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죽음을불러오는시의언어
베트남전쟁아카이브시집『살았으니,말해야해요』
베트남전쟁을증언하는아카이브시집『살았으니,말해야해요』가출간되었다.한베평화재단창립10주년을맞아기획된이책은60여년전베트남에서한국군이자행한민간인학살사건을기억하기위해피해자의유품과생존자의진술을비롯한역사적기록과1960년대부터현재까지베트남전쟁을다룬한국시들을한데모은다.
한국과베트남의인연은본래오래되고평화로웠다.조선과안남의사신들은15세기중반부터중국연경에서빈번히교류하며시를주고받는창화(唱和)의우애를다졌다.그러나근대에이르러두나라사이에는전쟁이라는비극이놓인다.한국은베트남전쟁에1965년부터1973년까지총32만명의병력을파병했고,이과정에서한국군은하미마을을비롯한베트남중부지역에서9천여명의민간인을학살했다.
『살았으니,말해야해요』는전쟁의참혹한기억과그속에뿌리내리는인간의양심을‘아카이브시’라는새로운문학형식으로조명한다.직접참전했던시인들의작품부터베트남전쟁의역사적기록을토대로한후대시인들의신작시,그리고시민들이함께완성한실험시로이어지는이책은“용서를빌고,원한을풀고,함께살아가는해원풀이와도같다”(황석영추천사).한국에서베트남으로,과거에서다시현재로이어지는시편들을통해베트남전쟁이누구의것인지,그어수선한역사를어떻게기억해야할지함께고민해보자.
총구앞청년에서학살뒤편의사람들까지
반세기에걸친전쟁의시편들
제1부「파도들이저멀리수평선을타고」는베트남전쟁에관해기존에발표된작품들로이루어져있다.신세훈,김명인,송기원,김태수등참전세대와비극을기억하고자베트남에찾아간김형수,이재무,나희덕등을포함한16명시인들의목소리가또렷이담겼다.비둘기부대소위로전장에투입된신세훈은차마인간에게총을겨누지못하고“더싸워야하는이유를규명하라”(「총구앞에조준된한마리의새여」)며울부짖는다.마찬가지로참전시인이었던송기원은“사상과인간과의함수관계는무엇”(「월남에의기억·1」)인지궁금해하며무기저편의아침해를그리워한다.베트남복판에서싸움의의미를묻는여러문인들의음성은한국군의만행을반성하는후대시인의기록으로이어진다.〈베트남을이해하려는젊은작가들의모임〉의일원인이승철은한국군에의해주민135명이학살된마을을찾아가추모위령비를어루만지며“저러이사랑스럽고아름답던그날의하미”(「하미에서」)를기억한다.시인이종형은전쟁으로두발목과가족을잃은팜티호아할머니의손을맞잡으며제주4·3사건당시“이미섬에서본적이있”(「팜티호아」)는얼굴들을겹쳐떠올린다.
이처럼시안에서살아숨쉬는전쟁의시간은제2부「없는몸을어루만지다」에서더욱구체적인형상을얻는다.한여진,송경동,김현아,김해자,김용택,김수우,허영선,이대흠,허은실등9명의시인은한베평화재단이수집해온사진과문서,피해생존자의증언과같은아카이브를마주하고새로이시를썼다.피해자의주검에서나온탄환,학살로황폐해진마을의풍경,죽은가족의초상화,이름없이세상을떠난아기의사진……역사를입증하는기록하나하나가시의언어를통과하며선명해진다.여섯살나이에한국군의총격으로목숨을잃은즈엉떤터이는한여진의「뗏」에서“그리하여너는모든이었던사람”으로다시기억된다.붕따우마을에서36명의이웃들이살해될때시신더미에서아이를낳았던릉티퍼이는김현아의「겨울골짜기」에서“목숨있는것으로태어나지않”게해달라는소원을되뇐다.
『살았으니,말해야해요』는베트남전쟁의“끝내지워지지않은이름들이쌓아올린아카이브를뼈대로삼”(손희정추천사)는시집이다.시인허은실이말하듯“이름을부르는건없는몸을어루만지는일”(「따이한제사」)이다.전쟁의기억이라는뼈에시는두꺼운살을입힌다.한편의시는하나의몸이되고,몸들은서로기대어우리가외면해오던역사의형상을만들어낸다.
시인에서시민으로
전쟁을기억하는공동의목소리
『살았으니,말해야해요』는베트남전쟁에관한시민들의목소리를담았다는점에서특별하다.제3부「붉고깊고시린」에는베트남전쟁기록물을재료로한시민들의블랙아웃포에트리,파운드포에트리,비주얼포에트리등3종류의실험시가수록되어있다.응우옌티카인과응우옌티떰자매가전시성폭력을증언했던기사,한국군의학살을폭로하는위령비문구,대한민국국방부가베트남전쟁민간인학살피해자들에게보낸청원회신문서등에서시민들은단어를고르고지우며전에없던문장들을길어올린다.연대를꿈꾸던베트남소설가‘반레’의작품『그대아직살아있다면』은해체되고재구성되어또하나의시가되고,‘당신이바라는평화는무엇인가요?’라는질문에대한시민들의대답이모여평화를상징하는하나의그림이된다.
이책이되살리는것은60여년전베트남의비극만이아니다.그것은우리가어떤역사를선택하고어떤역사를지워왔는가에대한질문이며,타인의고통을알아차린뒤어떻게살아갈것인가에대한존재적고민이기도하다.김애란전대법관이말하듯『살았으니,말해야해요』의시들은“지워진역사와기억의경계를함께지”킨다.한때총을들고마주했던한국과베트남이창화의연으로돌아갈수있다면,그시작엔과거를밝히는언어가있을것이다.그래서이책은거듭말한다.“기억하라,기억하라,꼭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