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늦기전에우리는
이간절한편지에답장을보내야해요
안녕하세요.긴지느러미들쇠고래예요.
우리는매년페로제도를지나갈때마다끔찍한비명소리를들어요.
그곳에는살려달라고외치는친구들의울음소리로가득해요.
비명소리가그치고나면붉게물든바다를멀리서바라봐요.
슬픔속에서죽어간친구들을애도할거예요.
하지만인간을증오하지는않겠어요.
우리고래는증오가나쁘다는걸아니까요.
매년덴마크령페로제도앞바다에서는그라인다드랍(Grindadrap)이라는고래사냥축제가열립니다.축제를치르고자이지역사람들은모터보트를타고바다로나가고래를좁고얕은만으로몰아간다음,밧줄로끌어내전용도구로도살하죠.이때문에2021년9월에만돌고래1,428마리가살해되었습니다.
그라인다드랍은과거,매우척박한페로제도에서초기정착민들이살아남고자고래를사냥한데에서비롯했습니다.하지만지금페로제도의주요산업은조선업과관광업,어업이며,덴마크정부에서막대한지원금도받기에더이상‘생존’때문에고래를잡지않아도됩니다.그런데도해마다이지역사람들은고래사냥을‘전통축제’라는이름으로이어갑니다.
무자비하게살해되면서도고래는사람을공격하지않습니다.사람보다몸집이크기에마음만먹으면반격할수있을텐데말이죠.심지어고래는감정을담당하는대뇌변연계가인간보다큽니다.인간보다훨씬감정적으로행동할수도있으나,그러기는커녕오히려감정을더욱잘절제합니다.
긴지느러미들쇠고래가보낸편지를읽으면그래서숙연해지는동시에부끄러워집니다.인간은과거에는생존이라는명목으로,이제는전통(이라쓰고유희라읽어야할지도모르겠습니다)이라는명분을내세워끊임없이고래를죽여대는데,고래는고통을인내하는초월자처럼담담하게죽음을받아들입니다.이런고래앞에서어떻게인간을‘만물의영장’이라할수있을까요?
이책은사람때문에사라졌거나사라질위기에처한전세계동물가운데,멸종위기종의현실을잘알릴수있는103종의이야기를편지형식으로담아냈습니다.
앞에서소개한긴지느러미들쇠고래부터‘세상에서가장많이밀매되는포유동물’이라는슬픈수식어가붙은사바나천산갑,1억년전지구에나타나여러차례대멸종에서도살아남았지만인류세기후위기로말미암은멸종은피할수없을지도모르는푸른바다거북,인간의탐욕으로절멸한데다인간의무지로멸종이후‘어리석은새’라는오명까지뒤집어쓴도도까지.
그런데이들이보낸편지와,이들에게페이퍼아트로숨을불어넣어준저자가덧붙인추신을읽다보면멸종위기동물이아니라우리인간의모습이더욱또렷해집니다.이토록다양하고,독특하고,아름답고,지적이고,무해하며,온화한존재에게우리는어떻게그리일관되게잔혹하거나무심할수있었을까요?
그나마다행스러운점은아직우리에게는멸종위기종이보낸간절한편지에답장을보낼만한힘이있다는겁니다.인간도지구생태계의일원인동물의한종이라는점을되새기며각자자리에서실천할수있는일(아무리소소한것일지라도)을꾸준히해나간다면,그렇게쌓인답장하나하나가모여한종이라도더많은동물을멸종위기에서구할수있겠지요.
다만,답장을보낼수있는기한이그리길지는않아보입니다.어쩌면마지막일지도모를편지를받아든지금이순간부터,우리함께서툴더라도한자한자정성을들여써나갈수있기를.
추천사
모든생물은결국멸종한다.그게자연이다.
하지만점점자연스럽지못하게멸종하는생명이많아진다.인간때문이다.
그러나『편지가왔어요』는인간을꾸짖기보다변화를촉구한다.
인간은동물을멸종시키기도하지만구출하고복원하기도하니까.
멸종위기동물이우리에게편지를보냈다.자,이제우리는어떤답장을보내야할까?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