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징비록 (국보 132로 오리지널 초판본 패브릭 표지디자인)

초판본 징비록 (국보 132로 오리지널 초판본 패브릭 표지디자인)

$16.80
Description
영화 〈한산〉〈명량〉〈노량〉의 원작 모티브!
서애 류성룡이 “피를 토하며 쓴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록”

국보 132호 오리지널 표지를 되살린 패브릭 양장 에디션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
임진왜란 7년, 피와 눈물로 쓴 통렬한 반성의 기록!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면서 전시내각의 총책임자로 나라를 이끌었다. 이후 벼슬에서 물러난 그는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기 위해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집필했다. 《징비록》은 최고의 전쟁 기록물로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의 총책임자로서 여러 공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급박했던 전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서출판 더스토리는 독자들이 《징비록》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번역하였다. 나라와 백성을 전란 속으로 밀어 넣은 위정자의 통렬한 반성은 물론, 후손들이 임진왜란 같은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류성룡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의 초판본 표지를 사용한 고급스러운 패브릭 양장본으로 소장 가치를 높였다.

저자

류성룡

(1542-1607)
조선중기의관료,인문학자,의학자,저술가이다.경상도의성의외가에서태어났으며,간성군수유작의손자이고황해도관찰사유중영의차남이다.이황의문하에서조목,김성일과동문수학했고성리학에정통하였다.과거를통해관료로등용되어동인으로활동했으나,정여립의난과기축옥사를계기로강경파인이산해,정인홍등과결별하고남인을형성하였다.임진왜란이발발하기직전이순신과원균을각각전라도와경상도의방어책임자로천거하였다.죽을때까지청렴하고정직한삶을살아‘조선의5대명재상’가운데한사람으로꼽히며,어려서부터이순신과같은동네에서함께자라서이후이순신의후견인역할을하였다.

목차

그림으로보는징비록
류성룡이직접쓴서문

징비록1권
1장전란전일본과의관계
2장우리의국방태세와이순신의기용
3장임진왜란의발발과서전(緖戰)의붕괴
4장국왕의피란과구원군의요청
5장평양성전투
6장이순신과조선수군
7장민중의봉기,의병

징비록2권
8장평양수복
9장전선의교착
10장진주성
11장정유재란발발
12장이순신의투옥과수군의전멸
13장이순신복귀
14장마지막전쟁,노량
15장구국의영웅,이순신

녹후잡기

출판사 서평

나는이나라가하루만이라도제대로되었으면한다!

1592년4월13일,18만의일본대군이부산동래로들이닥치면서임진왜란7년의긴전쟁이시작되었다.풍부한실전경험과조총으로무장한일본군은순식간에한양까지진군했고,선조는전란을수습하고백성을보호하기보다도망치는데급급했다.백성들은임금이한양을버리고몰래도망쳤다는사실에분노하여경복궁을불태웠고,의주까지도망친선조는명나라로망명하려고했다.그러자류성룡은‘조선땅을벗어나는순간,조선은더이상우리의땅이아니’라며강력하게반대했고,“나는이나라가하루만이라도제대로되었으면한다”라고통탄하면서무능하고질투심많은군주를대신하여전란을극복하기위해힘썼다.임진왜란당시좌의정과병조판서에이어영의정을역임했던류성룡은임진왜란이후전란에대한반성과앞날에대한경계,충고를담아《징비록》을남겼다.하지만조선은임진왜란과《징비록》에서어떤교훈도얻지못한채병자호란을비롯하여일제식민지등참혹한전쟁과침략을경험해야했다.그리고현재까지도복잡한국제정세속에서위태로운길을가는우리에게《징비록》이던지는메시지는결코가볍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