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양장본 Hardcover)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양장본 Hardcover)

$15.00
Description
“나이 들고 아픈 부모님과 함께 지나온 3년의 기록,
오래도록 남을 그 다정했던 순간들을 여기 새긴다.”
이 책은 미국에 사는 딸의 집을 찾아갔다가 갑작스레 낙상을 당한 이후 영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어느 팔십 대 후반 노부부와 갑작스레 병간호를 하게 된 딸이 함께한 마지막 순간들을 담은 에세이이다.

낯선 땅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 아버지와 평생 살던 곳을 떠나와 병간호를 하게 된 팔순의 어머니, 그리고 정신없이 닥친 병간호 생활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오십 대 딸이, 서로에게 ‘늙어간다는 것’ ‘죽는다는 것’ ‘죽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삶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그 삶에 필요한 해결책을 대화와 협력으로 찾아내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의 모습을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모든 늙고 병들고 약한 이들과 그들을 돌보고 있는 ‘동지들’에게 삶을 사랑과 행복으로 이끄는 태도를 제시한다.

어느 때보다 ‘늙음’과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누구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 이 도발적이고도 시의적절하며 눈물겨운 책은 이들의 아름다움이 가슴에 남아 우리의 삶을 평화롭게 변화시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도 노년이 찾아올 것이다. 곧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저자

강신주

(1961~)
강대건(1928~2018)과이춘산(1934~)의딸.
한국과이스라엘에서영문학을공부했고,프랑스에서여성학을공부했다.

목차

1부죽는다는것
중환자실에서맞이한결혼기념일ㆍ11
마지막신음소리ㆍ13
아버지,안녕ㆍ21

2부산다는것
누룽지의시간ㆍ27
선택1ㆍ30
선택2ㆍ37
아버지의몸ㆍ42
제임스와샌드라와미치코ㆍ48
나의손ㆍ54
우리들의뽀뽀식ㆍ57
우리는탱고를춘다ㆍ61
면도ㆍ67
함께걷기ㆍ72
엄마의걸음마ㆍ76
엄마,아버지보다엄마가먼저예요ㆍ81
아버지의기저귀ㆍ87
나는시간을훔친다ㆍ94
돈,현실적인문제ㆍ101
세상의모든요양보호사에게감사ㆍ107
셀레나의시낭송ㆍ
113큰인연ㆍ119
다시찾은이름ㆍ128

3부죽음과더불어살아간다는것
유품정리ㆍ135
나의장례식을너의결혼식처럼해다오ㆍ145
사진두장ㆍ152
90세노인이그리워한어머니ㆍ157
고마운사람ㆍ160
진정한위로ㆍ170
아버지에게ㆍ178
좋은아버지ㆍ183

에필로그
우리,만난적은없지만ㆍ189

출판사 서평

“우리는만나고,헤어지고,울고,살아간다.”
산다는것,죽는다는것,죽음과더불어살아간다는것

1.산다는것
어머니아버지가미국에다니러오셨다.가족나들이를다녀오는길에아버지가낙상을당하셨다.그후81세의이춘산과87세의강대건은영영한국으로돌아갈수없게되었다.3년후,아버지강대건은영면하셨다.

「아버지의기저귀」에서
어느날,나는아버지에게말을걸었다.
“아버지,많이힘드시죠?”
“…”
“아버지,잠깐눈좀떠주실래요?”
그러자아버지가꺼리는표정으로눈을떴다.그러나천장만올려다볼뿐,내눈은피했다.
“아버지,들어주세요.중요한이야기예요.아버지,제가아버지몸을만지고기저귀도갈고하는것에대해아버지가불편하신거알아요.전괜찮은데…그래서아버지랑이야기를나누고싶었어요.”
“…”
“전아버지를돌보는게좋아요.전의무감으로아버지를돌보는게아니에요.아버지가저를키워주고지켜주셨듯이그냥이제는제가엄마아버지를지켜드리고싶은것뿐이에요.전요,아버지랑같이있는지금이순간이무척행복해요.”
아버지는여전히천장을응시하고있었다.나는아버지의손을잡고몸을굽혀,아버지의눈을내려다보며천천히말했다.
“아버지,전아버지같이훌륭한분이제아버지여서기뻐요.아버지를돌봐드릴수있어서얼마나좋은데요.정말감사해요.그러니제발,제가아버지를잘돌봐드릴수있게마음을열어주세요.”
나의진심이전해진것일까,아버지의눈빛이흔들렸다.나는다시아버지와눈을맞추며미소를지었다.아버지는여전히말이없었다.그러나이번에는나의눈을피하지않았다.그러더니마침내,눈을감으며말했다.
“생큐.”
‘고맙다’라는말대신아버지가택하신한마디의이국어.나는아무말없이아버지의손을꼭잡았다.아버지가나를이해하셨음을느낄수있었다.

「우리는탱고를춘다」에서
아버지와나는서로를신뢰하며리듬을타는탱고파트너이다.면도할때,식사할때,목욕할때,아버지가편안해하는리듬을찾아내고그리듬을간병인들에게전달하는것또한나의임무이다.
‘탱고’덕에아버지얼굴이밝아지고있다.얼마전까지만해도,눈을꼭감고계셨다.딸을힘들게하는게괴로우셨으리라.그러나미리천천히설명해드리고아버지가할수있는동작을당신리듬으로하게하니,언젠가부터눈을뜨고적극적으로임하신다.아버지와나는변기에앉기,기저귀갈기,옷입기같은소소한일들을느린‘탱고’박자로해낸다.나는아버지를리드하고아버지는나를믿고따르며,우리는우리만의느리고행복한탱고를춘다.

「제임스와샌드라와미치코」에서
제임스,샌드라,미치코.아버지,엄마,나의별칭이다.밤마다우리는새로운사람들이된다.“제임스,기저귀갈시간입니다.오늘도수고하셨어요!”“샌드라,금발이멋있네요.근데풀어헤치니까‘미친샌드라’같아요.”“하하하하!”
이름을바꿔부르는순간,우리는모두다른사람이된다.‘제몸을가누지못하는남편/아버지’가아니고,‘남편수발드는아내/어머니’가아니고,‘아픈아버지와나이든어머니를돌보는힘든딸’이아니다.그무거운정의로부터모두자유로워진다.나는도움이필요한제임스와샌드라를도와주는조금덜늙은미치코가된다.우리는가족을벗어나친구로묶인다.우정이생겨난다.가벼워진다.

2.죽는다는것
12시부터2시사이,나는어둠속에서일어났다누웠다는반복했다.아버지의고통이커져가고있음을느낄수있었다.불안했고가슴이아팠다.
2시경,내내켜지못하고있던불을켰다.나는평소처럼몸을숙여아버지얼굴위로내얼굴을가져갔다.그런데“아버지”하고부르려던순간,얼어붙고말았다.천장을바라보는아버지의눈동자가인형의눈동자처럼크고새까맣게변해있었던것이다.죽기직전사람의눈동자가커진다는글을읽은기억이났다.
‘아,이게마지막이구나.’
최후의순간,길게는세시간,짧게는삼십분,아니마지막오분,그는전혀다른존재였다.그는온전히자신의‘죽음에집중하는한(존재적)인간’으로서의모습을보여주었다.그순간의그는나의아버지가아니었다.그는인간강대건이었다.그옆에서안절부절못하는나는그에게아무의미가없었다.죽음은우리모두가하나의‘인간’그자체가되는순간,인간의삶에서유일하게평등한순간이었다.

3.죽음과더불어살아간다는것
아버지가떠나시고한달이지났다.아직장례를치르지않았다.엄마,언니,나모두아버지가형식에연연하지않는분임을잘알고있었다.우리가심신을무리해장례를치르지않아도아버지는충분히이해하실것이었다.
우리는한마음으로12월중순에함께모여장례를치르기로했다.그때까지우리에겐슬픔도가누지못한채치러지는형식적인장례식대신,같이그리고홀로,천천히아버지를애도할수있는시간이주어졌다.당장장례식을치르진않았으나,우리의모든행동의목적은아버지였고모든행동의중심에아버지가있었다.아버지는떠났지만,그어느때보다도우리곁에있었다.우리는아버지와함께갔던바닷가에서산책을하고,아버지물건을정리하며아버지를추억했다.그렇게할수있어다행이었다.

4.우리,만난적은없지만
만난적은없지만이미이어져있는나의이웃들에게다가가고싶은마음에서나는이글을썼다.
내가치열한여정을지나오는동안글과사람이위로가되었듯이,나의글이지금묵묵히돌봄의삶을이어가고있는이들에게위로가되기를.묵묵히돌봄을받아들이고있는이들에게힘이되기를.우리모두가덜외롭기를.문득문득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