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마음의 순례 (양장본 Hardcover)

보이지 않는 마음의 순례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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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꽃을 볼 때가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꽃이 지닌 예쁜 모습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살아오는 동안 겪은 일들이 마치 개울물이 흘러가며 돌이나 나뭇가지에 부딪히면서 생겨난 물방울처럼 금새 생겨났다 사라져버리곤 한다. 나는 그런 기억들을 적어보고자 했다. 왜 아무것도 아닌 자질구레한 일에 매달려 사연을 찾아보려 하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그러나 사는 것은 일들과의 교접을 통해서 얻는 체험의 기억에서 그 의미를 건져내는 것이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길에서 만난 친구의 말 한마디로 용기를 얻고, 처음 본 여인의 눈빛 하나에 밤잠을 설치는 그런 것들이 나를 만들어온 과정이 되고 있다. 그 체험의 기억은, 무어라고 꼭 제목을 붙이진 못해도 나에게는 소중하고 진실한 삶의 이야기이자, 나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기도 하다.
원효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50년 넘게 살았다. 결혼해서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서도 원효로 집은 내 생명의 탯줄이었다. 초등학생 때 원효로행 버스를 타고 남영동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구부러진 길을 돌아가면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얼굴을 막아섰다. 대학교수가 되어서도 집으로 가는 길에 내 얼굴을 막던 플라타너스 잎들은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대학교에 붙여놓은 합격자 명단을 보고 가던 길에는 잎들은 손을 들어 축하해 주었고, 하루 힘든 일을 끝내고 힘없이 창밖을 볼 때면 마치 그들도 시달려 겨우 매달려 있는 듯이 흐늘거렸다. 어려운 시련을 안고 집으로 갈 때는 잎들은 나에게 무서움을 주었다. 남영동 굽이길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는 나와 함께 살면서 서로 묵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실린 글들에서는 내 의식의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분별되지 않는 기억들 중에서 밤하늘에 떠다니는 반딧불이를 닮은 사연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비록 조금은 지나간 세월의 먼지에 덮여 낡은 문화의 흔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 따라 변해버린 삶의 행태가 아름다운 생명의 본질을 털어낼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고 있는 손녀가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손녀가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대학에 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최고의 대학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녀는 ‘할아버지 고마워요. 그런데 할아버지, 훌륭한 대학 말고요, 좋은 길로 가는 대학에 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하고 대답을 했다. 이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나는 최고의 대학을 원했지, 좋은 길로 가기 위한 대학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녀의 말에서 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이 하나의 생명 안에 존재해 있는 반짝거리는 잔잔한 조약돌이 되기를 바란다. 깨끗한 물에 깎여 동그랗게 다듬어져 물속에서 빛나는, 그런 ‘좋은’ 돌이 되기를 바란다.
- 서문 ‘잔잔한 개울물에 떠오른 물방울처럼’
저자

박동규

1939년경상북도경주에서박목월시인의장남으로출생.
서울대문리대국문과및동대학원석사·박사졸업.
1962년『현대문학』에평론으로등단.
서울대학교국문과교수.현재서울대학교명예교수.
월간시전문지《심상》의편집고문.
저서로『현대한국소설의성격연구』,『한국현대소설의비평적분석』,『현대한국문제작품분석』,『전후한국소설의연구』등의논문집과,문장론집『글쓰기를두려워말라』,수필집으로『별을밟고오는영혼』,『당신이고독할때』,『인간은혼자서살수없다』,『오늘,당신이라부를수있는행복』,『사랑하는나의가족에게』,『삶의길을묻는당신에게』,『아버지는변하지않는다』,『내생애가장따뜻한날들』등이있다.

목차

서문_잔잔한개울물에떠오른물방울처럼

1부
닮아가는가족의마음

아버지의각목침대
흰머리카락
한가족으로산다는것
늦가을의허망한마음
사과가익어갈무렵
산사과와염소
아버지와수류탄사건
김치국밥과미역장
하늘이야기
처량했던유월의바람
쳇바퀴처럼오는가을에
노란참외와배꼽이튀어나온개구리참외
어머니의방
겨울의한복판에서
아버지의도시락
꽃과의인연

2부
따뜻한말한마디
봄바람이분다
머리모양하나만바꿔보아도
낑깡의하루
겨울,기다림의계절
머리카락한올,이야기한가닥
권투시합과소고기
2018년,무술년개의해
도랑
뻐꾸기가운다
뉴스와진실
어떤사람
소양과인격
구절초가만발한정읍어느천변을보면서
겨울의끝자락에서
골프와쥐구멍
부러운시절
먼타향에서
배꽃가지반쯤가리고달이가네

3부
아름다운향기를내는인연

습관의힘
그렇고그런날들
꼬부라진마음과펼쳐진마음
부러움,아름다운성장
외로움
선의의경쟁
동료애
통큰사람
손이주는정감
사치에서얻는화사함
고맙다는한마디말
지갑을꺼낼때마다
어디든꼭필요한사람
푸르른여름에서나뭇잎이물드는가을로
광화문길바닥에서자두를팔던
비애의여름

4부
지워지지않는마음의자국
풋내기
기타를둘러메고
비오는날
허당(虛堂)과오월
수줍게핀꽃에도향기가그윽하니
고마운사람들
하모니카
치약
고추장과껌한통
해변시인학교낙수(落穗)
천둥번개가치던날밤
수영과빨가벗기
울퉁불퉁한길로
여름꽃칸나
꽃다발을받아보셨나요
석류와왕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