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유 : 심병길 소설집

펑유 : 심병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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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과거의 자취와 현재의 양상이 중첩되며 새로운 의미를 낳는 소설들
2017년 제13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에 수필 「가지 않은 길」로 금상을 받으며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후 소설 창작도 병행하여 2022년 『한국소설』에 「발우생활정보신문 창업기」로 신인상을 수상한 강원 횡성중앙의원 원장 심병길 작가가 소설가로 데뷔한 지 1년 만에 첫 소설집 『펑유』를 출간했다.
심병길의 소설은 주로 현재와 회상이 번갈아 등장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걸어온 길을 되짚고, 있는 자리를 살피며 나아갈 방향을 살핀다. 소설이란 장르가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인 ‘사후진술’의 속성을 지니긴 했지만, 심병길의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갈마들고 중첩되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글쓰기 방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팔림프세스트는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글을 쓴 양피지를 이른다. 파피루스보다 보관이 쉽고 손상이 덜 되지만, 양피지는 값이 비싸서 재활용이 불가피했다. 이미 쓰인 글자를 긁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글자들을 쓰곤 했다. 썼던 글자들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고 흔적을 남겼고, 새로 쓴 글자들과 겹쳤다. 과거의 기록과 새로운 기록이 중첩되며 남다른 무늬를 만들어낸다. 남아 있는 과거의 자취와 현재의 양상은 중첩되며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심병길의 소설은 과거를 반추하고 해석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낸다. 하지만 아련한 기억을 소환하여 눈물로 그리워하는 단순한 회상과는 거리를 둔다. 과거사를 자기변명을 위한 알리바이로 삼지도 않는다. 작가는 기억의 세목을 소환하고 분석하고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과거의 해석과 의미 부여는 자신의 현재를 명확히 인식하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가늠케 한다. 되돌아봄으로써 과거와 현재, 미래는 잇대진다.
공간은 기억을 불러온다. 「발우생활정보신문 창업기」에서 ‘나’는 취재를 부탁하는 선배의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간다. 거기서 지나간 시간과 다시 만난다. 살갑게 지냈던 동창 종수를 만나고 부모님이 운영하던 만물상회에 간다. 공간에는 시간이 서려 있다. 고향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과거를 되짚게 된다. 발우역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관광명소가 되어 ‘행복역’으로 역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예전에 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는 섬세한 묘사력과 단단한 문장으로 과거의 풍경들을 활자로 소환한다.
심병길의 소설에서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그 시간 속에 있던 ‘사람’을 발견하는 것과 연결된다. 표제작 「펑유」에서 화자는 고시원에 틀어박혀 기타를 훔치듯 들고 떠난 영미를 떠올린다. 영미와의 시간 속에는 화자의 청춘과 꿈이 묻어 있다. 세상과 사람에게 등 돌린 화자는 실패한 관계를 복기한다. 화자는 기타를 들고 사라진 영미를 찾아 전국을 헤맨다. 화자가 고시원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인 중국인 여자와 예전의 연인 영미의 이야기가 번갈아 서술된다. 이 두 줄기 서사를 따라가며 화자는 열기로 가득했던 지난 날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간다.
심병길의 소설은 과거를 새롭게 바라보고, 과거의 조각들을 퍼즐을 맞추듯 재배열하여 새로운 의미를 끌어낸다. 이미 있었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걸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회색빛 과거는 생생한 빛을 띤 풍경으로 완성된다. 낱낱이 떨어져 있던 시간은 연결되고, 홀로인 사람들은 이어진다. 삶은 비로소 완전해진다.
저자

심병길

저자:심병길

대학동창회명부가도착했다.퇴적된시간이두툼했다.화석처럼굳어가는내가보였다.정리하는마음으로글을한편썼다.보령수필문학에서뽑아주었다.『에세이문학』에수필로등단했다.무언가허전했다.소설창작을들으며몇년을보냈다.일과가끝나고진료실에남아소설을쓰다보면눈깜짝할사이자정이되었다.깜깜한국도를달려집으로돌아오며,언젠가유난히도추웠던겨울,밤을새워골방에서소설을쓰던한청년을떠올렸다.화석에온기가돌았다.『한국소설』에「발우생활정보신문창업기」로등단했다.앞으로글을쓰게될지,쓴다면어떤글을쓰게될지,잘모르겠다.겨울밤을하얗게지새우던그청년이가는길을따라갈뿐이다.

목차

작가의말|아버지를찾아나선어린술꾼의일곱가지고백·5

발우생활정보신문창업기·11
함께캉캉춤을·35
펑유·61
그들만의세상·89
소설가P의하루·111
단독자·137
검객·173

해설|시간의중첩,팔림프세스트의글쓰기·김나정208

출판사 서평

소설줄거리

발우생활정보신문창업기
대기업홍보회사에다니다구조조정으로직장을잃고학원강사와편의점아르바이트등을전전하던나(권채윤)는고향에있는집이비게되자도피하듯발우면으로내려온다.무기력하게하루하루를보내던중대학국문과선배인김인호로부터연락을받는다.발우면에서생활정보신문사를운영하는김인호사장은발우역광장에서점을치고있는다람쥐도사에대한취재를부탁한다.

함께캉캉춤을
물리치료사수연은아무에게도알리지않고도피하듯지방의한병원으로내려오고그곳에서대학연극동아리선배고승태를만난다.대학시절존재감이라곤전혀없어별명이‘고스트’였던승태는여전히수줍은웃음만짓는다.수연은유난히무더웠던여름,최루탄이난무하던캠퍼스를떠올린다.무자비한진압으로주변은온통아수라장이다.길바닥에쓰러져있던수연을누군가일으켜세운다.수연은그의손에이끌려학교근처에있는파란대문의집으로들어선다.

펑유
영등포나이트클럽밤무대밴드에서기타를치며생활하던나는다방에서일하는영미를알게돼동거하는사이가된다.어렵게구한고가의명품기타를영미가갖고사라진후영미를찾아강원도의한소도시로내려온다.결국영미를찾지못하고그곳에일자리를구해허름한고시원에눌러앉는다.어느날고시원옥상에올라와보니한여자가나무상자에앉아있다.여자는지저분하고볼품없는개한마리를데리고있다.“평유!”여자가부르자개가귀찮은듯꼬리를살짝흔들었다.

그들만의세상
고기능자폐아준은12면체테라밍크스큐브를맞추고백과사전을사진찍듯통째로외운다.준이다니는유치원에는다운증후군은지,연약염색체증후군영훈이,뚜렛증후군이며과다행동장애를보이는솔이가있다.그들모두‘바깥세상’과구별된‘자신들만의세상’에서살아가고있다.심장이약한은지가수술을받기위해유치원을떠난다.아이들은세상과다른그들만의방식으로이별을준비한다.

소설가P의하루
다람쥐쳇바퀴돌듯단조로운삶을살아가던공무원P는어느날부터꿈을기록하기시작한다.그러자과거의사건과인물들은꿈과중첩되어예전과다른모습으로P의기억속에되살아난다.이러한내적인변화는P의일상에도영향을미치게되어급기야P는직장에처음으로지각을하게된다.그렇게시작된P의하루는예상치못한일탈로이어진다.

단독자
나는비행기추락사고로가족을모두잃고우울증과자책감으로세상과격리된채살아간다.나는외부적인관계부터스스로를고립시켜독립적인단독자로서의삶을살기로선택한다.그러나지금의고립이자신의의지가아닌우연한사건으로인함을알게되면서어떤인연의끈을만들어그것을스스로의의지로끊어버리기로결심한다.사고보상금으로구입한초고층호화아파트펜트하우스에고성능망원경을설치하고세상을관찰하던중한허름한건물옥상에서일광욕을하는여자를발견한다.그녀의등에새겨진나비문신을보며나는야릇한호기심을느낀다.

검객
김일남은인턴시절응급실에서최상도과장이위급한환자를소생시키는것을보고흉부외과를선택한다.최상도가집도하는수술에참여한일남은환자가의료사고로목숨을잃게되는것을보게되고,어떻게든책임을모면하려는최상도의비겁한모습에실망하여수술하는의사로서의꿈을접는다.시골에서작은병원을운영하며지내던일남에게한제약회사신입사원이찾아온다.인사차방문한그가일남은어디서본듯낯설지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