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성찰과 전망 (인문학, 현재의 위기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묻다)

인문학의 성찰과 전망 (인문학, 현재의 위기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묻다)

$20.00
Description
"근자에 우리는 인문학과 관련해서 기이할 정도로 모순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한편으로 학생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인문학 과목을 멀리하고, 대학원 진학자 또한 대폭 줄어 이대로 가면 조만간 학문후속세대가 단절될지 모른다는 ‘위기’를 느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문학이 마치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심원한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부각되기도 하고, 때로 삶에 지친 피곤한 영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리라는 기대감을 받기도 하여 각종 인문학 강좌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열풍’도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인문학이 미래 세계에 어떤 임무를 맡아야 하는지 인문학자들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에 대한 논의
인문학의 비상상황이 만성화된 2018년 서울대 인문학 교수들이 ‘아름답고 무용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모였다.
이 책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현실을 맞이하여 인문학의 기원과 과거를 ‘성찰’하고, 한국의 인문학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모인 서울대학교 인문학미래포럼의 논의의 결과물이다. 유용하고 당장 취업에 도움 되는 직업교육이 강조하는 방향으로 최첨단을 달리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도태되고 멸시받고 있는 아름답고 무용한 ‘인문학’에 대해 당사자인 저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지금까지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그 모든 논의가 무색하게 위기상황은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다. 모두들 인문학의 위기임을 큰소리로 외쳤을 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탓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지금까지 인문학에 대한 논의와 다른 방식을 취한다. 인문학이라는 흐릿하고 거대한 형상에 대해 얘기하는 대신 자신이 평생 종사한 전공 학문과 자신의 연구경험을 통해 인문학이라는 더 큰 대상을 규명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즉, 사학과, 국문학, 영문학, 불문학, 스페인어학, 미학 등 인문학을 구성하는 실체인 개별 학문의 경험을 통해 아래에서부터 위로, 인문학의 위기를 성찰하고 전망하고자 한다. 그 결과, 인문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결이 느껴진다.
특이한 점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급박한 현실과 달리 저자들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하다는 것이다. 내용 역시 인문학의 위기와 해법에 관한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 자신의 학문과 연구에 대한 전문적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요란한 호들갑 대신 절제된 논의와 그 밑바탕에 깔린 인문학자로서의 자부심과 믿음이 인상적이다.

쓸모없는 대상의 의미: ‘순전히 유용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유용하다’
주경철 교수는 서양에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인문학이 기본적으로 엘리트교육의 전통에 있음을 밝힌다. 생계에 걱정이 없기에 당장 유용하지 않은 학문을 가르칠 수 있었고, 이 전통이 한국에서는 동양의 전통과 결합하여 한국만의 인문학 개념과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인문학을 괴롭히는 ‘유용성’의 문제는 그 태생에서부터 배태되어 있던 것이다.
임호준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정량평가와 행정중심에 매몰된 한국 대학의 구조와 체제에 대해 비판한다. 인문학을 가르치고 후속세대를 양성해야 할 대학 스스로 인문학을 유용성과 편의적 발상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비단 대학 현장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공으로서 인문학이 위축되는 것과 달리 교양으로서 인문학은 사회에서 효용을 인정받고 심지어 열풍이라고 할 만큼 각광받고 있다.
이런 긍정적이고 자기방어적인 수사학의 극단에 CEO 인문학이 있는데, ‘인문학은 상상력과 창조성을 키우는 것이며, 이는 결국 기업의 창조경제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한 CEO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의미는 휘발되고 또 하나의 효용적인 수단으로만 열화되어 지금도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그 결과 대중들의 열광을 받는 외적인 상황과 달리 인재 수급과 지원 등 학문적 기반이 점점 더 악화일로를 걸으며 안으로 점점 곪아가고 있다.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인문학이 어떤 유용성이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인문학의 쓸모없음이다. 이석재 교수는 철학의 쓸모없음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발견케 하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정병설 교수는 이 논의를 이어받아 인문학이 나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를 어떻게 반추하는지 알려준다.
급박해야 할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글에서 중세 문학 속 ‘로그르 왕국의 관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급한 한국 인문학의 현실을 논해야 할 시점에서 로맨스 문법을 논하는 김현진 교수의 글은 일견 무용한 인문학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용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어 보이는 중세 문학 연구가 탄탄한 논의를 거쳐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고 그 안에 숨은 ‘현재성’이 발견된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는 것처럼 무용해보이는 텍스트를 통해 현재의 의미를 되묻고, 다시 현재를 모아 미래의 전망을 내놓은 이 과정이야말로 세상과 떨어져서 세상을 성찰하는 ‘무용한’ 인문학의 힘인 것이다.
저자

서울대학교인문학미래포럼

김현진
서울대학교영어영문학과교수.
「참수의윤리:공포,여성,중세로맨스」,「가웨인경의‘인식불가능’한딜레마:로맨스,남성성,그리고이성애의위안」등을발표했다.

박훈
서울대학교동양사학과교수.
지은책으로『메이지유신은어떻게가능했는가』,『근대화와동서양』등이있다.

신혜경
서울대학교미학과교수.
「뮤직비디오연구의새로운시각」,「이탈리아미래주의의요리혁신과새로운감성」등을발표했다.

이석재
서울대학교인문대철학과교수.
"BerkeleyontheActivityofSpirits","LeibnizonDivineConcurrence"등을발표했다.

이영목
서울대학교불어불문학과교수.
「디드로와이중적글쓰기:"백과전서"를중심으로」,「검은,그러나어둡지않은아프리카:프랑스어권흑아프리카이해」등을발표했다.

임호준
서울대학교서어서문학과교수.
지은책으로『즐거운식인:서구의야만신화에대한라틴아메리카의유쾌한응수』,『스페인영화:작가주의전통과국가정체성의재현』등이있다.

정병설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
지은책으로『조선시대소설의생산과유통』,『권력과인간:사도세자의죽음과조선왕실』등이있다.

주경철
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교수.
지은책으로『주경철의유럽인이야기』,『마녀』등이있다.

목차

서문
세상의변화속에서고독할자유를찾다

대학현장에서느끼는한국인문학의위기와기회-임호준

우리인문학의무기력증을넘어-주경철

철학은왜하는가?-이석재

서울대학교의‘제2외국어’교육에관한소고-이영목

역사서술과역사인식-박훈

로그르왕국의관습과로맨스문법:서양중세문학의현재,그리고미래-김현진

탈민족주의시대한국학의방향과과제:한국문학연구를중심으로-정병설

인문학의오늘과미학의내일-신혜경

출판사 서평

불변의인문학은없다
저자들은이처럼공통적으로인문학이유용성에대한집착에서벗어나오랜세월인문학을통해서발견할수있는수단이아닌목적으로서의가치를찾아야한다고이야기한다.하지만그와함께인문학을강조하다가자칫빠질수있는함정을경계하는것도잊지않는다.인문학은다른실용적학문이나과학학문과격을달리하는별개의존재가아니다.인문학은불변하는진리의보고도아니며,다른학문과마찬가지로사회적변화를충실히담아온그릇이자그변화에따라본질자체도계속바뀌어왔다는것이다."세상이변하니그세상에대해성찰하는인문학도변하지않을수없다"는서문의선언처럼말이다.
여기서한발더나아가,신혜경교수는과연‘인문학’이변화하지않는본질을지닐수있는가에대해질문한다.‘인간’에대한학문인인문학의기존정의가미래에도성립가능한가에대한의문이자,애초에인문학은고정된대상이아니라는문제제기이다.인문학의역사를보면오늘날형성된이미지와달리항상시대와불화한것이아니었다.인문학은시대에따라때론엘리트교육의일환으로,때론국가발전체제의핵심인력을키우는장치로,때론통제가능한‘건전한시민’을양성하는일환으로체제유지의하나로기능하기도했다.
이는미래의인문학도마찬가지이다.이세돌과알파고의대국을통해AI의존재는더이상SF속상상의존재가아니다.마음을가진기계는곧다가올현실이되고있다.미래에는AI와사이보그등기존의‘인간’에대한정의로는규정할수없는다양한존재가등장할것이고,그렇다면미래에는‘인간’이라는본질조차그대로머물지않고더확장하게될지도모른다.하지만저자들은인문학의정의가흔들리는시대에도이를전망하고논의하는것조차새로운인문학의과제임을분명히한다.

인문학은탄생부터위기였다:‘플레이아드’의선언과한국인문학
저자들이마지막으로이야기하는대상은다름아닌인문학자스스로에대한반성과역할이다.

"인문학이부딪히는위기의일부는인문학자스스로가인문학의가치와정당성에대해자신감을잃고의심하게되었다는사실에서기인하기도한다.인문학의현실에대한그들의지나치게냉정하고야박한진단과자조적인평가는실상내밀한곳에똬리를틀고있는자만심의또다른표현이긴하지만,그들의상처받은자존심은더욱강한비관과암울의수사학을확대재생산한다.마음깊숙한곳에서는‘그래도상관없어’를외치면서말이다."

신혜경교수는인문학자체가과학적실증주의에대한반작용으로,과학에해당하지않는방어적이고보수수의적성격을띄어왔다고설명한다.그렇기때문에과학의시대에‘인문학은언제나위기에처해있었다’는것이다.다시말해,‘인문학의위기’라는담론이상아탑에갇힌학자들의자기방어와삐뚤어진자만심의발로로소모되지않기위해서는철저한자성과함께기본으로돌아갈것을주문한다.

"인문학담당자들인우리자신이자신감을많이잃은상태고,우리사회역시인문학을진화에뒤쳐진낡은학문으로매도하는건아닐까?그렇지않다고자신있게말할수있을까?우리의인문학계에서우리사회전체가심사숙고하며주목하는중요한의제를내놓고있는가?지성인이고자하면반드시읽고자기의견을정리해볼필요가있는그런종류의인문학저술이많이나왔던가?"

이영목교수는‘플레이아드’라는예시를통해한국인문학에새로운숙제와도전을제시한다."번역은반역"이라는말로유명한뒤벨레는그때까지야만적이고저속한것으로치부되던프랑스어가고전어못지않은가치를지녔다고선언했다.이것이단순한선언에그쳤다면이주장은아무도기억하지못했을것이다.중요한것은뒤벨레와롱사르를위시한‘플레이아드’시인들이자신들의창작으로선언을증명해냈다는데있다.‘인문학’이라는공허한대상을부여잡고있기보다자신의학문에서변화하는세상과그에맞춰끊임없이함께변화할인문학의주체가될때한국인문학은위기론에서벗어날수있다는것이다.그리고박훈교수의말처럼학문적성과를시민사회와대중에게성공적으로번역해서전달할임무까지가인문학자들에게남겨진숙제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