡(?)대학한국어학과전임강사로재직하고있다.주요논저로《한중근대소설비교연구》(한국문화사2016),〈????境的事〉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緖論
1.1明末對明海路使行의歷史背景
1.2明末對明海路使行의槪況
1.3明末對明海路使行의詳細內容
〈表-1〉明末對明海路使行使行團目錄
1.4明末對明海路使行關聯文獻
〈表-2〉明末對明海路使行關聯文獻目錄
1.5硏究對象文獻
〈表-3〉明末對明海路使行中登州使行關聯文獻目錄
1.6硏究의內容과方法
〈表-4〉明末對明海路使行登州府經由地名總覽表

2.黃城島에서廟島까지
2.1黃城島(皇城島)
2.1.1黑水海(千里海)
2.1.2黃城島(皇城島)
2.1.3黃城島海潮寺
2.2?(舵磯島/舵?島)
2.3珍珠門(眞珠門)
2.4.廟島(沙門島)
2.4.1廟島
2.4.2天妃娘娘廟(天妃廟/神女廟)
2.4.3登州山

3.登州府,登州水城,登州城
3.1登州府
3.2登州水城(登州外城/水城)
3.2.1登州水城
3.2.2蓬萊閣
3.3登州城(登州?城/東牟城)
3.3.1登州城
3.3.2軍門衙門/兵巡道衙門/兵備道衙門/海防道衙門/知府衙門/監軍道衙門
3.3.3演武場(?場/訓煉院)
3.3.4開元寺
3.3.5普靜寺(普淨寺)/關北村
3.3.6萬壽宮
3.3.7(登州府)文廟

4.登州城부터黃縣東界까지
4.1杏花村
4.2‘疊石浦’?門
4.3“蓬縣仙觀”/“蓬瀛?區”?門
4.4山店

5.黃縣동쪽경계에서黃縣城까지
5.1“萊山聳翠”?門/“萊嶽具瞻”
5.2“淳于故里”(淳于??故里/淳于古里/淳于村)
5.3?水,太史遺風
5.4黃縣城(黃縣/縣北館/黃縣東館馹)

6.?縣城부터?山館驛까지
6.1“古士?城”牌榜,古士?城,盧仙勝跡(盧仙勝述/盧仙古里/盧仙遺?/盧仙故里),稚乃河
6.2北馬鋪(北馬重鎭/北馬鎭/北馬鎭鋪/北馬店/白馬鋪)
6.3“麻姑仙里”坊表(麻姑故里/麻姑仙跡),廣河,徐?城
6.4?山驛(?山馹/?山館)

7.黃縣黃山館驛에서萊州府掖縣동쪽경계까지
7.1溪河/“東牟首邑”坊表
7.2新城(新店/新城千?所/新城堡/新城鋪/新城店)

8.結論
〈表-5〉明末對明海路使行登州府經由地名變化表

參考文獻

출판사 서평

[머리말]
명청교체기해상사행로를통해명을오갔던조선사신의중국사행기록인해로조천록(연행록)에는명청교체기조선과명,청사이에이루어졌던치열한외교활동의모습이고스란히담겨있을뿐만아니라조선문인들의명과청에대한인식,명과청및조선과일본사이의전쟁의양상,중국과한반도사이의무역과경제관계,문화와인적교류상황등다양한역사적사실이생생하게기록되어있다.조선시대중국사행은조선문인들에게나라밖을경험할수있는거의유일한통로였으며,사행활동은중국의문화를직접체험하고받아들일수있는소통의공간을제공했다.그런점에서사행활동이이루어진사행로와사행경유지는단순히지도상에점과선으로표시된물리적교통로나감정없는장소가아니라우리선조들이역사의현장에서국가의안위를위해몸으로부딪히고발로뛰었던발자취곧그시대사적고뇌가고스란히묻어있는문화적유산으로서재인식되고재이해될필요가있다.
조선사신들이명나라로사행을가면서주로이용한노선은요동지역을거치는육로노선이었다.요동지역을거치지않고해로노선을이용한사행은明初(洪武,建文연간1369-?,崇禎연간1621-차례비교적짧은기간에만이루어졌다.明初사행의목적지는남경이었고,明末사행의목적지는북경이었다.해로사행로는원래부터한반도의삼국시대부터중국의여러왕조와교류했던중요한사행길이었다.산동등주(登州)에는대대로한반도의사신을접대하기위한신라관,발해관,고려관이운영되었다.조선의경우1621년3월에후금이심양과요양을탈취하고요동반도전역을지배하게되자사신들이육로로는안전하게왕래할수없게되었기에선박을이용해바닷길로산동등주로가게되었다.그후1637년1월후금(청)과정축맹약(丁丑盟約)을맺은조선은명나라와국교를단절하고후금(청)의수도인심양에만사신을보내게되었고,1644년3월에명나라가망하고청나라가북경을점령한후에는조선전기와같은육로사행이재개되었다.
본서에서는명말해로사행문헌을대상으로연구를진행했는데,그이유는다음과같다.첫째,明末해상사행관련문헌들은,명초의해상사행기록이대부분조천시형식이었던것과는달리,사행중겪은구체적인사건과견문을여정에따라기행문형식으로기록하거나사행관련공문서와편지등을함께수록하고또한지리지형식으로기록한것까지있어서공식적인사행활동이이루어진역사현장,현지문인들혹은현지인들과교류양상,당시중국현지의상황,민간풍속,자연환경등을생생하게전하고있는문헌들이많기때문이다.둘째,기존의조천록(연행록)연구가주로요동지역을사행로로하는《열하일기(熱河日記)》,《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담헌연기(湛軒燕記)》등의문헌에대한연구에치중된반면,해상사행의실체를체계적으로밝히는연구는미흡했기때문이다.셋째,조선이전신라,발해,고려등왕조들도해상사행을공식적인경로로활용했었으므로,조선시기해상사행로에대한연구는차후신라,발해,고려시기해상사행의역사적실체를밝히는간접자료로활용될수도있기때문이다.
이처럼본서는명말조선사신의해로사행관련문헌을주요연구대상으로하여인문지리,문학지리의시각에서사행경유지현지조사,현지연구자및주민인터뷰,문헌고증등의방법을통하여,조선사신의사행노선을재구하고지명의역사적변천을살피며사행록에나타난시와문장을분석하고조선사신의외교활동,중국문인및현지주민들과의문화적인적교류활동의실체를파악하여조선사신의중국문화공간을총체적으로그려보았다.
명말평안도앞바다에서출항한조선사신들은조선과요동의연안도서를따라항해하다가여순구(旅順口)부근해역에서(지금의요녕성遼寧省대련시大連市노철산老鐵山해역부근)에서남하하여발해를건너산동등주(지금의산동성연태시봉래)에상륙하였다.이후의육로경유지는鄭斗源의《朝天記地圖》에따르면등주부(登州府),황현(黃縣),황산역(黃山驛),주교역(朱橋驛),래주부(萊州府),회부역(灰埠驛),창읍현(昌邑縣),유현(?금령역(金?,제남부(濟南府),제하현(濟河縣),우성현(禹城縣),평원현(平原縣),덕주(德州)(이상산동성경내),경주(景州),부성현(阜城縣),부장역(富莊驛),헌현(?莫州),웅현(雄縣),신성현(新城縣),탁주(?州),량향현(良鄕縣),제경(帝京)(이상하북성및북경경내)등인데,본서는앞으로계속출판될시리즈물의제1권으로산동등주앞바다제도(諸島)와등주,황현,황산역까지의등주부노선에대한연구성과물이며,이후래주부,청주부,제남부등사행의노선을따라순차적으로연구성과를출간할예정이다.
이책에담긴연구는우연한계기로시작되었다.5년전학교에서대학교수들의자체연구역량강화의일환으로중국내영향력있는학자들을초빙하여정기적인학술대회를개최하고유방학원학보(?坊學院學報)를발간하게되었는데,당시우리대학중문과조홍위교수가조선사신이쓴웨이팡(명대당시유현?한국어문학과소속이던필자일동은명대조선사신들이웨이팡지역을경유하면서이지역과관련된적지않은기록을남겼다는사실을그때처음알게되었다.필자일동의조사에따르면,한국에서의조천록(연행록)연구는당시까지발표된논문만500편에이를정도로이미방대하고깊이있는연구가진행되고있었다.그러나대부분의연구가요동지역을거쳐서갔던청대육로사행관련연행록연구에집중되어있었고명말이루어졌던해상사행에대한연구는상대적으로적었으며,특히중국현지답사와명대문헌에대한고증을바탕으로한문학지리적,인문지리적연구는초보단계에있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이에건국대중문과의당윤희교수,웨이팡대학중문과의조홍위,진금방교수,한국어문학과의왕가,한종진교수,난창공대영상매체학과김보경교수가의기투합하여본연구에대한계획을수립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의해외연구지원사업인씨앗형사업에지원하게되었다.
많이부족한연구계획서였지만웨이팡대가위치한지역이바로명말조선사신들이반드시거쳐야했던경유지인“유현(?縣)”이었던만큼현지답사와중국현지문헌조사에있어서는다른어떤연구팀보다장점을가지고있었다.“지역특화형한국학연구”라는연구팀의주장이설득력이있었던것인지결국좋은심사평가를받아2017년도씨앗형사업에선정되는기쁨을누렸다.우선연구팀은명말평안도해안을출발하여한국의서해와중국의발해를거쳐산동등주에상륙한조선사신들을모두조사하고현재까지남아있는,그들이남긴자료를모두확보하여이를일목요연하게정리하는한편,사신들이거쳐간경유지에따라모든문헌을꼼꼼하게강독해나갔다.이과정에서사신들이동일한경유지를다양한지명으로기록하고있으며,어떤구간에서는경유경로가많게는서너갈래로갈라지고있음도확인하게되었다.그래서경유지의노선과경유지의지명을사신이남긴기록과더불어당시중국내통용되던지방지및관련역사서를참고로꼼꼼히고증하였고,이고증의결과를현지답사와현지인탐방을통해확인하고수정하였다.이과정에서현지인,현지학예연구사나현지역사연구자의호의적인도움을많이받았다.사신들이이용한경로는대부분명과청대관방에서관리하는공식적인관도(官道)였는데,근대이후이관도가대부분국도로재건되거나오랜기간방치되어그흔적조차찾을수없는경우가많았다.그래서오랜기간현지에서근무하면서지방사지(地方史志)를발간해온현지학예연구사를방문하여그들의도움을받는것은필수적인연구과정이었고,어떤때는학예연구사들조차구체적인위치와지명의변천을잘알지못하는경우가있었는데,이런경우라도다행히현지에서대대로살아온촌로들을만나그들의증언을통해조선사신들이거쳐간구체적인경로를확인하고그길을직접눈으로확인할수있었다.현지답사과정을통해조선사신들이직접걸었던들판,직접보았던산천,직접건넜던강과다리,직접겪었을당시의풍속,직접맛보았을현지음식등을직접체험하게되었을때,그들이남긴시문한구절한구절이생생하게살아나연구자들의가슴에와닿는묘한경험을하였으며,현지촌로들의사투리를통해당시동일한경유지를거쳐간여러조선사신들이현지지명을다양한이체자(異體字)로표기한이유가현지사투리의영향때문임을확인했을때는,연구자들스스로가사투리로들은지명을어떤한자로기록해야좋을지고민했었을조선사신이된듯한착각에빠지기도하였다.
일반적으로인문학은공동연구가어렵다고들말하는데,이번연구는한중연구자간의긴밀한협력속에서공동연구의장점을십분발휘한결과여서더욱그의미가깊다.특히,한국과중국의연구자들이각자의관점을한걸음양보하면서서로의입장과해석을균형있게조율하여공동의연구성과물을도출하였기에,이책은21세기에다시쓰여진연행록이라부를만하다.
이번연구는많은이들의도움덕분에완성될수있었기에이자리를빌어감사의말씀을남기고싶다.매년10여차례에가까운현장답사를다녀야했고,국내외관련연구자를초빙하여연구성과를공유하고토론하는국제학술회의를정기적으로개최하며,중국과한국에서논문을발표하고학술서적을출간하는데에적지않은비용이소요되었는데,한국정부(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진흥사업단)의3년간의연구비지원이없었다면본연구는실현되지못했을것이다.특히,연구1년차에연구방향과연구방법을정립해나가는과정에서약간의혼란과실무적어려움을겪고있을때,카자흐스탄에서열린한국학국제세미나에서한국학중앙연구원안병욱원장님과한국학진흥사업단구난희단장님께서보여주신관심과격려는연구팀에게큰힘이되었다.또한한국학진흥사업단의실무책임자이신김예원님도연구팀의사업계획변경등번거로운업무협조요청을친절하고신속하게처리해주어연구팀의원활한연구진행을도왔다.웨이팡대측에서도연구의중요성을인정하여연구팀이모여연구하고연구자료를체계적으로수집보관할수있는공간과기자재를마련해주었으며,이과정에서외국어대학한택정학장님의도움이컸다.건국대역사학과한승현교수님은연구팀이개최한국제세미나에참가하여조선으로귀화한산동왕씨의족보와연원을탐구하는논문을발표하여연구팀에게문헌고증과현장답사방법의모범적인예를보여주었으며,조선사신의사행화를오랜기간연구해오신한국학중앙연구원의정은주선생님은연구팀에귀중한자료와조언을제공해주셨으며,단국대동양학연구소의장유승선생님은웨이팡시한정구문화관리소에소장된문헌이조선국왕의표문이었음을고증해주었다.중국측연구자로는산동성봉래시청지방사지연구실(山東省蓬?(高波)과장,산동성봉래시봉래각관리처문물과(山東省蓬???,산동성용구시청지방사지연구실(山東省龍口市政府地方史志辦公室)학예연구사인손건의(孫建義)주임등이조선사신의경유지고증에도움을주었으며,또한산동성용구시황산관진(山東省龍口市?山館鎭)에서지방역사를연구하는민간사학자맹건(孟健)씨등은자신이소장한귀중한문헌을무상으로연구팀에제공했을뿐만아니라귀한시간을할애하여자신이일찍이고증한적이있는조선사신경유지유적으로연구팀을직접인솔하여현지답사에큰도움을주었다.그리고현장답사과정에서한국에서온연구팀을기쁘게환영해주시고자신의일처럼짧지않은시간을내어사행현장을안내해주고인터뷰에응해주신수많은현지주민들께도머리숙여깊은감사의인사를올린다.
이책은앞으로계속진행될,조선해상사행록에대한문학지리,인문지리적연구의첫성과물로서그의미가자못깊지만,동시에처음시도된연구로서착오와오류또한적지않을것이다.이자리를빌어관련연구자분들의양해를구하면서많은조언과지도를부탁드린다.또한앞으로이연구가계속진행될수있도록관련기관과연구자들의지속적인지원과성원이이어지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