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기시인의시는우리가매일마주치는사물과풍경,몸의기억과생활의언어속에서출발한다.개미와달팽이,발가락과꼬리뼈,건빵과별사탕,조개껍데기와족저근막염까지.평범한사물과현상을통과한시인의시선은어느순간인간존재의본질과삶의의미를향해나아간다.
시집의첫머리에놓인「철학」은이시집전체를관통하는선언과도같다.
소크라테스에게만철학이있는것이아니다.
쉼없이줄지어가는개미의가는다리에도철학이있고
잠들지않고천적을감시하는물고기의눈속에도철학이있고
집한채지고한평생살아가는참달팽이의배밀이속에도철학이있다.
푹신한신발로직립보행하며
안락한침대에쉬이잠드는
육신만
철학이몸밖에있다.
입속에있다.
―「철학」전문
시인은철학을특별한학문이나사유의영역으로한정하지않는다.살아있는모든존재와삶의방식속에이미철학이존재한다고말한다.이러한관점은시집전편에흐르는중요한토대가된다.사소한사물하나도그의시속에서는존재의의미를품게된다.
표제작「말의온도」는오늘의시대를살아가는우리의언어를날카롭게비춘다.
마음을끌어안은말/옛말이되고//
공장에서제조된햇반과밀키트의정형화된/가부장적권위를잃고무너진/독백의시간이길어진/점성이떨어진//
영혼과분리된말/신조어가되고//
감성이식고먹다남은말/냉장고속으로//
냉장온도5°C/냉동온도?19°C
―「말의온도」부분
한때사람의체온을품고있었던말은점점기능적인언어로변해간다.즉각소비되고폐기되는말들속에서시인은사라져가는관계의온도를발견한다.이작품은단순히언어에대한성찰을넘어현대인의소통방식과삶의풍경을응축하여보여준다.
박중기시의또다른특징은독특한비유와전복적상상력이다.
「생각공장」에서는구로기계공구상가를‘생각을생산하는공장’으로바꾸어놓는다.절삭공구는생각을다듬고,용접공구는끊어진생각을이어붙이며,연마공구는거친생각을매끄럽게만든다.산업현장의풍경은어느새인간정신의생산과정으로변모한다.
「인생·1」에서는씹다버린껌을통해삶을이야기한다.“일단한번씹은껌은침샘이마를때까지씹어야한다고”말한다.이유머러스한표현속에는삶에대한책임과인내의의미가묵직하게배어있다.
제2부「시간의완성」에이르면시인의시선은인간의몸과나이듦의문제로향한다.「철들다」,「꼬리뼈」,「잠도나이가든다」,「중년」,「발가락닮았다」등은세월이남긴흔적을통해인생을성찰하는작품들이다.특히「철들다」는인상적이다.
바람차고물먹고몸산화되면서화석의발자국에서발가락이나오듯녹물이흘러나온다.
―「철들다」부분
철이녹슬어가는과정은인간이성숙해가는과정과겹쳐진다.젊음의단단함이아니라상처와마모를통해얻어지는깊이를보여주는작품이다.
이시집에서빼놓을수없는것은특유의풍자정신이다.「희망신문」은존재하지않는뉴스를만들어현실을비춘다.모두가행복해지는기사들로가득한신문을상상하면서오히려현실의결핍을드러낸다.“희망이외롭다.”의이짧은마지막한줄은오랫동안마음에남는다.
「혁명」역시단몇줄로집단심리와권력의구조를통렬하게풍자한다.“개한마리가짖는다./동네개모두따라짖는다./온세상모든개따라짖는다.(「혁명」부분)”에서는짧지만강한언어로사회의본질을질타한다.
시집제3부에서는자연과생태,인간사회가교차한다.「파도」는욕망과부패,미련과허영을바다에떠있는부유물로형상화하고,「눈사람」은태어남과사라짐의순환을통해생의본질을보여준다.「오골계」,「젖지않는땅」,「어물전戰」등에서는생태적상상력과인간사회에대한풍자가절묘하게결합한다.
거위털파카에서삐져나온
가슴털하나
하늘난다.
체온빼앗고
비상마름질속가두고
노스페이스,나이키,아이더,네파…
깃털로만든인조거위
온溫세상꿈꾸며
헛된꿈의비상이라니
혹한의안부도잊은채
한무리팔아겨울품따뜻하다.
―「거위의꿈」전문
위의시「거위의꿈」은이시집을대표하는작품가운데하나다.“거위털파카에서삐져나온/가슴털하나/하늘난다.”의이구절은한마리거위의털이누군가의겨울을따뜻하게만드는과정은존재의의미와희생의가치를상징적으로보여준다.
제4부에이르면시인의사유는더욱깊어진다.「길을잃다」,「관통」,「낙타와야크」,「말」등은종교와인간,존재와구원의문제를다룬다.
「길을잃다」의마지막구절은강렬하다.
절입구공사가한창이다.일주문짓겠다고일제강점기때송진채취로지울수없는상처안고도백년넘게살아남은소나무들뿌리째뽑아내고봄만개중인벚나무사정없이잘라낸다.시뻘건황토속드러나면서잠자던벌레들졸지에삶의터전을잃는다.세속의권위높이솟은일주문세워지고아스팔트깔리면자가용타고드나들스님들아,그길로부처가순례다녀가실까?
높고크고화려한교회앞에서예수가길을잃었듯이
―「길을잃다」전문
마지막부분의“높고크고화려한교회앞에서/예수가길을잃었듯이”의이구절을통해시인은종교적형식은남았지만본질은잃어버린시대에대해통렬한질문을던진다.
박중기의시는세상을향해큰목소리를내지않는다.대신생활의현장에서길어올린언어로우리를천천히설득한다.웃음속에철학을숨기고,풍자속에연민을담고,사물속에인간을비춘다.그의시는어렵지않지만가볍지않고,친근하지만가볍지않다.
『말의온도』는삶을오래통과해온시인의눈으로바라본세계의기록이다.몸에새겨진시간의흔적,관계속에서식어가는언어의체온,나이들며비로소보이는삶의진실들이담담하게펼쳐진다.
독자는시집을덮고난뒤비로소깨닫게된다.철학은멀리있는것이아니라우리곁의사소한것들속에숨어있으며,시는바로그숨은그림을찾아내는일이라는사실을비로소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