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구우니 내가 사라졌다

당신을 구우니 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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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죽는 방식으로만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어떤 것들은 죽는 방식으로만 살아 있었다.’ 김나현의 시집 《당신을 구우니 내가 사라졌다》를 관통하는 이 서늘한 문장은 역설적으로 이 시집이 지독하리만치 ‘삶’의 본질에 밀착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시인은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선명해지는 존재들, 그리고 소멸한 뒤에야 손끝에 잡히는 진실의 잔해들을 향해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헌사를 보낸다.

시집은 감정의 흐름에 따라 네 개의 부로 나뉜다. 〈1부 무해한 애도〉는 상실을 치유나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그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2부 이름 없는 몸〉은 고통과 상실이 언어로 규정되기 전, 날것 그대로 몸에 밀려오는 순간을 포착한다. 〈3부 묻히고도 남은 밤〉에서는 억눌린 감정이 밤마다 떠오르는 과정을, 〈4부 몸의 말들〉에서는 언어와 신체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며 상처가 기억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그린다.
저자

김나현

삶의어두운경계들을이해하고싶어상담을전공했고,존재가버티는이유를묻다철학으로갔다.늘사라짐을마주하면서도무엇이우리를붙잡아두는가를생각해왔다.그리고그틈에서다시태어나는문장을지켜본다.

목차

1부무해한애도

소멸을작은새가말한다면|침잠지에서서|무심한계절|말라야했는데|집거미|피멍|작은눈하나가방안을걸어갔다|비등점|곤지|정적의유성|잘라내야비로소|잠복|젖은방석|한조각|너의잔여|당신을구우니내가사라졌다|척의곡선|무해한애도

2부이름없는몸

엔딩에서|심장을고치는법|겨울의쥐,침묵|기억을먹다|()는|변두리옷가게들|붉은선|소실|무음의새야|허물|침묵의주름|무명|흰여우가눈을파낸자리에,|말간절망하나를얹고갔다

3부묻히고도남은밤

바다에는마리아가없다|씨눈|온도의부재|이밤이|이밤이-두번째장면|유수|조금의생|핏줄의문장|흉곽|그미완에게|노란태블릿|기억에동그라미를치다|비명을삼킨허기

4부몸의말들

서서히꺼질때까지|말아래말처럼|영등포역에서흩어진팔|버팀목|구토|구토-두번째입|구토-세번째입|해묵은입술|마린스키극장에서|매미는뱉기보다|밀랍의몸|파편으로도|흑백은어둠을잃지않는다|고통의회랑|잔교

출판사 서평

눅눅한방석에앉아시린감각을견디고
쉰내나는수건을버리지못해다시개켜두는일

시집《당신을구우니내가사라졌다》는우리가흔히아는슬픔의문법을완전히뒤집는다.시인에게애도는단순히흘려보내는눈물이아니라,가마안에서800도의고열을견뎌내는‘굽기’의과정이다.초벌도되지않은어리광과설익은감정들이불길속에서재가되어타버리고나면,남는것은오직무결해진뼛가루와빈껍질뿐이다.시인은그텅빈자리에서‘나를빚기시작했다’고선언한다.

시인의언어는관념의허공을떠돌지않고철저하게‘몸’의바닥으로침잠한다.기억은추상적으로박제되지않는다.두어번문질러도지워지지않는거봉의검보라색물처럼피부에착색된통증으로,혹은허벅지안쪽에붉게번진피멍으로구체화된다.말이란부서진자리에가장늦게차오르는숨결과도같다.눅눅한방석에앉아시린감각을견디고,쉰내나는인생의수건을차마버리지못해다시개켜두는행위는고통이란흘러가는바람이아니라는점을여실히드러낸다.

결국이시집은‘나’를찾아가는처절한여정의기록이다.‘당신을구우니내가사라졌다’는고백은절망을말하지않는다.오히려누군가에게의존하거나얽매여있던과거의자아를불태워없앴다는해방선언이다.비등점을넘어모든것이증발한자리,그고요한침묵위에서시인은혼자가라앉는법을배운다.만약사라진자리에남는것이그저허무뿐이라고느낀다면,이시집과함께가마속으로뛰어들기를권한다.전부를불사르고난끝에투명해진자신을발견하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