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15.00
저자

김영민

세상의모든것을연구나사유의대상으로삼아오며세상에대한관점을촌철살인의필력으로풀어내온서울대정치외교학부교수.산문과연구서를통해인생과세상을관조하고사유하는글을써오며탄탄한독자층을확보하고있다.2018년한국인의명절을고찰하며쓴칼럼‘추석이란무엇인가’는소셜미디어를통해급속도로퍼지며‘김영민’이라는이름을대중에게각인시켰고다양한질문을통해본질에닿으려는시도를...

목차

*매니페스토:생각의시체를묻으러왔다

1.침묵의함성을들어라
왜구태여침묵했는가
자유주의송편
모순과함께걸었다
떠나는이유에대해침묵해야할때가있다
“마르크스‘도’읽어야지”

2.실패를예감하며실패로전진하기
신의가호에회의를품게된시대─仁
미워하라,정확하게─正
삶이라는유일무이의이벤트─欲
해도안되는줄이미알았던사람─禮
우유부단함은중용이아니다─權
실연의기술─習
완성을향한열망─敬
알다,모르다,모른다는것을알다─知

3.회전하는세계의고요한중심점에서
자성,스스로에게부과하는고통─省
“빡센삶,각오는돼있어?”─孝
하지않는것이하는것이다─無爲
부러우면지는거,아니지배당하는거다─威
너의존재는거짓이아니다─事
지구의영정사진찍기─再現
돌직구와뒷담화의공동체─敎學

4.성급한혐오와애호를넘어
새술은헌부대에
계보란무엇인가
‘유교’란무엇인가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침묵의함성을들어라
:삶과세계를정밀하게독해하려면

공자는“나는말하지않고자한다”고말한바있다.김영민은『논어』텍스트전체가“발화한것,침묵한것,침묵하겠다고발화한것”세가지로분류될수있다고본다.침묵을매질로삼은메시지는그에걸맞게예민한감수성을가진독해자를요구한다.따라서이러한분류를염두에두고의도된침묵마저읽어낼자세로『논어』를탐사해나가자고제안한다.
공자는노나라사구(형벌이나도난등의사안을맡은벼슬)직책을맡고있다가느닷없이직장을관두고떠나버린일이있다.그는왜쓰고있던면류관도벗지않은채보란듯이예를어기며부랴부랴떠났고,왜구태여침묵했을까?

“공자가자신이떠나는진짜이유에대해침묵했으므로,사람들은이러쿵저러쿵떠들어댔다.잘모르는사람들은공자가고기때문에떠났다고생각했다.이를테면,공자가내심너무너무고기가먹고싶었는데자신에게고기를주지않자그만분노를참을수없었던탓이라고보는것이다.물론공자가고기에대해중독에가까운무조건적인애착을가지고있었다면그런추론도합리적이리라.그러나공자는고기에관하여매우까다로운사람이었다.”-55쪽

이어지는글에서저자는공자가고기라면무조건먹으려드는탐욕스러운사람이아니었음을옛문헌들을뒤져가며예의진지하게증명한다.(55~57쪽)그리고독자는그독특한유머와리듬에빠져하릴없이키득거리다가어느새다음문장에도달한다.

“만약공자가특정한도덕률에고집스럽게매달리는협애한도덕가였다면,그는그저특정도덕기준을들어자신의조국을가차없이매도하고말았을것이다.그런유체이탈화법을구사하기에는공자는노나라라는정치공동체에무관한인물이아니었다.만약공자가자신의출신지역이나집단에대해무비판적인충성을일삼는사람이었다면,무조건적으로조국의편을들어어떤흠이라도눈감아주었을는지모른다.그러니고기가이르지않은상황을계기로공자가떠나버린일은그가조국을사랑하되그조국을비판해야하는딜레마에마주하여그나름의해결책을자신의행동에담고자섬세하게선택한사려깊은행위였다.”-59쪽
-“떠나는이유에대해침묵해야할때가있다”중에서

불필요한과장(overstatement)을비판하고,침묵및삼가말하기(understatement)를옹호한공자를통해,단순한침묵이나생략으로보이는것들이갖는전복적인성격을간파하기.이렇듯김영민의논어에세이는위트와아이러니로직조한글쓰기로해당텍스트를넘어보다넓은콘텍스트의세계로우리를이끈다.‘어떤’텍스트를읽었느냐가아니라‘어떻게’읽었느냐가,당신이누구인지를알려준다.


#실패를예감하며실패로전진하기
:이토록고단한인간으로살아가기위하여

김영민은공자의제자들이나『논어』의편집자가유려한예식의집전자로서의공자만큼이나현실에서실패한선생의모습을사랑한데주목한다.인간은불완전한존재이다.허나결함이있더라도자신의결함을인지할수있을때는아직희망이있다.화해하기어려운모순적열망이공존한사람공자를통해어쩌면우리는이생에간신히희망할수있는것을읽어낼수있진않을까.그가자주이야기한가치들,그역사적맥락,그리고급변하는시대를메타시선으로통찰하여실마리를풀어내볼수있지않을까.

공자는결코폭력을배제하지않았다.인(仁)한사람은단순히평화를추구하는사람이아니다.필요이상의폭력은행사하지않지만,필요하다면전쟁마저수행할수있는사람이다.(…)지하철의쩍벌남에대해서공자라면어떻게했을까???논어??에서딱한번공자가직접물리적폭력을행사하는장면이나온다.원양이라는이가길가에무식하게틀어놓은유행가처럼다리를쩍벌리고앉아있자,공자는그에게“사람들에게해만끼치는놈이다”라고일갈하며,지팡이로그의정강이를후려쳤다.마치정확한미움을실험하는것처럼.-96쪽
-“미워하라,정확하게-正”중에서

공자가살던시대는만성적인전쟁의시대.전국시대에이르면진나라통일전까지적어도590회의전쟁이일어났다는데,공자가그때까지살았던들그추세를되돌릴수있었을까.(…)공자나그의제자들은무력에의존해천하통일을추구하기보다는,차라리지속적으로실패하기를선택한다.작가사뮈엘베케트가말했듯,그들은승리하기보다는다시더낫게실패하기를선택한다.새를맞히지못할지언정자는새를쏘지않는이의위엄,자청해서실패를선택하는이의위엄,기어이성취를포기하는데서오는위엄이그들에게는있다.-117쪽
-“해도안되는줄이미알았던사람-禮”중에서

중용은단순히산술적중간을의미하거나극단적행동을회피하는태도를말하는것은아니다.일견과한행동처럼보여도,상황에적절하기만하다면중용일수가있다.중용이란예상하기어려운역동적인상황속에서도적절성을찾아내는,그러기위해서기존규범이나예상으로부터적절히이탈할수있는차원을포함한다.(…)‘음식맛없게만들기’매뉴얼을따라한다고해서자동적으로‘높은수준의맛없음’을구현하기어렵듯이,예의매뉴얼을따라기계적으로행동한다고해서이상사회가자동으로구현되는것은아니다.변화하는세상속에서는변치않는규범에대한고집보다는임기응변이나융통성이필요할때가있다.-124쪽
-“우유부단함은중용이아니다-權”중에서

공자가극기복례라고했을때,거기에는극복대상이된3인칭의자아뿐아니라,대상화된자신을바라보는1인칭의자아가동시에있다.메타시선을장착한사람은대개함부로말할수없는영역에대해서는발언을삼가는사람,자신이알수없는큰영역이있음을인정하는사람이다.(…)공자의제자증자는죽음이다가오자제자들에게이렇게말했다.“지금부터나는(삶의고단한책임을)면하게됨을알겠도다.”“나는이제삶의책임과걱정을면한다”고기뻐날뛰는것이아니라“나는이제삶의책임과걱정을면함을‘안다’”고말한다.즉삶의긴장,구속,고단함을면한다는단순한선언이아니라,그사실자체를메타시선으로바라보아‘안다’는선언이다.-156쪽
-“알다,모르다,모른다는것을알다-知”중에서


#회전하는세계의고요한중심점에서
:서로다른인간끼리어울려살기위하여

정치학,철학,역사에대한관심으로정치사상사를공부한김영민은,인간은어떻게공동생활을하는것이옳은지질문을던지는게정치철학이고,과거의사람들이거기에대해어떤답을해왔는지를파악하는게정치사상사라고설명한바있다.『논어』가지금여기우리공동체에던지는질문들에대한저자의근심이이책에스며있는이유이다.

공자가관심을기울인것은집안에서자기부모를구체적으로어떻게잘섬길것인가혹은자기자식을구체적으로얼마나효성스러운사람으로키울것인가하는문제보다는,앞서말한삶의책임을누가어떻게나누어질것인가하는문제였다.(…)일상의삶을지탱하는데필요한위생,교육,복지,육아,노인돌봄등을어떻게해결할것인가.당사자,가족,사회,국가가운데누가어떻게무엇을얼마나나누어맡아야하는가.이는공자의시대혹은그이전부터인류가고민해온문제이며매시대조건은끊임없이바뀌기때문에,이문제는시대마다새로운답을요구한다.-182쪽
-“빡센삶,각오는돼있어?-孝”중에서

재현의관점에서진정으로뛰어난정치행위는,관련된민의를모사하는것보다는그열망을정책에얼마나입체적으로잘구현하느냐에따라결정된다.뛰어난대의정치인은민의를적극적으로해석하고,사람들이미처정의하지못하고구체화되지못한일까지탐구하고정책으로번역해낸다.(…)??논어??속공자는신의뜻을재현하는데골몰하던제사장들과거리를두기시작한당시사람들중하나였다.그들에게이제재현해야할대상은신이라기보다는그들이상상했던주나라건국시기의문명이었다.동시에공자는그고대문명을되살려공동체에구현할수있는정치적권력은자기에게결국주어지지않을것임을예감했던것같다.그럼에도그는포기하지않고전진한다.-223쪽
-“지구의영정사진찍기-再現”중에서


#성급한혐오와애호를넘어
:죽어야사는것들에대한시의적절한질문들

공자는“경천동지할혜안을가진고독한천재가아니라자신이마주한당대의문제와고투한지성인”이었고,“국가가설정한위계적인구획을넘어,친족네트워크를넘어,타인과비전을함께나눈공동체의카리스마넘치는스승”이었다고저자는말한다.무심한듯사려깊게,불확실성속에서도풍요로운만남을꿈꾸는선생김영민에게서도이러한모습이엿보인다면저자는손사래를칠까.
‘공자가죽어야나라가산다’고떠들썩하던시절이있었다.이책은말한다.“공자는족보같은걸만들어가며친족을대규모로관리하라고주장한적도없고,조상신덕보라고한적도없”으며,“자신의친아들보다는제자를더사랑했다”고.“유교”라는말이“현대한국사회에서벌어지고있는문제들을도맷값으로넘기는데”남용되는세태에대해“보다복합적이고역사적인접근이필요하다”고.저자가구상하는논어프로젝트를담담히기대해본다.

이책에실린글들이이와같은생각을온전히구현하고있는것은아니다.이논어에세이는내가구상하고있는논어프로젝트의일부에불과하다.논어프로젝트는총네가지저작으로이루어진다.1.『논어』의주제를소개하는‘논어에세이’,2.기존『논어』번역본들을비판적으로검토하는‘논어번역비평’,3.『논어』각구절의의미를자세히탐구하는‘논어해설’(총10권),4.‘논어번역비평’과‘논어해설’에기초하여대안적인논어번역을제시하는‘논어새번역’.따라서이논어에세이는논어이야기의전부가아니라그이야기로안내하는초대장이다.-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