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노조운동에서 환경운동가로, 시적인 삶을 그려온 하태성 시인의 흔적들
1992년 인천노동자문학회 4기 신입회원으로 활동했고 한국가스공사에 입사한 이후 2000년부터 노동조합 간부가 되어 2002년 철도, 발전, 가스 공공부문 파업지도부에서 활동한 이후 2019년 삼척석탄화력 반대투쟁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생명, 평화, 기후위기, 탈석탄, 탈핵 등 환경운동가로 활동 중인 하태성 시인이 첫 시집 『불량시민』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곰치국 끓이는 아침』을 출간했다.
하태성 시인의 『곰치국 끓이는 아침』을 읽게 되면 “마음여행, 시간여행을 여러 번 해야 한다”고 「발문」을 쓴 송경동 시인은 말한다. 송경동 시인과 하태성 시인은 이십대 때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을 이어 ‘노동자문학’, 나아가 ‘노동해방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열정으로 이마가 서늘하고 눈빛이 반짝였었다. 모두 ‘투사’가 되고,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서로를 북돋고, 때론 서로를 치받던 참 기막히고 아름답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하태성 시인은 어려운 이론이나 운동적 대의나 실천, 주장 등을 내세우진 않았다고 한다. 동료들이 열에 들떠 떠들 때면 슬그머니 주방으로 가서 속풀이 콩나물국이나 끓여주던 보살 같은 사람이 하태성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표제작 「곰치국 끓이는 아침」은 “부남마을 예닐곱 마지기 다랑논/ 달포 만에 모내기 끝낸 김남용 씨”가 “이른 아침 번개시장엘 다녀와서/ 아내에게 검은 봉지 내미는데/ 아내는 곰치를 또 사왔다며/ 우물가에 내동댕이”친다. “쏟아진 검은 비닐봉지 속/ 검은 물곰 한 마리”는 “깨알같은 눈 삼척 사내 같고/ 물크덩한 살 삼척 여인 같다”고 부부를 비유한다. 곰치를 사온 남편은 아내에게 핀잔을 받는 듯하지만 아내의 곰치국 끓이는 솜씨는 “국그릇 코를 박고/ 뜨신 국물 들이마시고는/ 삽을 둘러매고 잰걸음 나서는데/ 발걸음 오늘은 가볍”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것이다.
하태성의 시 「묵호 논골담에서」의 고백이 참 좋다고 말하는 송경동 시인은 “힘겨운 날이 왜 없었으랴. 이상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뜬구름처럼 좌절하고 흔들리며 어떤 것에라도 마음을 뺏겨보기 위해 헤매던 날들이 우리라고 왜 없었으랴.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데도 혼자 무너지며 쓸쓸해지던 날들이 왜 없었으랴. 그래서 그에게 이제 와 어떤 시적 완결을 굳이 따지기 싫다. 시를 따르지 않고 시적인 삶을 따라온 그 나름의 고투를 알기에, 시와 시인을 행세하려 하지 않고 시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가 어디일까를 성실히 쫓아 살아온 그의 미련과 순둥이 같던 삶을 알기에 그의 부끄러운 고백이 한 줄 한 줄 울컥하며 목에 걸린다”고 말한다.
“젊은 날 위태롭고 뜨거웠던 사랑”(「환절기」)을 하던 시절을 잊지 않고 하태성 시인이 여러 벗들이 떠난 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시들 것이 두려운 꽃은 피어날 수 없다”(「촛불이 되어」)고 이야기 해준다. “관람으로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강 건너 평화 구경」)고도 한다. “연대는 몸으로 하는 것이다/ 서로의 손을 잡는 거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거다”(「연대」)고 강조한다. “참 고맙고, 숙연한 일. 그의 오랜 소박함이, 순정한 몸부림을 드러내”고 있다고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하태성 시인은 현재 삼척시 근덕면 부남해변길에 위치한 부남미술관에서 틈틈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송경동 시인은 그와 함께 “삼척 어느 해변에 낚싯대나 드리우고 앉아 먼 바다나 말없이 함께 바라보고 싶은 마음뿐이다”라고 희망했다.
하태성 시인의 『곰치국 끓이는 아침』을 읽게 되면 “마음여행, 시간여행을 여러 번 해야 한다”고 「발문」을 쓴 송경동 시인은 말한다. 송경동 시인과 하태성 시인은 이십대 때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을 이어 ‘노동자문학’, 나아가 ‘노동해방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열정으로 이마가 서늘하고 눈빛이 반짝였었다. 모두 ‘투사’가 되고,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서로를 북돋고, 때론 서로를 치받던 참 기막히고 아름답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하태성 시인은 어려운 이론이나 운동적 대의나 실천, 주장 등을 내세우진 않았다고 한다. 동료들이 열에 들떠 떠들 때면 슬그머니 주방으로 가서 속풀이 콩나물국이나 끓여주던 보살 같은 사람이 하태성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표제작 「곰치국 끓이는 아침」은 “부남마을 예닐곱 마지기 다랑논/ 달포 만에 모내기 끝낸 김남용 씨”가 “이른 아침 번개시장엘 다녀와서/ 아내에게 검은 봉지 내미는데/ 아내는 곰치를 또 사왔다며/ 우물가에 내동댕이”친다. “쏟아진 검은 비닐봉지 속/ 검은 물곰 한 마리”는 “깨알같은 눈 삼척 사내 같고/ 물크덩한 살 삼척 여인 같다”고 부부를 비유한다. 곰치를 사온 남편은 아내에게 핀잔을 받는 듯하지만 아내의 곰치국 끓이는 솜씨는 “국그릇 코를 박고/ 뜨신 국물 들이마시고는/ 삽을 둘러매고 잰걸음 나서는데/ 발걸음 오늘은 가볍”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것이다.
하태성의 시 「묵호 논골담에서」의 고백이 참 좋다고 말하는 송경동 시인은 “힘겨운 날이 왜 없었으랴. 이상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뜬구름처럼 좌절하고 흔들리며 어떤 것에라도 마음을 뺏겨보기 위해 헤매던 날들이 우리라고 왜 없었으랴.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데도 혼자 무너지며 쓸쓸해지던 날들이 왜 없었으랴. 그래서 그에게 이제 와 어떤 시적 완결을 굳이 따지기 싫다. 시를 따르지 않고 시적인 삶을 따라온 그 나름의 고투를 알기에, 시와 시인을 행세하려 하지 않고 시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가 어디일까를 성실히 쫓아 살아온 그의 미련과 순둥이 같던 삶을 알기에 그의 부끄러운 고백이 한 줄 한 줄 울컥하며 목에 걸린다”고 말한다.
“젊은 날 위태롭고 뜨거웠던 사랑”(「환절기」)을 하던 시절을 잊지 않고 하태성 시인이 여러 벗들이 떠난 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시들 것이 두려운 꽃은 피어날 수 없다”(「촛불이 되어」)고 이야기 해준다. “관람으로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강 건너 평화 구경」)고도 한다. “연대는 몸으로 하는 것이다/ 서로의 손을 잡는 거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거다”(「연대」)고 강조한다. “참 고맙고, 숙연한 일. 그의 오랜 소박함이, 순정한 몸부림을 드러내”고 있다고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하태성 시인은 현재 삼척시 근덕면 부남해변길에 위치한 부남미술관에서 틈틈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송경동 시인은 그와 함께 “삼척 어느 해변에 낚싯대나 드리우고 앉아 먼 바다나 말없이 함께 바라보고 싶은 마음뿐이다”라고 희망했다.
곰치국 끓이는 아침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