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리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는다 | 반양장)

밥상을 차리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는다 | 반양장)

$19.00
Description
지금도 어디에선가 혼자서 밥을 먹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듯한 쌀밥 한술과 곰취의 마음을 바친다.
금빛 햇살이 봄을 다시 초대한다. 농부에게 있어 봄은 다시 시작하는 계절, 다시 태어남의 계절, 사계의 순환이 시초로 되돌아오는 계절. 그래서 서툴고 어설프지만, 몸과 마음이 분주하게 떠오르는 계절이다. 조금은 바쁜 계절이지만, 자연은 언제나 그렇듯 어리석은 나에게 그저 부드러운 침묵의 언어와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린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내려앉은 나무들의 마른 가지에는 연한 연둣빛들이 방울방울 다시 매달린다.

마음을 치유하며, 글을 쓰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다 보니, 그동안 수확한 과실을 제대로 맛본 적이 없었다. 입안에 가져가 보지 못했던 자연에서 내어주는 건강함을 이제는 조금은 더 느긋하게 음미하며, 삶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포용과 해독, 그리고 사랑의 용기라는 꽃말을 가진 호박잎에 차마 하지 못한 침묵의 말들을 쓰며, 맛과 말을 건네고 삼켜보고 싶다. 비록 소소한 위로들뿐일지라도 그것조차 없는 삶보다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이 내 안에 가득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가차 없는 삶을 이루는 건, 소소한 위로들이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있기에 봄은 황홀하게 다가온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결핍이 있기에 채움이 있다. 사랑이 있기에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렵지가 않다. 미소할지라도 곁을 내어주던 흔적들이 있기에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누군가의 다행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비루한 글을 쓰며, 볼품없는 밥상 하나 차리는 것밖에는 없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설픈 위로의 말은 차마 하지 않겠다. 그저 힘이 들면, 잠시 다녀가길 바란다. 초라한 밥상 하나에 다행스러운 마음 하나 얹어 내어주며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저자

강현욱

저자:강현욱
낮에는일을하고,밤에는책을읽으며글을쓰는40대남성.휴일에는시골에서나무를가꾸며산책하는일을좋아함.40대의늦은나이에도‘시골의글쓰는책방할아버지’라는꿈이생겨누군가의마음을보듬고,삶을돌아볼수있는순수문학을하고싶어‘문예창작학과’에입학해현재글쓰기를배우는학생이기도함.
이외의저서로는동네책방을답사하며쓴「살짜쿵책방러」가있음.

이메일주소|onjung80@naver.com
브런치스토리주소|brunch.co.kr/@kanghyunwook(작가명)시골서재

목차

Prologue
호박잎에싼,차마하지못한말들



01.당신잘못이아니라고,쓰고싶었다_냉이된장국
02.불안이말을걸어올때_양념더덕구이
03.우리,괴물이되지는말아요_곤드레무밥
04.술은익어가고,매화꽃은흐드러지고_매실담금주
05.당신의마음에안부를묻는다_들깨쑥된장국
06.망각의두려움이몰려올때_케일머위강된장쌈밥
07.때로는느리게,가끔은멈추고서_깻잎토마토스파게티
08.심장이찢긴어느날_오이냉국과오이소박이
09.모든밤은당신의낮을응원한다_옥수수밥과된장찌개
10.발닿는곳에삶은다시피고_김치찌개와호박잎쌈
11.헤아릴수없이소중한당신_둥근호박들깨칼국수
12.부지런히겨울을입는다_배추겉절이와수육
13.지금도괜찮으니,살아가요_쌀떡국
14.별은부단히도밤하늘을밝힌다_소고기우거짓국
15.새벽은아직오지않았다_소고기미역국
16.억척스레너를지어먹는다_해물부추전
17.어디선가혼자밥을먹고있을당신들에게_곰취무침
18.나를울게하소서_딸기잼과비빔국수
19.실패한사랑은없습니다_목살장작구이


Epilogue

출판사 서평

호박잎에싼,차마하지못한말들

‘나는먹고,쓰고,삶을살았다.’
「나의노트중.」

연둣빛이연일따사롭다.찬연한금빛햇살이봄을다시초대한다.농부에게있어봄은다시시작하는계절,다시태어남의계절,사계의순환이시초로되돌아오는계절.그래서서툴고어설프지만,몸과마음이분주하게떠오르는계절이다.조금은바쁜계절이지만,자연은언제나그렇듯어리석은나에게그저부드러운침묵의언어와온화한표정으로나를기다린다.겨울이지나고봄이내려앉은나무들의마른가지에는순한연둣빛들이방울방울다시매달린다.잘린그루터기에는자그마한새순이돋아나아무것도없는듯한허공을향해손을뻗는다.맑은물방울이희석된,풀냄새가득한공기를차분하게마시고천천히내어쉰다.나는살아있고,살아있음을느낀다.검푸른호수를떠다니는봄빛윤슬이어떤잠언처럼나에게다가온다.기억,그리움,인연,영원...투명한언어들이반짝이며나에게말을걸어오는것만같다.
마침내계절은더나은방향으로다시이동하기시작했다.

나는해가바뀌고서좋아하는복숭아나무를조금더심어보려읍내에있는농원에다녀왔다.작년에는가꿔보지못한도톰한호박씨앗도잘추려서흙으로돌려보냈으니,올해는보슬보슬한호박잎에하얀김이실핏줄처럼일어서는쌀밥한술얹어,그립던누군가와마주앉아웃을수있기를고대해보기도한다.여전히차갑지만신선한바람을맞으며시골길을걷는일도빠뜨리지않는다.시골길을걷는일은나를어떠한얼룩도없이맑아지게하는듯하다.한밤이길을지운듯한들녘을걷는일은이젠나에게는없어서는안되는일이되었다.내가걷는발아래에지워진길을다시놓아주듯까만밤하늘의잔별들이무수히도불을밝힌다.별빛들이나의지나온계절을말해주는것만같다.반짝거리며나를채워준,앞으로도나를채워줄기억들.차마말로다할수없어별이된마음들.그리고이를눌러담아쓴애틋한문장들.
속절없이흘러가는세월이그리야속하지만은않다.

낮과밤의온도는여전히서로를멀리두고서바라본다.한해를시작하는시기에는일터에도많은일이산재한다.일터의일들과시골의일,그리고책읽기와글쓰기.나를맡겨야하는수많은일들에결국나는몸살을앓고야말았다.고단한몸과지친마음을달래보려,뒷산에서얻어온봄향기가득한쑥을넣어말간소고기죽을끓여먹어야했다.매섭고황막했던나의속뜰이시골의봄내음으로채워지고,사나운불길이사그라들듯몸살은그렇게누그러졌다.텅빈혈관과흐물거리는근육과연약한뼈를지나마음까지도무해한것들로채워지는것만같았다.몸안가득번져가는순수한자연의향기는사랑하는사람의살갗처럼언제나따듯하고부드럽다.
건너편에사시는할아버지께서자연의향기가가득한두릅을데쳐가져다주신다.‘몸은좀괜찮나?’두릅새순은자식도안주는거라며,의기양양해하신다.
고마운일이다.참으로고마운일이다.별것도아닌일이라고누군가는생각할수도있겠지만,결국죽음앞에서도떠올릴수있는일들은아마도이런자그마한기억들뿐일것이다.사람이사람에게그저안부를묻는것뿐이지만,겨우그거하나뿐이지만,주저앉아웅크리고있는누군가를일으켜세우는일은사실그거하나면충분한게아닐까.짐작조차할수없는누군가의마음을말없이데워주는일도,허기를달래는밥한끼내어주는일과다르지않은듯하다.불현듯,내시절의무렵에걸쳐져있던많은이들의얼굴이스쳐지나간다.그순간나는그들의표정을하늘에그리며생각에잠긴다.

‘조금은편안해질수있는말을해주고도싶었던가.
당신편이라는듯조건없는미소를보여주고도싶었던가.
그저괜찮다는듯안아주고도싶었던가.’

툭,하고처절하게떨어져내린검붉은동백꽃처럼차마하지못한말들이고개를치들고서나를빤히올려다본다.차마하지못한말들,용기가없어꺼내다가말고,다시깊숙한곳으로넣어버린마음들.더늦기전에,더멀어지기전에,검붉은동백꽃처럼나또한기어이떨어져내리겠다는어떤다짐같은것이밀려온다.

시골에서자연이너그럽게내어주는위로와기쁨의언어들이나를존립하게했고,이어가는문장들을따라앞을바라보며보행할수있었다.마음안의소롯한길을걸어보게하는건자연이었고,나를인도하는건글이었다.나는그안에서글쓰는책방할아버지라는꿈을품고서,차근차근자명한법칙처럼느리지만삶을걸어간다.떨어져내리더라도다시굳건하게꽃을피울수있을듯한단단한확신이그만큼내가딛고서있는희망이라는것을굳건하게해주는것만같다.그래서인지거친손안에꼭쥔것들을나무그릇에가득담아,이젠누군가에게보여주고전하고도싶어진다.
나도아팠으며당신도아프지만,내가그러했듯당신도이젠괜찮다고.

마음을치유하며,글을쓰면서지나온삶을돌아보다보니,그동안수확한과실을제대로맛본적이없었다.짙푸른입술로가져가보지못했던자연에서내어주는건강함을이제는조금은더느긋하게음미하며,삶을떠올려볼수있을것도같다.포용과해독,그리고사랑의용기라는꽃말을가진호박잎에차마하지못한침묵의말들을쓰며,맛과말을건네고삼켜보고싶다.비록소소한위로들뿐일지라도그것조차없는삶보다는좀더나은방향으로흘러갈것이라는믿음이내안에가득하다.
아니,어쩌면우리의가차없는삶을이루는건,소소한위로들이전부인지도모르겠다.
다시일어선다.참혹했던겨울을묵묵하게견뎌준파릇한시금치가무척이나잘자랐기에,마을할아버지들께조금나누어드리고,시금치를참기름에무쳐본다.시금치를무치면서금이간나와누군가의마음을떠올리며,울음을삼킬지도모르겠다.그저할수있는일이먹고,쓰며,살아가는일들뿐이지만,누군가를위해,또나를위해문장을지으며,따뜻한밥을안치는일은어쩌면사랑의모습중하나일것이다.
이것외에는사랑할수있는더나은방법을,사실지금도알지못한다.

하얀달빛이시골을은빛으로물들이고,투명한바람이쓰다듬는호수의잔물결은고요하다.밥짓는냄새가마을여기저기에고요히누웠다.평온함에냄새가있다면아마도이를닮았을것이다.차마말로표현하지못한나의자그마한마음.그마음을담아소박하지만,밥상을차린다.

항상,강건하길바란다는수줍은그마음이당신에게가닿을수있기를소망한다.

2025년03일01일
시골서재에서저자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