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딸》은작가가스물다섯의나이로계간<실천문학>에4회에걸쳐발표한장편소설이다.내로라하는작가라할지라도쉽게쓸수없는장편의역사드라마를어린나이에거침없이써내릴수있었던것은,그것이현대사의핏빛소용돌이에뛰어들어고초를겪은가족의수난사였기때문이다.남로당전남도당인민위원장이었던아버지와남부군정치위원이었던어머니를둔탓에작가는빨갱이의자식이라는,어린나이로는도저히감당하기힘든무게의멍에에짓눌려어두운성장기를보냈다.그러한상황에서사춘기의작가가부모님과마음의담을쌓은채자기만의세계로칩거한것은어쩌면가장자연스런일이었는지도모른다.
그러나철이들고현실과역사에대해조금씩눈을떠가면서작가는순수한대의를위해젊음을바쳤지만이루지못하고,사회의냉대속에쓸쓸히늙어가는노부모를이해하게된다.지아,남로당빨치산의거점인지리산과백아산에서따온자신의이름자에서부터덧씌워진천형을비로소기쁘게받아들이게된것이다.《빨치산의딸》은바로그화해의접점에서탄생한작품이다.그래서인지작가의글에는기교나재주를무색하게하는묵직함이담겨있다.
일제의압제에서벗어나해방을맞지만그기쁨도잠시,조선은곧바로혼란에휩싸인다.나라는이념에의해사실상둘로쪼개지고,민중은여전히식량난에허덕였으며,전국적으로총파업이일어났다.구례구철도원으로일하며평범한나날을보내던청년정운창은이런혼란의원인이무엇인지를깨닫기위해서는공부를더해야한다고여기고누구나돈없이도무상교육이가능하다는이북행을감행하나실패한다.비록학습의꿈은수포로돌아갔지만그는그과정에서몇몇좌익지도자들을만나고그들에게감화되어남조선노동당(남로당)에가입한다.그리고새로운이름‘유혁운’으로다시태어난다.
그리고한여자가있다.그녀의이름은이옥남,단지여자라는이유로숙원이던공부도하지못하고원치않은종갓집며느리가되지만,마음속엔늘남녀가똑같이대우받는세상에대한꿈을품고있다.어느날그녀는태평양전쟁의말엽에강제징용됐다좌익이돼돌아온남편을따라남로당에가입함으로써‘이옥자’라는가명으로새로운삶을살아가게된다.
유혁운과이옥자.그들은각자자신의새로운이름으로겪어야할거친운명을전혀짐작하지못했다.그러나한가지만은분명히알고있었다.자신들의선택은정당한것이며,그선택에고통이따를수밖에없다면그것까지도기꺼이감내해야한다는것을.그리고똑같은선택을하고고통을나눠질수많은동지들이그들과함께했다.
정부의토벌작전으로와해위기에처한구빨치는한국전쟁의발발로다시금활기를띠었고,부산을제외한전국이북한인민군에게점령되면서그들로서는새로운해방을맞는듯했다.그러나50년9월연합군의인천상륙작전으로상황은급변했다.퇴로가막힌인민군이대거합세하면서규모가커진빨치산이후방교란작전을펴자이에큰위협을느낀연합군은전방부대를동원해대대적인토벌작전을단행한다.결국빨치산은믿었던북로(북조선노동당)의배신과남한군경합동의거센공격속에서허망한최후를맞는다.
《빨치산의딸》은모두가평등한세상,민족이하나된세상을꿈꾸었던민초들의이야기다.그들은그순수한신념만으로역사의비극속에맨몸으로뛰어들었고,자신들의꿈이이미좌절되었음을알고도묵묵히자신의열정과뼈를산줄기마디마디에묻었다.문학평론가김형수는이책에대해“통렬한과거사가우리의오늘을만들고있음을말해준다”고평했다.역사는그들처럼배반당한꿈을위해모든인생을걸었던이름없는민초들이흘린피와눈물로그맥을이어가고있는것이다.
이작품은소설의형식을띠기는했지만빨치산활동에직접참여했던인물들의체험과증언에의해철저히뒷받침됐다.전개되는사건의흐름과지명,등장인물들의이름은물론,사용된단어나구호까지당시빨치산들이쓰던대로최대한살렸다.따라서독자들은한편의소설을읽는것을넘어한동안그늘에감춰져쉬쉬하던우리의과거사를들여다보는경험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