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두 발로 네 앞에 선다- 시와소금 시인선 194

이제야 두 발로 네 앞에 선다- 시와소금 시인선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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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영수

저자:이영수
이영수시인은충남예산출생으로2024년《시와소금》신인문학상당선으로등단했다.2024년《충남문학》신인상을수상했으며,현재충남문인협회,충남시인협회,서안시문학회회원으로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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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인에게있어서의기억은이미체험의결과로지각되어진것들이저장하는심리과정에서비롯되고있다.체험으로부터의기억이단순한정보를쌓아놓은듯한정보고(情報庫)의역할만을하는것이아니라체험자료를체계화하고이를분류함은물론정리함으로써상상력에의하여제공된새로운정보에따라낯선존재를명명(命名)하면서마침내새로운의미를가지게하는존재의재탄생을맞게해준다.임의로한작품을골라살펴보기로한다.

볼펜점만한매발톱꽃씨
쌀쌀맞은봄바람에흩어질까
옹기화분에흙을채웠다
자연이늘알아서하던일
콩나물한번길러보지않은내가자처한다

베란다에서핀야생화라
아이스크림퍼먹던달콤한숟가락으로
꽃씨를심는다
과연싹을틔우면알아는볼까
의문부호여러개를함께꽂아둔다

커다란하늘빛의빛깔과
무서운매발톱모양의꽃뿔
그만의독특한향기
올봄은아무래도
우주의가장아름다운비밀을풀기위한
꽃씨의시간이필요할것같다
―「꽃씨의시간」전문

위시작품은‘볼펜점만한매발톱꽃씨’로부터싹을틔우고‘커다란하늘빛의빛깔과/무서운매발톱모양의꽃뿔/그만의독특한향기’를보이기까지에필요한‘시간’을엿보여주고있다.화자는단순한‘시간’으로서의정보를해석하고그에의미를부여하는과정을말하고있는것이아니라,그야말로‘볼펜점만한매발톱꽃씨’,즉매발톱의씨앗을보면서‘쌀쌀맞은봄바람에흩어질까’라는애틋한정서가발현된다.이에따라「꽃씨의시간」은정서적으로구체적인모습을뚜렷이나타나게하다.애당초‘매발톱꽃씨’는화자에게있어서가냘프고약하기만한존재이다.화자의정서로는애가타는듯이깊고절실하면서도정답고알뜰한맛이있는존재이기도하다.그럼으로써화자로하여금‘쌀쌀맞은봄바람에흩어질까’염려되는마음으로‘옹기화분에흙을채’우도록해준다.그러나화자에게있어서어떠한의도적인행위라고할수가없다.이것은‘자연이늘알아서하던일’이요화자도이에따라자연의순환이치에순종하듯관습적으로이루어지는삶의과정임을굳이밝히고있다.그러한화자의행위는‘콩나물한번길러보지않은내가자처’하면서까지다분히「꽃씨의시간」에대한객관적인행위임을보여주는일이기도하다.

건강한치아를위해서라지만
사실은
빈속을무엇으로채웠는지
들키고싶지않아서
거품물고싹싹이를닦는다

간밤의무의식이저지른부끄러움과
목젖너머텁텁함까지
오글오글,퉤퉤뱉어버린다

허허로운잡담뒤
뒤끝으로남는혓바닥의꿉꿉함도
남김없이닦아낸다

찌꺼기없는사이
냄새풍기지않는말
벌레먹지않는하루를위해

아침
점심
저녁거르지않고이를닦는다
―「이를닦는다」전문

화자는‘건강한치아를위해서’이를닦는다는관습적상황앞에서적이당황하게된다.새롭고도낯설게인식되고있다.‘사실은/빈속을무엇으로채웠는지/들키고싶지않아서/거품물고싹싹이를닦는다’는것이다.이는곧화자가인지하고있는현실적상황의‘이닦기’이다.‘빈속을무엇으로채웠는지/들키고싶지않아서’이를닦고있는화자는‘거품물고싹싹이를닦는다’는것이다.이는현실적으로이를닦을때치약의사용으로자연스럽게거품이발생하는것이지만,‘빈속을무엇으로채웠는지/들키고싶지않아서’최선의노력을다하고있다는중의적인화자의심사를강화하고있는표현이다.그러나화자는이닦기로하여금현실적삶에서‘간밤의무의식이저지른부끄러움과/목젖너머텁텁함까지’,그리고‘허허로운잡담뒤/뒤끝으로남는혓바닥의꿉꿉함’도‘오글오글,퉤퉤뱉어버리다’거나‘남김없이닦아낸다’는것이다.서로선(善)을좋아하고악(惡)을싫어하는마음을시(詩)에서일으키고,예(禮)로공경하고사양할줄아는의지를세움은물론심미(審美)할줄아는정서를기르고자함으로써인격을완성하고자하는화자의의지가적절하게표현되어있다.특히화자는혼탁한세상에서의‘이’를닦는모습을‘오글오글,퉤퉤’등상징어(象徵語,symbolicword)를사용함으로써화자의함의된의지를더욱실감하게해준다.‘오글오글,퉤퉤’로보여주는상징어는이를닦을때곧잘들을수있는소리를흉내내는언어로시에생동감과첩어(疊語)의같은음의반복효과를극대화함으로써리듬감을불러일으켜시적분위기를더욱활기차게해준다.
화자는결국「이를닦는다」는행위를관습적인인식에서벗어나새로운인식의낯설게하기를통하여‘찌꺼기없는사이/냄새풍기지않는말/벌레먹지않는하루를위해//아침/점심/저녁거르지않고이를닦는다’고한다.이시작품은화자로하여금평소의바른삶을정립하고자하는교시적(敎示的)인면을함께보여주고있는것이기도하다.

앞이막막하다

거대한수조속같은아침
껌벅거리는신호등의
표정을살핀다

눈보다귀를앞세운사람들
녹슨자전거벨소리에
황급히길을나누며뒤를돌아본다

살피고돌아보며
걸어온숱한반성의시간

선명하지않은저들의미래는
안개주의보해제를손꼽아기다리고있다.
―「안개주의보」전문

암울한현실을눈앞에두고극복하고자하는데에있어서‘안개’만큼좋은시적소재는그다지많지않다.그러나아무리시의소재가훌륭하리만치좋다고하더라도소재를어떤의식에서관조함으로써이를현실적인체험의단계로삼아어떠한상상력으로어떻게표출하느냐에달려있다.화자는먼저현실의‘안개’앞에서‘막막하다’고말한다.그러한상황은‘거대한수조속같은아침/껌벅거리는신호등의/표정을살핀다’고한다.그뿐만이아니라‘눈보다귀를앞세운사람들’이‘녹슨자전거벨소리에/황급히길을나무며뒤를돌아보’는몸짓을본다.그야말로안개가삶의위험신호처럼짙게깔려있다.「안개주의보」가내려진상황에서‘선명하지않은저들의미래는/안개주의보해제를손꼽아기다리고있’는‘안개속밝은웃음소리’에서화자는현실극복의지를강하게엿보이고있다.

얼룩진흔적들은떼어내고
매끈하고부드러운새살로
살고싶다

서두르지않고
구불구불한가지끝까지
피우고싶다

멀리서도알아보는
커다란꽃숭어리로
돌아봐주길기다리고있다

백일이다되도록
피고지며
그대를몹시그리워하고있다
―「배롱나무」전문

모든시적대상을바라보는관계에서평소에늘바라는바소망[素望]이라면보편적인범주에의하여개별적인방향으로흐르는것을사실적으로인지할수밖에있다.그런가운데시로서의표현은보편적이요구체적인연관성으로부터완전히분리될수밖에없다.왜냐하면‘그리움’이라는정서는찰나적으로발현되는것이아니라잠재적으로그농도를점점축적하면서이루어지는것이기때문이다.그결과를살펴보면첫째연에서는배롱나무의성장하면서자라나는줄기의탈각(脫殼)을‘얼룩진흔적들은떼어내고/매끈하고부드러운새살로/살고싶다’는소망을시작으로,둘째연에서는배롱나무줄기의특성에따라‘서두르지않고/구불구불한가지끝까지/피우고싶다’하고,셋째연에서는배롱나무꽃을‘멀리서도알아보는/커다란꽃숭어리로/돌아봐주길기다리고’,마지막연에서배롱나무가꽃원추꽃차례(圓錐花序.panicle)를이루며아래로부터백일이라는오랫동안피어나는것처럼보이고있는것이지만,화자는이를마치‘백일이다되도록/피고지며/그대를몹시그리워하고있다’는것이다.따라서화자는배롱나무의생태적특성과화자의‘그리움’이라는정서적삶을화자와의관계로완전히동일화(同一化.identification)함으로써곡진하게이루어놓고있다.
이상에서살펴본바와같이화자의체험에서비롯된상상의범주가자아중심적으로결속된의도에적응되고있음을보여주고있다.이에따라새로이인지된존재의의미는더욱명확하게전달되고있으며,화자의상상력안에서구체적이고집중적으로모색되어진시상의궤적을따라일상적인삶의의미가무엇인가를확실하게보여주고있다.
시는이미체험한사실로재현되는추상적인사물이나개념에상대하여그것을상기시키거나연상시키는구체적인사물의의미가나타나는현실가운데에서거의무의식(無意識)의표상(表象)과사고(思考)로구현(具現)된다.‘어제일은몰라도/그옛날이야기는생생하니/젊은시절,좋은기억만있으면/이승이극락같으려나(「면회」부분)’에서보여주고있는화자의심경이라든가,‘단무지같았던긴하루/노곤한하품을씹어가며/서둘러내린곳은깊은지하’에서‘날마다힘겹게밟고오르는/가파른세상/탈피한오늘이불빛을향해나풀거리며간다(「탈피」부분)’는데에서발견된자아의식의발현은소재에의하여생기기이전에이미이루어진상상속에숨겨져있는것이알게모르게밖으로드러나게된,이른바현실속의또다른현실모습이라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