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주폭력적인방식으로
어머니의세계로부터추방되었다.”
누군가에게는불온할수있지만
반드시쓰여야만했던어머니에대한이야기
『태어나는말들』은서두를여는강렬한첫문장에서부터‘어머니’의존재를드러내며독자들에게앞으로펼쳐질이야기를경고한다.여기서말하는‘폭력적인방식’이란바로스스로자기의목숨을끊는것이었다.제아무리병없이천수를누리다가눈을감는다하더라도가족의죽음이란언제나깊은슬픔을몰고오기마련이기에,사랑하는가족이자신의선택으로세상을등졌을때남은유가족이느낄슬픔이란감히상상하기도어렵다.심지어나에게생명을준어머니의자살은삶을뿌리째흔드는재해와같은비극이다.
이처럼결코가벼운마음으로는가까이다가갈수없는이야기를『태어나는말들』의조소연작가는온전히부딪쳐가며독자들에게펼쳐놓는다.자살하기전어느날부터인가정신이허물어졌던어머니,그녀의외도,욕망,자식들에대한집착과결함까지모두기록해나간다.누군가에게는이토록적나라하게고인의치부를밝히는것에불편함을느낄수도있다.그러나조소연작가는말한다.
“그녀가자신의존재를모두걸고지키고자한비밀이었기에나는여기에그녀의이야기를하는것이이루말할수없이고통스럽다.나의말소리가어머니의영혼에게까지들린다면그영혼은나를휘감고통곡할것이다.그럼에도나는“엄마!나는말해야만해요!”라고외칠것이다.간통,불륜,외도라는단어로그녀에게죄의낙인을씌우고자함이아닌,그녀의욕망이어떤과정으로비틀리고왜곡되어갔는지,그것이어떻게그녀를죽음으로몰고갔는지를드러내야만한다.”
이책은사회적·도덕적잣대로어머니를재단하기위해서가아닌,한여성으로서의어머니를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이해하기위해쓰였다.그이해를바탕으로누군가의아내이자어머니로거의평생을살아온한여성을다시이세상에불러들이고자한것이다.
“내가부재하는당신을사랑하는유일한방법은당신의흔적과유해를낱낱이그러모아그형상을복원하는일이었다.”
깨진도자기조각들을하나하나맞춰붙이듯산산조각난삶의파편들을글로정리해이리저리맞춰보는이행위는육체로부터자유로워진어머니의넋을글이라는그릇에다시담는,말이라는신물(神物)을통한‘내림굿’이다.작가조소연은딸이자같은여성으로서문장하나하나에혼과신을갈아넣어이뒤늦은참회의위령제를주관한다.
“어머니의목숨을담보로지금의내가살아있다.
그러므로나는치욕에무너지는사람이되어서는안된다.”
‘1부애도와기억’이어머니에대한회고라면,‘2부여성은왜아픈가’는어머니가살아온삶을이해하게되면서작가조소연이자신의삶을사랑하게되는과정을담았다.그녀는어머니가본인의모든것을희생해키워낸존재가자신임을받아들인다.어머니의생전에는수없이싸우고,불화하며,때때로그녀의세련되지못한욕망을부끄러워하기도했지만,그런부끄러움마저도어머니가자신을‘배운사람’으로만들었기때문임을깨닫는다.
한사람의생애에과연어머니만큼깊이엮여있는존재가또있을까?어머니에대해쓴이책은필연적으로작가조소연의자전적에세이이기도하다.어머니가여성으로서의욕망과욕구를버리고,치욕과삶의풍파를잊고가장몰입했던것이바로자식들이기때문이다.조소연작가는어머니에대하여그리고그런어머니의슬하에서자란자신에대하여써내려간다.서로를할퀴고원망하는가족,누구에게도쉽게털어놓지못할트라우마와상처,인간적인결함과치부까지를낱낱이밝히는이글쓰기는결국아무의눈치도보지않고자기자신을바라볼수있는장치가된다.그결과조소연작가는마침내오랫동안불화해왔던자신의삶과화해하며,진정한자유와내면의평화를찾아앞으로나아가기시작한다.
‘3부우리의고통이언어가될때’에서작가의시선은어머니와나에게서더나아가아무도귀기울여들어주지않던약자들의아픔으로확장된다.제주도로이사와해녀들의이야기로부터제주4·3사건이라는역사적비극에주목하고,피해자들의상처에공명하며거기에자신의목소리를더해그들과함께노래하고말한다.
마치기나긴터널을통과하는것처럼깊은슬픔과비탄의구렁텅이에빠져있던조소연작가의목소리는점차생기와삶에대한의지로넘쳐흐른다.
“살아내겠습니다.당신을사랑하듯,소멸하는나의생과모든순간들을.”
어머니를복원하며스스로삶을수렁으로부터건져낸이‘자기해방의글쓰기’는읽는이에게카타르시스를느끼게할만큼의감동을품고있다.영원처럼계속될것만같은슬픔에서회복해모든순간을사랑하겠노라결심하는조소연작가의변화는각자저마다의슬픔을지닌사람들에게크나큰위로가된다.지금느끼고있을슬픔은결코영원하지않다.우리또한다시삶을사랑할수있는순간이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