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량의시집『오래된집을읽다』에는오래된것들이많이등장한다.작은밭뙈기,볏짚으로만든새끼줄,어머니의잠든모습,연필한자루,오래된집과빈집,폐선역과나무,그리고오래된기억들이다.그러나이시집에서오래되었다는것은낡았다는뜻만은아니다.오래된것일수록그안에는시간이많이들어있고,시간이많이들어있는것일수록사람의삶을오래품고있기때문이다.
시인은시집의머리말에서자신의이름에담긴뜻을이야기한다.할아버지는‘으뜸으로착하게살라’는뜻에서이름을지어주었다고한다.그리고자신은그이름값을하며“무지어리석게바보처럼”살아왔다고말한다.이어38년동안지프차를몰면서앞만보고달렸고,뒤늦게돌아보니특별히이룬것이없었다고고백한다.이제야시를향해달려야겠다고말하는대목은이시집을이해하는중요한출발점이다.
그래서『오래된집을읽다』는어쩌면뒤늦게돌아본삶의기록이다.지나온시간을다시바라보고그안에서미처알아보지못했던사람과사물의의미를발견한다.그때아버지의밭뙈기는단순한농토가아니고,어머니의잠은단순한잠이아니며,연필한자루는한사람의성장사가된다.오래된집은허물어질건물이아니라한사람의삶을품었던기억의집이된다.
그러한시선이가장또렷하게드러나는작품이「아버지밭뙈기」다.
야트막한
푸른언덕어디쯤
할아버지가물려주신
아버지작은밭뙈기하나
식구는늘어나도
밭뙈기는작고작아그대로
동네에서장골소리듣던아버지
밭뙈기에온힘을쏟아넣어
해마다밭고랑을늘여
이것저것심어보지만
양식은언제나그밭에그만큼
뾰족한수가없네
입은자꾸늘어나고
아버지밭뙈기는그대로
60년세월
아버지이마는
밭고랑만늘어깊이패인
한평밭뙈기
―「아버지밭뙈기」전문
할아버지에게물려받은작은밭한평.식구는늘어나는데밭은그대로이고,아버지는해마다밭고랑을늘이며온힘을쏟는다.그러나양식은언제나그밭이내어주는만큼일뿐이다.결국60년의세월이흐른뒤아버지의이마에는밭고랑처럼깊은주름이패인다.
작은밭하나를통해한가족의가난과아버지의노동,그리고한시대의삶이고스란히드러난다.여기서중요한것은가난을특별히비극적으로포장하지않는다는점이다.밭은작고식구는많으며아버지는늙어간다.시인은그사실을담담하게바라본다.그래서오히려마지막의‘한평밭뙈기’가오래마음에남는다.땅의크기는작지만그안에들어있는아버지의세월은결코작지않다.
가족을바라보는시선은「누에치는엄마」에서더욱절절해진다.
못난누에때문에
얼마나가슴이탔을까?
덜컥쓰러져
중환자실에서종일
잠만자고있는엄마
열흘,보름잠만자고있다
평생비단실크옷한벌
입어보지못하고
남들이입다가벗어두고간
헐렁한옷걸치고
팔에목에링걸줄줄이꽂고
잠만자고있다
―「누에치는엄마」부분
아프거나외롭거나괴로울때마다잠만자던화자는어머니가건네는밥한끼의말조차받아들이지못한다.그리고시간이흘러이번에는중환자실에누워있는어머니가잠에서깨어나지못한다.“엄마,그만자고어서일어나!/나,배고파!”라는마지막구절의외침은단순한배고픔이아니다.평생자신을먹여살린어머니에게이제야건네는뒤늦은사랑의말이다.
이시에서특히인상적인것은어머니와누에를겹쳐놓은발상이다.평생비단을만들어내지만정작자신은비단옷한벌입어보지못한누에처럼,어머니역시평생자식을위해자신의삶을내어주었다.시인은그사실을설명하지않고누에와어머니의모습을포개놓는다.그래서어머니의생애가한층쓸쓸하고도애틋하게다가온다.
생애푸른잎하나없는
연약한나무한그루
한아이의작은손에쥐어
첫발자국을뗐지
(중략)
아이가매일쓰는일기는
푸른생각한자루심는일
이제어른이된아이는
추억한다함께했던
작은나무한그루가
몽땅인생이되기까지를
―「연필을추억한다」부분
생애푸른잎하나없는연약한나무한그루가아이의손에쥐어지고,아이가자라나는동안연필은점점작아진다.아이가커가는만큼연필은닳아없어지고,그과정에서아이의가슴에는생각과기억이쌓인다.결국작은나무한그루가“몽땅인생”이된다.연필하나가인생이된다는발상은소박하지만오래남는다.무엇인가를쓰기위해깎이고짧아지는연필과성장하기위해시간을통과하는아이의모습이자연스럽게포개진다.이작품에서사물은기억의저장소다.사라져가는것은없어지는것이아니라사람의안쪽으로들어가다른모습으로살아남는다.
그러한생각은시집의표제작「오래된집을읽다」에서더욱깊어진다.
족히한세기는살았을빈집
그러나아직도쓸모있는집
아버지집
적요가마당에죽치고있으니
키작은꽃나무몇그루
계절을읽어주며응대한다
(중략)
주인도살지않는유리창을
반짝바짝닦고있다
곧재개발로
빈집은하나둘허물어질터
로켓같은아파트가솟구쳐
서로먼저우주로날아가겠다고
줄을서서기다리고있겠지
―「오래된집을읽다」부분
한세기를살았을법한빈집은이제재개발로허물어질운명에놓여있다.그러나집은아직도계절을읽고,햇빛은개밥그릇과유리창을닦는다.곧그자리에로켓같은아파트가들어서고,서로먼저우주로날아가겠다고줄을설것이다.
오래된집과새아파트의대비는단순한개발과보존의문제를넘어선다.집은사람이떠나면서비어있지만그곳에살았던시간까지사라지는것은아니다.햇빛과꽃나무와빈마당이그집의지난시간을계속기억하고있다.결국‘집을읽는다’는것은건물을읽는일이아니라그집을거쳐간사람들의시간을읽는일이다.
시집의후반으로갈수록시인의시선은개인의기억에서우리가살아가는현실로넓어진다.부산온천동의풍경과재개발,빈집과세컨드하우스,종교시설과부동산,도시의욕망이등장한다.이때시인의언어에는익살과풍자가살아난다.
시집속빈집에는사람이떠난뒤에도꽃이피고,나무에는새들의집이생기며,폐선역에는기차대신파도소리가남는다.이모가떠난빈집에는발자국대신풀이무성하게자란다.사람이사라진자리에다른생명이들어오는것이다.사라짐은완전한끝이아니라새로운풍경의시작이된다.
『오래된집을읽다』는지나온삶을돌아보며그안에남아있는사람과사물의흔적을하나씩불러내는시집이다.아버지의작은밭뙈기에서시작해어머니의잠으로이어지고,연필한자루를거쳐오래된집에이르며,마침내부산의거리와오늘의세상으로나아간다.그과정에서시인은특별한영웅을찾지않는다.평범하게살아온부모와가족,이름없는사람들,빈집과나무와풀과오래된사물속에서삶의얼굴을발견한다.
그러므로이시집의제목인‘오래된집’은특정한한채의집만을가리키지않는다.그것은우리가살아온시간그자체다.한때는낡고쓸모없다고생각했던기억들이어느순간돌아보면가장소중한삶의유산이되어있다.
앞만보고달려온사람이뒤늦게돌아본자리에는특별한성공의기록대신작은밭하나와어머니의밥한끼,닳아버린연필한자루,사람이떠난빈집이남아있다.그런데시인은바로그곳에서자신의삶을다시발견한다.그것이『오래된집을읽다』가우리에게건네는가장따뜻한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