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보고달려온사람들은어느날문득자신에게묻게된다.열심히일했고가족과관계를지키기위해애썼으며사회가요구하는역할도성실하게감당했는데,왜마음한편에는여전히허전함과불안이남아있는지,지나온선택이맞았는지,남은삶도지금처럼살아도되는지쉽게답하지못한다.이러한흔들림은삶이잘못되었다는증거가아니라,그동안책임과타인의기준에밀려바라보지못했던자신을비로소돌아보기시작했다는신호일수있다.
키르케고르와세네카,몽테뉴,니체,장자,소크라테스,쇼펜하우어,에리히프롬,한나아렌트,카뮈를비롯한철학자들의생각은후회와관계,일과나이듦,소유와행복,선택과죽음처럼현실적인고민으로이어진다.선택하지않은삶이더좋아보이는이유를들여다보고,지나간일을오늘까지끌고와자신을벌하지않는법을배우며,가까운관계일수록필요한거리와사랑만으로대신책임질수없는타인의삶을생각하게한다.직함과성과가사라진뒤에도남는자신의가치를묻고,젊음이지나갔다고삶의가능성까지끝나는것은아니라는사실도일깨운다.
퇴근길지하철과회사의회의실,가족과마주앉은식탁,병원에서받아든건강검진결과,오랫동안미뤄둔연락과달라진거울속얼굴처럼익숙한장면에서이야기는시작된다.철학자의답을외우게하기보다자신이무엇을두려워하는지,누구의기대를자신의욕망으로착각하고있는지,더많은것을얻으려는동안이미가진소중한것을놓치고있지는않은지자연스럽게돌아보게한다.
마흔이후의삶을다시세운다는것은모든책임을버리거나어느날갑자기다른사람이되는일이아니다.바꿀수없는것과그만다투고,자신을소모시키는관계에서조금물러서며,아무성과도남기지않는시간에도자신의존재를인정하고,오늘할수있는작은선택하나를시작하는일이다.
지나온삶은실패의기록이아니다.그때의자신이알수있었던만큼판단하고감당할수있었던방식으로살아낸시간이다.과거를다시쓸수는없지만앞으로무엇을남기고무엇을내려놓을지는지금부터다시정할수있다.늦었다고생각하는순간에도삶은남아있으며,자신에게필요한방향을한걸음씩선택하는순간부터남은삶은다시자신의것이된다.
책속으로
오랜만에만난친구가회사를옮긴뒤일이잘풀리고있다고말했다.연봉도제법올랐고,얼마전에는자신이바라던자리까지맡게되었다며웃었다.진심으로축하한다고말했지만집으로돌아오는길에는묘한불편함이따라붙었다.몇년전나에게도회사를옮길기회가있었다.당시에는새롭게시작하는일이부담스러워익숙한자리에남았지만,친구의이야기를듣고나니그때의선택이갑자기초라해보였다.
그때조금만용기를냈다면어땠을까.지금보다더좋은자리에있었을까.새로운사람들을만나전혀다른삶을살고있지는않았을까.생각은직장에서멈추지않았다.조금더일찍공부를시작했더라면,그사람과헤어지지않았더라면,반대로끝난관계를더일찍놓아주었더라면내인생은어떻게달라졌을까.머릿속에는또다른내가나타나지금보다넓은집에서살고,더사랑받고,훨씬만족스러운표정으로하루를보내고있었다.
마흔이지나면잘못한일보다하지못한일이더자주떠오른다.젊을때는아직가보지않은길이많았고,잘못선택하더라도다시방향을바꿀시간이충분하다고믿었다.하지만지나온시간이길어지면오래전의선택하나가인생전체를결정한갈림길처럼느껴진다.지금의직장과관계와생활이마음에들지않을수록,선택하지않았던삶은더선명하고아름답게다가온다.
---「PART101선택하지않은삶은왜더좋아보일까-키르케고르」중에서
그는오랜만에거래처사람을만났다.처음인사를나누던상대는자연스럽게명함을건넸고,그도습관처럼지갑을열었다.하지만손에잡힌명함에는지난달까지사용하던직함이적혀있었다.조직개편으로팀장자리에서물러난뒤새명함은아직만들지않았다.잠시망설이던그는명함을다시지갑에넣으며지금은가지고나온것이없다고말했다.
상대는별다른뜻없이요즘어떤일을맡고있는지물었다.그는대답하려다말문이막혔다.예전에는‘기획팀장입니다’라는한마디면충분했다.직함을말하면어떤일을하는지,회사에서어느정도자리에있는지,어떤대우를받아야하는지가어느정도설명되었다.그러나직함이사라지자자신을소개하는일이갑자기길고어려워졌다.
집으로돌아오는길에는명함을내밀지못했던짧은순간이계속떠올랐다.월급이줄어든것도아니고회사에서쫓겨난것도아니었지만,사람들앞에서자신의크기가작아진것같았다.그동안열심히일한이유가무엇이었는지생각해보니좋아하는일을잘하고싶다는마음보다,언젠가더높은이름으로불리고싶다는욕망이먼저떠올랐다.
회사에서는직함으로불렸고,거래처에서는직함에맞는대우를받았으며,집에서도자신이얼마나중요한일을맡고있는지자주이야기했다.그는직함을얻기위해오래달려왔지만,막상그것을내려놓자자신에게무엇이남는지는준비하지못했다.
---「PART301직함을내려놓으면나는누구인가-소크라테스」중에서
그는식당에서주문하려다잠시말을멈췄다.음식이름이혀끝에맴돌았지만바로떠오르지않았다.맞은편에앉은아들이대신메뉴를가리키며직원에게주문했다.별것아닌일이었지만,집으로돌아오는동안그장면이자꾸마음에걸렸다.
며칠전에는회사후배가회의자료를설명하면서그가이미알고있는내용을지나치게천천히말해주었다.친절한태도였지만,어느순간부터자신이대화의중심이아니라도움을받아야하는사람으로취급되는것같았다.전에는사람들이그의판단을기다렸는데,이제는그가말을꺼내기도전에대신정리해주는일이늘었다.
엘리베이터거울에비친얼굴도낯설었다.눈가의주름은깊어졌고머리카락사이에는흰색이많아졌다.그는거울속사람이자신이라는사실을알면서도,마음속의자신과는어딘가맞지않는다고느꼈다.속으로는여전히서른무렵의생각과감정을품고있는데,세상은먼저그의나이를보고대하는것같았다.
그가두려워한것은단순히늙어가는얼굴이아니었다.이제사람들의눈에자신의이름과성격,살아온이야기보다‘나이든사람’이라는표지가먼저보이기시작했다는사실이었다.몸이달라지는동안자신이조금씩배경으로밀려나는것같았다.
---「PART405늙는다는것은내가사라지는일이아니다-시몬드보부아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