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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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적이고 철학적이고 사회적이며 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담긴 에세이들
2015년 『에세이스트』로 수필 신인상을 수상한 전남 보성 새재 출신 박춘 수필가가 첫 수필집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를 데뷔 10년 만에 출간했다.
박춘 수필가는 50대 초반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근육 내장이 굳어지며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불치병이지만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병을 이겨냈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으며 꾸준히 도서관을 찾아 주로 철학과 경제,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박춘의 수필은 정서적인가 하면 지적이고, 철학적인가 하면 사회적이다. 그래서 그의 수필에는 애틋한 정감도 느껴지고, 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담겼으며 동시에 대자연적인 고뇌도 읽힌다.
표제작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그의 독서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읽고 문학을 대하는 자세를 짐작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이 『문예이론』에 적어놓은 “진실은 구체적이다”라는 명제에 뒤이어 브레히트는 “나도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라는 글을 읽은 후 “‘진실은 구체적이다’는 명제만 보았다면 그냥 그렇지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뒤이은 브레히트의 “나도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에 붙잡혔다고 서두를 쓴다.
그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에 대해 “이해했다거나 이해한다는 것도 아닌 이해해야 한다는 언어가 가진 의욕과 요원할지 모른다는 의심과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원망에 시선이 갔다. 그 다짐의 무거움에 붙잡혔”으며 “진실은 영혼의 서(序)다. 인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인간에게 진실은 본질적으로 비(悲)”이고 “오늘은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이거나 다른 날과 똑같지 않은 하루다. 천지개벽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조금 변할 수 있거나 변할 수 있는 가능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찾는 그 무엇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거나 거기에 있다”며 작가 자신도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지었다.
박춘 수필가는 역사와 시사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세자 양녕은 충주부사 곽선의 첩 어리를 몰래 궁궐로 들여 아이까지 낳는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후 폐세자된 양녕이 귀향지에서 자살한 어리에게 남기는 편지글인 「어리야, 양녕의 변(辯)」, 청나라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인조)을 가운데 두고 계속 싸우자는 척화파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것을 주장한 화친파 속의 갈등 속에 임금은 없었다는 「그곳에 산성이 있다」 등 조선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도 눈길을 준다. 백년 전 일본에 나라를 병탄 당하고 실의에 빠진 이십대 중반이었을 조부(祖父)의 나라를 잃은 심정을 헤아린 「백년, 광복 70년의 회억(悔憶)」, 일제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고 항의하기 위한 소녀상과 한일 간 위안부 협상문에서 기록된 ‘불가역(不可逆)’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소녀상, 그리고 불가역(不可逆)」도 눈길을 끈다.
그가 책을 읽고 작품을 쓰기 위해 거의 매일 들르는 도서관에 대한 글도 흥미롭다. 무하마드 알리와 대결한 안토니오 이노키를 닮았고 주식투자와 경제 관련 책을 읽는 ‘이노키’ 선생 등과 만난 이야기 「도서관 사람들」, 10여 년 전 10명 중 8명은 젊은층이 이용하던 도서관이 지금은 노장층이 훨신 많아졌으며 대학생층이 주로 맡던 사서보조도 장애인들이 담당하는 사회 변화를 읽어낸 「도서관 열람실 풍경」은 물론 자신의 삶에 특별히 기억되는 이광수의 『흙』,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이상의 『날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네 권의 책」, 나쁜 선택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지키기 위해 작가는 책을 읽고 있다는 「책을 읽는다」도 읽을 만하다.
박춘 작가는 자신의 쓰고 있는 수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공부한다. 제5장에 수록된 「수필의 변(辯)」, 「문학 이야기, 묘사」, 「문학 이야기, 성찰」, 「문학 이야기, 재미」, 「문학 이야기, 기행수필」 등은 메타수필로 부를 수 있다. 또 박춘 작가가 평생 살아온 삶의 진솔한 태도를 쓴 「오금공원에서 보내는 편지」는 동료 수필가들이 많이 언급하는 작품인데, 글 속에 그의 ‘착한 심성’이 잘 드러나고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사유의 폭이 깊고 넓어짐을 느꼈다는 것은 오랜 기간 수많은 책을 섭력한 독서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

박춘

저자:박춘
1952년전남보성새재출생
2015년『에세이스트』수필등단

목차

책을펴내며·4

제1장무늬
봄길에‥11|9월은‥15|소녀상,그리고불가역(不可逆)‥18
경전선‥25|오금공원에서‥27|박곡아재‥31|순명(順命)‥35
꽃이지다‥38|무제‥40|백년,광복70년의회억(悔憶)‥44

제2장시선
그것을이해해야한다‥51|세상은본래아름답다‥54
어리야,양녕의변(辯)‥57|천동아재‥64|창천(蒼天)‥69
필생‥74|라면을끓이며‥77|흔들리다‥82
그곳에산성이있다‥86|기도‥91

제3장단상
‘내꺼’그리고‘웬쑤’‥95|소년‥99|일상에서‥101
서세동점(西勢東漸)‥105|황제(皇帝)‥112|동행‥116
시간의흔적‥118|우울하게하는것들‥123|서른즈음에‥130
네권의책‥134

제4장풍경
냉정과치졸‥141|변명‥147|도서관사람들‥150
도서관열람실풍경‥156|천하장사‥160|임금이시여‥165
제주에서‥171|누구였을까‥181|9월에는‥184
부르주아에대한단상‥186

제5장변명
수필의변(辯)‥193|문학이야기,묘사‥195|문학이야기,성찰‥202
문학이야기,재미‥205|문학이야기,기행수필‥208
책을읽는다‥213|풍경‥219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진실은본래면목이다.그러하기에해석을필요로하지않는다.인간사이의관계는해석과선택이놓여있다.어떤경우에는해석과선택의오류가진실을무찔러버린다.현실은진실마저도수용자의이해상관에노출되어있다.언제부터인가우리는해석을하고그것을지식으로삼고의미로삼는것에만족한다.옛적의믿음과견딤을실천하고일체화하던세계를잃었다.의미는내부에서찾아야하고내부에서존재된다는것.의미는상황과조건의변화와도무관하다는것을잊었다.
어느날내푸념에‘간단한사람이어디있겠어요’하며배시시웃던그는옳았다.진실은영혼의서(序)다.인과를돌아보지않는다는점에서그러하다.그래서인간에게진실은본질적으로비(悲)이다.선의의거짓말은이성의몫이지만거짓을아파하는것은영혼의일이다.오늘은다른날과똑같은하루이거나다른날과똑같지않은하루다.천지개벽같은것은없다.다만조금변할수있거나변할수있는가능이있을뿐이다.그러니까내가찾는그무엇들은이미그곳에있었거나거기에있다.나는그것을이해해야한다.
―「그것을이해해야한다」중에서

1963년,때이른초여름일요일이다.하얀모시옷을입은조성북국민학교박선생님이맑게흐르는새재천모래톱에서유리어항처럼생긴어포기를들고초등학생마냥잇몸을보이며즐거워하고있었다.어포기에는울긋불긋한피라미와송사리몇마리가우왕좌왕하였다.걷어올린팔목과흰종아리가초여름햇살에시원하게웃었다.당신혼자이른천렵을하고계셨던가.해는중천을지나가고바람은선들했다.천변둑에서풀이기웃하고,황새한마리가고요히날아지나갔다.잠시시름을내려놓으신초하의풍경이모처럼걱정없는얼굴로태연자약했다.
―「풍경」전문

부끄러움을무릅쓰고책을낸다.문학을엿본다는과욕은늘부끄러움이었고민망함이었다.아주늦게나마문학이천재들,타고난자들만의것이아니고평범한사람들도노력해볼수있는대상이라는발견은,내게는콜럼버스의신대륙발견에비할만한사건이었다.
살다보면이런잘못을범하고저런상처를받고살게마련이다.가슴아픈일도보고턱도없는횡포도저지르고서러운일도,억울한일도겪는다.모두몸둘곳없는부끄러움들이다.더러외로울때도감사하는마음도찾아든다.그런때에한두줄끄적거린것이나의수필이다.수필도못되는나의수필이다.조금씩변할수있었던것은그런끄적거림덕분이다.
―「책을펴내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