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소리와 닿소리 (이명재 시집)

홀소리와 닿소리 (이명재 시집)

$12.00
Description
이명재의 시편 전반에 펼쳐진 세상은 시인을 둘러싼 저만의 특별한 시간과 그만의 현실이 빚어낸 활력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매우 예민한, 익숙하나 전혀 낯선 또 다른 세상이 겹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으레 그렇듯 제게 주어진 일상이 빚어내는 다양한 소리의 출렁임에 시인은 쉽게 흔들리기도 하나 결코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꿋꿋함마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을 둘러싼 만만하지 않은 현실은 끊임없이 시인을 포위하고 있어 자주 내면의 자아를 의심의 눈초리로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렇다. 누구에게든 하루하루의 일과는 대체로 새로운 듯 해도 지난 시간과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결코 새로울 수 없을 것이라 짐작된다.

눈 익은 골목길이 갑자기 좁아 들 때 있어요. 집집 사이로 꺾여 120든 담벼락들이 좁은 미로를 지나는 자동차를 쿵쿵 들이칠 것 같아요. 어제는 안 그랬는데 들어올 때도 안 그랬는데 나가는 골목이 나를 압박해 와요. 나는 살얼음 미끄러지듯 핸들을 꽉 틀어쥐죠. 흠칫 브레이크를 잡죠.그럴 때면 오늘처럼 짙은 안개 속으로 떠난 엄마가 손을 흔들어요. 미세먼지를 머금은 물방울들이 아버지의 눈빛으로 하늘에 젖어 있어요, 집에 들면 출타한 아내가 저녁 땅거미로 스러질 것 같고요. 거실에는 차갑게 식은 보일러가 윙윙 머릿속을 울려요. 산등성이 출렁다리 위에서 어쩌지 못하고 멈칫대던 가슴, 현기증이 달려와 휘이이 천길 바람으로 쏟아지는 아득함, 풀린 다리를 추스르지 못해 주저앉을 때 있어요. 의지를 벗어난 일상들이 캄캄 담벽처럼 조여들 때 있어요.
- 「그럴 때」 전문

시인을 에워싼 현실은 늘 생동적이다. 무언가 끊임없이 솟구치거나 흘러넘친다. 주변의 요소들 역시 그렇다. 늘 꿈틀거리며 매 순간 시인을 욱죄이거나 풀어놓거나 한순간 내동댕이치기까지 한다. 미처 대응할 수 없는, 그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듯 시인은 일방적으로 가차 없이 내몰리거나 때론 준비 없이 순간순간 이리저리 마구 이끌리기 다반사이다. 그것은 시인의 의지가 전혀 아니다. 스스로 솟구치고 싶은 강한 의지도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이 순전히 타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의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눈 익은 골목길이 갑자기 좁아 들 때 있어요./ 집집 사이로 꺾여 든 담벼락들이 좁은 미로를 지나는 자동차를 쿵쿵 들이칠 것 같아요. 어제는 안 그랬는데 들어올 때도 안 그랬는데 나가는 골목이 나를 압박해 와요. 나는 살얼음 미끄러지듯 핸들을 꽉 틀어쥐죠. 흠칫 브레이크를 잡죠.’(「그럴 때)」의 세계에서 시인의 의식에 내재한 무의식과 익숙한 기억이 혼재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보름달의 둥근 지구 마당귀엔
소리들이 모여 산다

빨강 소리
하양 소리

서로 빛 섞은 분홍 소리
주황 소리 산다

속살 물소리로 우러난 연둣빛 줄기
초록 숲으로 무성한 잎

같은 소리로 자라오르다 문득
여름빛 짙어 오면 소리들은
각기 빛 다른 꽃잎을 펼친다

서로 옷자락 나눠 홀소리 우거지고
서로 팔다리 부딪혀 닿소리 엉키고

둥그런 이 땅의 마당귀에 울려 퍼지는
홀소리와 닿소리의 채워짐

저기, 무더기무더기 빛 다르게 펼쳐진
저 수많은 봉숭아 꽃잎

- 「다문화」 전문

시인의 시선은 자신이 속한, 자신이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뿐 아니라, 그 속을 꽉꽉 채운, 그 안에 펼쳐진 파노라마의 다양한 삶의 군상에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위의 시는 보여주고 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그들은 자기네들의 처지보다 훨씬 나은 나라로 이동하면서 일감을 구하고, 그 대가로 먹고 살 뿐만 아니라, 저축을 통해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는 전혀 새롭지 않으나, 그들은 온 힘을 다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한편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온갖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똥이 묻었다
나이 더할수록 세월은 닳고 닳아
화장지도 얇아졌다
세 겹 네 겹 배춧잎처럼 두툼하던 두루마리들이
두 겹 한 겹 상춧잎이 되었다
똥 냄새 웅웅거리던 어릴 적 배설의 어둠은
문득 뽀얀 샘물로 엉덩이를 씻었다
세상은 날마다 달마다 풍요로웠지만
계절이 낯빛 바꿀 때마다 궁색해지는 가슴
해가 저물 때마다
겨울 잎처럼 휘날리는 부끄럼의 손때
내 어머니와 아버지
주름주름 얼굴 손 낡아갈 때마다
불빛 낮추고 씀씀이 낮춰가던 세월처럼
기어이 내 화장지도 얇아졌다
똥 찌꺼기가 손바닥과 화장지 사이에서
팽팽하게 마주 서는 순간
다시 접어 당기던 손가락에
똥이 묻었다
때 절은 손에 똥 때가 얹어졌다
- 「뒤를 본다·2」 전문

매우 직설적인 화법을 통해 시편 전편에 펼쳐내는‘똥’ 이야기는 이명재 시인만의, 이명재 시인에게 내재한 가장 자신 있는 설득력을 과하지 않게 펼쳐내는 힘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뻔한‘똥’의 실체를 카타르시스화하는 동시에 ‘똥’이라는 대상을 시편 전편을 통해 재치 있는 만담가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다. 시인만의 표현을 통해 직접적이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서의 개성적 기능을 갖는다고 하겠다. 삶의 현장에서 가장 확실한 근거로 뒷받침되는 그 어떤 강력한 에너지를 장착한 것처럼 지금 바로 쓸모 있는 기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접근하기 어렵지 않으면서 뒤틀고 비틀지 않으면서 구차하지 않은 능동의 시적 언어의 배열을 통해 그 이면의 당연하고도 뻔한 의미를 달리 여기게 해주는 동시에 생동의 리듬까지 만나게 하는 것이다.

멀리 풀벌레 운다
풀벌레 운다
아니, 웃고 있다
밤새워 푸른 목청의 날을 가는 풀벌레들이
내 무딘 언어를 비웃으며
밤새워 운다
잠시도 조용히 울지 않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웃는다
울며 웃는 풀벌레는
내가 잠들 때를 기다린다
풀벌레가 울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내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권태 ㆍ 3」 전문

이명재 시인의 시편들은 너무나 많은 소리로 넘쳐난다. 그것은 그가 속한 삶의 조건과 환경 그리고 시인이 가진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작동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어떤 모난 현실과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현실의 다양한 빛과 그림자가 주는 조용하거나 강한 메시지를 외면하지 못하는 생래적 능동성이 작동한 탓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저 그렇게 그저 그냥 대충 보아 넘길 수 없는 시인만의 삶의 결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 제게 닥친 삶의 환경적 조건이 우선하여 절대적으로 그 주변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다는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경우에 맞게 또는 그와 상응하는 또 다른 삶의 조건과 환경을 교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순서를 조정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조금씩 또는 확실하게 다른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거나 순응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각각 처한 환경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기준을 충족시키거나 만족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명재 시인이 만난 세계는 그가 가진 남다른 감수성과 세계관이 작동하면서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그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었음을 보았다. 한편으로 소외된, 그 어떤 병리 현상을 따뜻하게 껴안으며 생성의 기운으로 이끌고 있음도 진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

이명재

저자:이명재
[약력]
1988년대전일보신춘문예및『문학마당』신인상으로등단.
한국작가회의회원/충남작가회의부회장,충남시인협회원,예산시인협회장,예산문협부회장.
시집『똥집대로산다』,수필집『속터지는충청말』(전2권),번역『어린왕자』충청사투리편,산문집『충청도말이야기』,『사투리로읽어보는충청문화』(공저),방언사전『충청남도예산말사전』(전4권)외.
[수상경력]
한글학회장/교육부장관표창.
2015년한국예술위원회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충남문화관광재단문학창작기금(3회)수혜.

목차

시인의말

제1부홀소리와닿소리
소나기_13/가로등_14/빗소리_16/서툰휘파람은_18/노을_20/비오는날_22/디스크_24/민들레_26/다문화_28/오래된받침을떼어내다_30/파랑_32/어른수업_34/가을밤_36/기미_38

제2부어머어머큰산
그럴때_43/천리마_44/대마도노을_46/첫눈_48/벚나무다리밋자루_50/가짜뉴스_52/피싱보이스_54/개구리알_56/의처증_58/등이아픈날의바퀴벌레_60/엄마생각_62/어머어머큰산_64/

제3부뒤를본다
뒤를본다1_67/뒤를본다2_68/뒤를본다3_70/뒤를본다4_72/뒤를본다5_74/뒤를본다6_75/뒤를본다7_76/뒤를본다8_78/뒤를본다9_79/뒤를본다10_80/뒤를본다11_82/뒤를본다12_84/뒤를본다13_86/뒤를본다14_88/뒤를본다15_89/뒤를본다16_90/

제4부탄금대
11월_93/입춘_94/탄금대_96/오랜사람을만나러갈땐_98/겨울냉이_100/빈집_102/스쿨존_104/만남은_106/가끔_107/꽃차_108/봉지커피_110/권태·1_111/권태·2_112/권태·3_114/권태·4_115/권태·5_116/

작품해설|박해림
흘러내리거나가득하거나출렁이거나_119/

출판사 서평

눈익은골목길이갑자기좁아들때있어요.집집사이로꺾여120든담벼락들이좁은미로를지나는자동차를쿵쿵들이칠것같아요.어제는안그랬는데들어올때도안그랬는데나가는골목이나를압박해와요.나는살얼음미끄러지듯핸들을꽉틀어쥐죠.흠칫브레이크를잡죠.그럴때면오늘처럼짙은안개속으로떠난엄마가손을흔들어요.미세먼지를머금은물방울들이아버지의눈빛으로하늘에젖어있어요,집에들면출타한아내가저녁땅거미로스러질것같고요.거실에는차갑게식은보일러가윙윙머릿속을울려요.산등성이출렁다리위에서어쩌지못하고멈칫대던가슴,현기증이달려와휘이이천길바람으로쏟아지는아득함,풀린다리를추스르지못해주저앉을때있어요.의지를벗어난일상들이캄캄담벽처럼조여들때있어요.
―「그럴때」전문

시인을에워싼현실은늘생동적이다.무언가끊임없이솟구치거나흘러넘친다.주변의요소들역시그렇다.늘꿈틀거리며매순간시인을욱죄이거나풀어놓거나한순간내동댕이치기까지한다.미처대응할수없는,그어떤상황에놓여있는듯시인은일방적으로가차없이내몰리거나때론준비없이순간순간이리저리마구이끌리기다반사이다.그것은시인의의지가전혀아니다.스스로솟구치고싶은강한의지도아니다.오히려이모든상황이순전히타의에의해일방적으로발의되고있다는것을파악할수있다.‘눈익은골목길이갑자기좁아들때있어요./집집사이로꺾여든담벼락들이좁은미로를지나는자동차를쿵쿵들이칠것같아요.어제는안그랬는데들어올때도안그랬는데나가는골목이나를압박해와요.나는살얼음미끄러지듯핸들을꽉틀어쥐죠.흠칫브레이크를잡죠.’(「그럴때)」의세계에서시인의의식에내재한무의식과익숙한기억이혼재되어있음을파악할수있다.

보름달의둥근지구마당귀엔
소리들이모여산다

빨강소리
하양소리

서로빛섞은분홍소리
주황소리산다

속살물소리로우러난연둣빛줄기
초록숲으로무성한잎

같은소리로자라오르다문득
여름빛짙어오면소리들은
각기빛다른꽃잎을펼친다

서로옷자락나눠홀소리우거지고
서로팔다리부딪혀닿소리엉키고

둥그런이땅의마당귀에울려퍼지는
홀소리와닿소리의채워짐

저기,무더기무더기빛다르게펼쳐진
저수많은봉숭아꽃잎
―「다문화」전문

시인의시선은자신이속한,자신이발을딛고살고있는지금,이순간에충실할뿐아니라,그속을꽉꽉채운,그안에펼쳐진파노라마의다양한삶의군상에확장하고있다는것을위의시는보여주고있다.오직먹고살기위해서이동할수밖에없는가난한나라의사람들.그들은자기네들의처지보다훨씬나은나라로이동하면서일감을구하고,그대가로먹고살뿐만아니라,저축을통해좀더나은미래를꿈꾸는것이작금의현실이다.이제는전혀새롭지않으나,그들은온힘을다해서먹을것을구하고한편으로는삶의질을향상시키기위해온갖위험한일을마다하지않고애를쓰고있다는것을우리는안다.

똥이묻었다
나이더할수록세월은닳고닳아
화장지도얇아졌다
세겹네겹배춧잎처럼두툼하던두루마리들이
두겹한겹상춧잎이되었다
똥냄새웅웅거리던어릴적배설의어둠은
문득뽀얀샘물로엉덩이를씻었다
세상은날마다달마다풍요로웠지만
계절이낯빛바꿀때마다궁색해지는가슴
해가저물때마다
겨울잎처럼휘날리는부끄럼의손때
내어머니와아버지
주름주름얼굴손낡아갈때마다
불빛낮추고씀씀이낮춰가던세월처럼
기어이내화장지도얇아졌다
똥찌꺼기가손바닥과화장지사이에서
팽팽하게마주서는순간
다시접어당기던손가락에
똥이묻었다
때절은손에똥때가얹어졌다
―「뒤를본다·2」전문

매우직설적인화법을통해시편전편에펼쳐내는‘똥’이야기는이명재시인만의,이명재시인에게내재한가장자신있는설득력을과하지않게펼쳐내는힘이있다.일반적으로알고있는뻔한‘똥’의실체를카타르시스화하는동시에‘똥’이라는대상을시편전편을통해재치있는만담가처럼여기게하는것이다.시인만의표현을통해직접적이면서도그만의독특한화법으로서의개성적기능을갖는다고하겠다.삶의현장에서가장확실한근거로뒷받침되는그어떤강력한에너지를장착한것처럼지금바로쓸모있는기능을동시에느끼게한다.접근하기어렵지않으면서뒤틀고비틀지않으면서구차하지않은능동의시적언어의배열을통해그이면의당연하고도뻔한의미를달리여기게해주는동시에생동의리듬까지만나게하는것이다.

멀리풀벌레운다
풀벌레운다
아니,웃고있다
밤새워푸른목청의날을가는풀벌레들이
내무딘언어를비웃으며
밤새워운다
잠시도조용히울지않는다
잠시도쉬지않고웃는다
울며웃는풀벌레는
내가잠들때를기다린다
풀벌레가울지않는다
웃지않는다
내가
잠들었기때문이다
―「권태3」전문

이명재시인의시편들은너무나많은소리로넘쳐난다.그것은그가속한삶의조건과환경그리고시인이가진적극적인삶의의지가작동한탓이라고할수있다.또한그어떤모난현실과끊임없이교차하고있는현실의다양한빛과그림자가주는조용하거나강한메시지를외면하지못하는생래적능동성이작동한탓일거라고짐작한다.그저그렇게그저그냥대충보아넘길수없는시인만의삶의결이그러하기때문이다.사람은누구든제게닥친삶의환경적조건이우선하여절대적으로그주변에기대어살수밖에없다.그러나그렇다고해서그게다는아니다.각자가처한상황과경우에맞게또는그와상응하는또다른삶의조건과환경을교차시킬수있기때문이다.예를들어순서를조정하는등의노력을통해조금씩또는확실하게다른환경을적극적으로만들거나순응하며받아들일수있을것이다.그러나그것으로각각처한환경이자신에게주어진삶의기준을충족시키거나만족하게하지는않는다.이명재시인이만난세계는그가가진남다른감수성과세계관이작동하면서생생한시각적이미지와청각적이미지를그만의것으로만들어내었음을보았다.한편으로소외된,그어떤병리현상을따뜻하게껴안으며생성의기운으로이끌고있음도진득하게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