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곡(桎梏)의시절복숭아밭이많아붙여진모모산언덕에서
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이름을가진도원역을내려다본다.
따뜻한밥그릇을위해쇠뿔고개를넘나드는마을사람들이
도원역의회전문을통과하여
거대한철마에실려낯선동네로등을돌려사라진다.
독갑다리로몰려나온교복들의무표정한얼굴과
갈곳잃은발바닥이머뭇거리다가도
무릉도원을지키던햇발들이달꼬리섬아래로해녀처럼잠수하면
종일도원역부근에서노닐던학생들이야생마처럼빠져나간다.
―도원역(桃源驛)부근부분
이시편의핵심시구는‘질곡의시절’과‘거대한철마’그리고‘회전문’이다.시의화자는“질곡의시절”을살아낸도원역풍경을내려다본다.아니,시인은가장추상화된공간인철도역에붙인“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감각적이고서정적인‘도원’이라는이름을들여다본다.꽃과무쇠,복숭아꽃과철마,자연적공간인도원(桃園)과인공적공간인철도역(鐵道驛)의이부자연스럽고이상한조합은,‘괴물’처럼매우낯선이질감을불러일으킨다.이이상한조합의결과‘도원’은그화사한아름다움의아우라를상실하고그저“따뜻한밥그릇을위해”끊임없이회전문을들고나는근대적삶의공간으로변질된다.
복숭아밭이많아서붙여진‘도원(桃園)’은자연과하나인삶이그대로이름이된장소다.그러나세상에서가장화사하고아름다운도원에막무가내쳐들어와울타리를치고이름을빼앗아덮어쓰고있는철도역‘도원역(桃源驛)’.그역사(驛舍)의“회전문”은하나의축을중심에두고빙빙돌며사람들을삼키고뱉어낸다.이제철도역이군림하는세계에서사람들은쫓기듯낯선동네로밀려나갔다가지친몸을이끌고보금자리로되돌아온다.
좁은골목길인적이드문
붉은벽돌이층집해당화여인숙
갯바람이불고파도소리가들리는듯하다.
유년시절숭의청과물시장건너편
도원동전도관언덕길개조한적산(敵産)가옥에
다섯가족이방한칸씩차지하고함께살던
씩씩한계집아이차돌이가생각난다.
한번쯤어디선가만나질인연이라생각했는데
단한번도스친적없는인연아닌인연
붉은색으로단장한해당화여인숙에서는
방방마다켜켜이쌓인인연의분냄새가
진동할것같다.
썩을대로썩으면오히려향기나는모과처럼
곱씹으면곱씹을수록추억에서도
향기가나는듯하다.
―?해당화여인숙?전문
시집으로묶인시작품들을읽고해명하는방법에는여러가지가있을수있다.혹자는시편들전체를관통하는키워드를통해전편을가로지르는시적인식을,혹자는언어미학의측면을,혹자는새로운실험정신에방점을두어읽을수있다.본글에서는최성민시인의시적상상력이대상세계와맞대면하면서어떻게심미적경험을하게되는가또어떤심미적파장을불러오는가라는시적사유의측면에방점을두어읽어보려한다.필자가그의시편들을읽는핵심키워드는‘장소’혹은‘장소성’이다.
이시집에서우리는도처에서시간과공간을경험한다.시의행간에놓인기억이라든가,상처,흔적,유적,유물등에서스쳐간시간들을경험하며,하다못해길가에피어있는한송이꽃에서도꽃주위에흩어져있는자갈몇개에서도그사물이놓여있는장소와시간을경험한다.그것들은독자의의식속에들어오는즉시가열한내적반성을일으키고존재의근원으로의식을끌어당긴다.설령유년기이거나과거의어느한지점을통과할지라도결국은우리의지각형식으로는가닿기어려운궁극의본향이거나어떤초월적이고시원적인지점으로가닿게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