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저울에 눈금이 없다

아내의 저울에 눈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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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용기 시인의 시편에는 아내에 대한 온기로 가득하다. 동시에 그만의 직설적 화법이 시집 전편에 관류하면서 맵찬 봄바람마저 엿보이게 한다. 군더더기 없는 어휘 구사를 활용해 푸른 파도를 넘실거리게 하는가 하면, 단단한, 그만의 거침없는 옹골찬 숨결로 시편 이곳저곳 너울마저 일게 한다.
그간 『빚쟁이 되어』 『목마르다』 『미명』 등의 시집을 펴내었고 그 뒤를 잇는 네 번째 시집 『아내의 저울엔 눈금이 없다』를 통해서 시인만의 단단한 현실 인식과 삶의 결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가깝고도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이들과의 반복적 일상이 빚어내는 파장은 크다. 대상에 대한‘관심’의 무게와 크기 그리고 그 방향성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성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의 전반에 걸친 시 세계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대상에 대한 관심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아주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매번 새롭다. 그래서 충분히 주목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아주 익숙한 그 무엇이 특별한 그 무엇인 것처럼 단호하게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가진, 시인만의 강점일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편 곳곳에 장착한 간결하고도 섬세한 부분 역시 독자의 시선을 확장하게 한다. 동시에 시인의 단단한 일상이 만들어낸 유연함과 결속의 관계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눈앞에 놓여 있는 그대로의 현실, 가감 없는 현실이 독자를 아주 편하게 한다.

지지직
서로 겹쳤을 때 소리가 안 들리는
전파 교란이 있지만
어림없는 소리
그 많은 어린애들이
찧고 까불며
먼 곳에서 떠들어도
제 아이 우는 소리는 용케
골라내 듣는 엄마의 귀는
고성능 안테나
일어나 뛸 때마다 틀린 적이 없다
급할 때
아이를 솔개처럼 낚아채는
엄마에게
숨겨진 발톱이 있다.
-「엄마는 총알」 전문

어지간해서
주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엄마 비밀번호가 비밀일까
그것 하나로
여기저기 다 쓰니
만먹으면 집 한 채 날아가도 모를 일
엄마 벨 소리였다면 십중팔구
잊으셨을 테고 또 물어오신 거다
뭐시냐 거시기,
엄마 이메일을 가끔 들여다본다
만든 까닭이야 뻔하지만
쌓인 쓰레기를 본 적 없으시니
썩은 냄새가 뭔지도 모르신다
사고 흔적 없음이 다행
쓰레기 치워드릴 때마다,
은행 가서 전화하실 때마다,
친구들 만나면 쿠팡 한다는 자랑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관리인이 된다
남들 앞에서 자랑거리인 나는
엄마 관리인이다.
-「엄마 관리인」 전문

시인은 ‘엄마’에 대해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경계가 없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는, 굳이 가릴 것이 뭐가 있느냐는 듯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탈탈 털어낸다. 아무런 주저조차 없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별달리 숨길 것이 없고, 굳이 숨겨야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아주 거침없는 것이다. 그때그때 일어난 일을 옆집 이웃에게 말하듯, 친구에게 말하듯 세상을 향해 툭툭 털어내는 것이다. 이는 서슴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과정과 행위를 확인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만의 직설적 화법으로 펼쳐낸 엄마의 비장의 무기는 ‘숨겨진 발톱’이다.
아무리 강한 전파 교란이 있을지라도, 아이들이 많아도, 소란스럽고 거리가 멀어도 ‘제 아이 우는 소리는 용케/ 골라내 듣는 엄마의 귀는/ 고성능 안테나’로 바꾼다. 절대 오류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과감 없이 보여준다. ‘숨겨진 발톱’에 의해‘솔개처럼 낚아채는’정확하고도 빠른 솜씨마저 가졌다는 것도 재차 확인하는 것도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부모는 제 아이의 울음소리를 먼 곳에서도 감지하는 초능력과도 같은 청각을 가졌다는 말이 있다. 다소 과장된 말이나 여럿이 울어도 제 아이의 울음소리만은 한순간에 알아챈다고 한다.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엄마 관리인」은 더 이상 ‘숨겨진 발톱’을 가진 날렵하고도 정확하며 단단한 어제의 어머니가 아니다. 힘없고 기억력마저 퇴화한 오늘의 늙은 어머니를 보여준다. 그 어머니를 시인은 작품 전면에 부각한다.
어머니는 개인 이메일을 가졌으나 비밀번호를 자주 잊어 그때그때 아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뭐시냐 거시기,’라고 자주 묻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건 구입을 위한‘쿠팡’에 접속하거나 ‘은행’을 가는 것도 스스로 하는 행위가 아님에도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여전히 오늘의 ‘나’가 당당한 현재진행형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이는 아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단일한 비밀번호로 바꾸었으나 그마저도 자주 잊어버리니 어쩌겠는가. 야무진‘관리인’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남들 앞에서 자랑거리가 된’‘나는 엄마 관리인’임을 묵묵히 그리고 당당히 드러낸다.

가늠으로
물 주는 시기를 아는
아내가 신통하다
죽은 화분을 본 적이 없다

부엌에는
얼추라는 저울이 있고
끼니마다 다르지만
맛없어서 버린 적 없다면
정확한 눈금인가

그날은 틀리지 않았다
애들 사춘기다
엄마는 가슴이 저울이다
애들 요리 잘한다
눈금 정확한 사춘기의 대가다

아내가 숨긴 저울은 가늠이다
얼추다
눈금이 없어도
저울이 틀리지 않은 이유는
사랑이 눈금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저울엔 눈금이 없다」 전문

위의 작품 「아내의 저울엔 눈금이 없다」는 작정을 하고 직설적 화법으로 여과 없이 아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가늠으로/ 물 주는 시기를 아는/ 아내가 신통하고/ 죽은 화분 본 적이 없다’라고 확언하는가 하면, ‘부엌에는/ 얼추라는 저울이 있’는데 끼니마다 달라도 맛없어서 결코 버린 적 없다고 한다. 그 얼마나‘정확한 눈금인가’. 라고 감탄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날은 틀리지 않았다/ 애들 사춘기다/ 엄마는 가슴이 저울이다/ 애들 요리 잘한다/ 눈금 정확한 사춘기의 대가다’라면서 뒷받침 논거로 삼기도 한다. 아내에 대한 시인의 확실한 믿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늠’이라는 저울에 대한 판단이다.
그것은 아내가 가슴 속에 숨겨놓은 ‘얼추’라는 저울이 얼마나 대단한가 감탄하기까지 한다. 그 뒷받침 논거로‘눈금이 없어도/ 저울이 틀리지 않은 이유는/ 사랑이 눈금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눈금 정확한 사춘기의 대가다’라고 확언하면서 그 어떤 믿음보다 더 강하고 그 어떤 무게보다 더 센 ‘아내가 숨긴 저울’은 ‘가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무게를 통해야만 비로소 현실적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얼추’와 ‘가늠’이라는 의미의 동의어가 내포하는 것은 사실 아내에 대한 시인의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눈금이 없어도/ 저울이 틀리지 않은 이유는/ 사랑이 눈금이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충분히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용기

저자:김용기
부여에서났고인천이키워원주에서살고있다.한양대학교를졸업했으며,2006년「흔들리는새벽」외3편으로『문학저널』로등단했다.시집으로『빚쟁이되어』,『목마르다』,『미명』이있다.현재원주문인협회회원,드림교회장로로재직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뒤집지마라
엄마는총알13/배추꼬리14/엄마가천재15/넥타이16/공생共生17/엄마관리인18/거울이없다20/눈물의전염22/성인聖人24/쓸만한궤변25/아내는달[月]이다26/말침27/부부싸움28/사소한이유30/뒤집지마라32/아내의저울에눈금이없다34/뒷바퀴36/외숙모이름38/그럴때있었다39/애되다40/

제2부못뺀자리
보복43/시험44/다짐45/못뺀자리46/한국말어렵다48/그리하면49/욕심50/용서52/응답54/주일주차장55/촛불을켜다56/풍경소리58/그림자밟지마라60/흔들리며산다61/결핍의시간62/거미줄64/미세요66/깍두기68/먹는이유70/뭐라고부를까71/

제3부거룩한시간
고향75/백수白手일기76/상수常數C78/신발길내는것처럼80/엘리베이터81/떡국은왜삐딱한가82/달의무게84/거룩한시간85/달의뒷면86/전기電氣88/고백89/크느라고90/열처리熱處理92/소회94/허튼소리95/잘96/전하,되옵니다98/말같잖은소리100/보라색102/역설逆設103/

제4부모자라구먼
국화107/욕심많은꽃이예쁘다108/노을110/슬픈낙타112/모자로구먼114/착각116/꽃을기억하라118/해119/전봇대120/월북122/그여자123/화장124/구출126/할미꽃127/장수비결128/검은깨두알130/어두워야잘보인다131/휴대폰님132/꽃은무죄134/잡초136/

작품해설|임동윤
아내를바라보는특별한시간의무게139

출판사 서평

김용기시인의시편에는아내에대한온기로가득하다.동시에그만의직설적화법이시집전편에관류하면서맵찬봄바람마저엿보이게한다.군더더기없는어휘구사를활용해푸른파도를넘실거리게하는가하면,단단한,그만의거침없는옹골찬숨결로시편이곳저곳너울마저일게한다.
그간『빚쟁이되어』『목마르다』『미명』등의시집을펴내었고그뒤를잇는네번째시집『아내의저울엔눈금이없다』를통해서시인만의단단한현실인식과삶의결기를다시한번확인하게하는것도그렇다.가깝고도밀접한관계에놓여있는이들과의반복적일상이빚어내는파장은크다.대상에대한‘관심’의무게와크기그리고그방향성에주목하게함으로써성과를나타내고있기때문이다.
시집의전반에걸친시세계를가까이들여다보면대상에대한관심은매우당연하고자연스럽다.그것은우리의일상에서언제든맞닥뜨릴수있는아주익숙한삶의한부분이기때문이다.
그러나시인에게는매번새롭다.그래서충분히주목하게한다.중요한것은아주익숙한그무엇이특별한그무엇인것처럼단호하게시선을끌어들이고있다는것이다.그것은시인이가진,시인만의강점일것이라고도말할수있을것이다.
시편곳곳에장착한간결하고도섬세한부분역시독자의시선을확장하게한다.동시에시인의단단한일상이만들어낸유연함과결속의관계를여과없이보여주기도한다.또한,눈앞에놓여있는그대로의현실,가감없는현실이독자를아주편하게한다.

지지직
서로겹쳤을때소리가안들리는
전파교란이있지만
어림없는소리
그많은어린애들이
찧고까불며
먼곳에서떠들어도
제아이우는소리는용케
골라내듣는엄마의귀는
고성능안테나
일어나뛸때마다틀린적이없다
급할때
아이를솔개처럼낚아채는
엄마에게
숨겨진발톱이있다.
―「엄마는총알」전문

어지간해서
주변모르는사람이없는
엄마비밀번호가비밀일까
그것하나로
여기저기다쓰니
만먹으면집한채날아가도모를일
엄마벨소리였다면십중팔구
잊으셨을테고또물어오신거다
뭐시냐거시기,
엄마이메일을가끔들여다본다
만든까닭이야뻔하지만
쌓인쓰레기를본적없으시니
썩은냄새가뭔지도모르신다
사고흔적없음이다행
쓰레기치워드릴때마다,
은행가서전화하실때마다,
친구들만나면쿠팡한다는자랑
그럴때마다,
나는엄마관리인이된다
남들앞에서자랑거리인나는
엄마관리인이다.
―「엄마관리인」전문

시인은‘엄마’에대해서,‘엄마’와의관계에대해서전혀경계가없다.이것저것가릴것없는,굳이가릴것이뭐가있느냐는듯여과없이있는그대로탈탈털어낸다.아무런주저조차없다.아니,오히려당당하기까지하다.
부모자식관계에서별달리숨길것이없고,굳이숨겨야할필요도없다는듯아주거침없는것이다.그때그때일어난일을옆집이웃에게말하듯,친구에게말하듯세상을향해툭툭털어내는것이다.이는서슴없을뿐만아니라오히려적나라하게드러냄으로써과정과행위를확인하는결과를보여준다.그만의직설적화법으로펼쳐낸엄마의비장의무기는‘숨겨진발톱’이다.
아무리강한전파교란이있을지라도,아이들이많아도,소란스럽고거리가멀어도‘제아이우는소리는용케/골라내듣는엄마의귀는/고성능안테나’로바꾼다.절대오류가일어날수없다는것을과감없이보여준다.‘숨겨진발톱’에의해‘솔개처럼낚아채는’정확하고도빠른솜씨마저가졌다는것도재차확인하는것도그렇다.세상에존재하는대부분의부모는제아이의울음소리를먼곳에서도감지하는초능력과도같은청각을가졌다는말이있다.다소과장된말이나여럿이울어도제아이의울음소리만은한순간에알아챈다고한다.그것은더도덜도아닌부모이기때문이다.
그러나시「엄마관리인」은더이상‘숨겨진발톱’을가진날렵하고도정확하며단단한어제의어머니가아니다.힘없고기억력마저퇴화한오늘의늙은어머니를보여준다.그어머니를시인은작품전면에부각한다.
어머니는개인이메일을가졌으나비밀번호를자주잊어그때그때아들에게도움을구한다.‘뭐시냐거시기,’라고자주묻는것이다.뿐만아니라물건구입을위한‘쿠팡’에접속하거나‘은행’을가는것도스스로하는행위가아님에도친구들에게자랑한다.여전히오늘의‘나’가당당한현재진행형의삶을이어가고있다는것을드러내는것에다름아니다.
그러나이는아들의도움없이는불가능하다.이제나이가들어단일한비밀번호로바꾸었으나그마저도자주잊어버리니어쩌겠는가.야무진‘관리인’이필요할수밖에없다.시인은‘남들앞에서자랑거리가된’‘나는엄마관리인’임을묵묵히그리고당당히드러낸다.

가늠으로
물주는시기를아는
아내가신통하다
죽은화분을본적이없다

부엌에는
얼추라는저울이있고
끼니마다다르지만
맛없어서버린적없다면
정확한눈금인가

그날은틀리지않았다
애들사춘기다
엄마는가슴이저울이다
애들요리잘한다
눈금정확한사춘기의대가다

아내가숨긴저울은가늠이다
얼추다
눈금이없어도
저울이틀리지않은이유는
사랑이눈금이기때문이다.
―「아내의저울엔눈금이없다」전문

위의작품「아내의저울엔눈금이없다」는작정을하고직설적화법으로여과없이아내를전면에내세우고있다.
‘가늠으로/물주는시기를아는/아내가신통하고/죽은화분본적이없다’라고확언하는가하면,‘부엌에는/얼추라는저울이있’는데끼니마다달라도맛없어서결코버린적없다고한다.그얼마나‘정확한눈금인가’.라고감탄한다.
그뿐만이아니다.‘그날은틀리지않았다/애들사춘기다/엄마는가슴이저울이다/애들요리잘한다/눈금정확한사춘기의대가다’라면서뒷받침논거로삼기도한다.아내에대한시인의확실한믿음은여기서멈추지않는다.한걸음더나아가‘가늠’이라는저울에대한판단이다.
그것은아내가가슴속에숨겨놓은‘얼추’라는저울이얼마나대단한가감탄하기까지한다.그뒷받침논거로‘눈금이없어도/저울이틀리지않은이유는/사랑이눈금이기때문이다.’라고강조하는것이다.‘눈금정확한사춘기의대가다’라고확언하면서그어떤믿음보다더강하고그어떤무게보다더센‘아내가숨긴저울’은‘가늠’이라는눈에보이지않는추상적무게를통해야만비로소현실적실체를확인할수있다.
‘얼추’와‘가늠’이라는의미의동의어가내포하는것은사실아내에대한시인의깊은신뢰를보여준다고하겠다.‘눈금이없어도/저울이틀리지않은이유는/사랑이눈금이기때문’이라는대목에서충분히파악되고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