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위의 달빛

전선 위의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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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욕망과 결핍, 가여움과 자유, 그리고 시간과 집착에 관한 유시경의 수필들
2010년 『한국산문』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한국산문』 운영위원과 『군포시민문학』 편집장,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2015년 출간한 첫 수필집 『냉면을 주세요』로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었던 유시경 수필가가 두 번째 수필집 『전선 위의 달빛』을 출간했다. 두 번째 수필집은 36여 년간 운영해온 식당을 접고, 첫 수필집 출간 이후 9년간 『한국산문』, 『수필과비평』, 『좋은수필』, 『현대수필』 등에 발표한 수필과 미발표작 등 40편을 모은 것이다.
『전선 위의 달빛』은 글의 주제와 소재에 따라 제1장 결핍에 관하여, 제2장 욕망에 관하여, 제3장 가여움에 관하여, 제4장 자유에 관하여, 제5장 시간 그리고 집착에 관하여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제목만 살펴보더라도 어떤 내용의 작품들과 만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저자

유시경

저자:유시경
전북남원에서출생했다.군산에서한약방집딸로성장했으며서울에서주방장남편을만나수원과군포에서식당을경영했다.서울디지털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2010년『한국산문』수필신인상으로등단했다.『한국산문』운영위원이며『군포시민문학』편집장,편집위원을역임했다.현재군포문협편집위원으로활동하고있다.남편과함께요리책을준비중이다.첫수필집『냉면을주세요』(2015년세종도서문학나눔선정)를출간했다.

목차

작가의말|주방세제보다독한‘글의힘’·4

제1장결핍에관하여
손가락에관한고찰‥11|수유의기억‥16
빛의요람이고싶었던‥21|비문이소용돌이칠때‥25
내코를찾아줘‥29|어쩌다나비춤‥33
착한발에날개달고‥37|부끄럽지않아요‥41

제2장욕망에관하여
작은남자‥49|산마루연가‥54|옥희는행복해‥59
사랑에대한미필적소고(小考)‥64|슈퍼맨은없다‥72
빈집에서우는아이‥77|머리에대해말해볼까‥81

제3장가벼움에관하여
전선위의달빛‥87|복쟁이아저씨‥92
그남자의기타행(行)‥97|진주사우나에서온사나이‥101
죽어도강달이‥105|청진에서온여인‥109
반려초의비명‥114|까치는죄가없다‥118
선생님,저를꾸짖어주세요‥122

제4장자유에관하여
목마른시절‥133|그림자에고하다‥138|오!격리해제‥142
이르쿠츠크에서부르는노래‥146|낙원에서산호를줍다‥151
골목길,그행간을더듬다‥158|청어뼈에갇히다‥162|성장하는집‥167

제5장시간그리고집착에관하여
책불(冊佛)앞에서서‥175|냉면의마음‥179
다시는홍어회를먹지않으리‥184|잔짐의굴레‥189
포도당굽는시간‥192|황홀한집착‥197
환멸의끝,주문진에서‥202|만인복운집(萬人福雲集)‥207

출판사 서평

『전선위의달빛』은글의주제와소재에따라제1장결핍에관하여,제2장욕망에관하여,제3장가여움에관하여,제4장자유에관하여,제5장시간그리고집착에관하여등으로구성되었으며그제목만살펴보더라도어떤내용의작품들과만날수있을까라는궁금증을자아내고있다.

제1장‘결핍에관하여’에는우주의블랙홀같은,까만동굴사진한장속에자리했던태아의집을화자로내세워사랑과임신,착상과낙태,출산과완경에이르기까지의애환을수필의퇴고과정에덧대문학적상상과은유로과감히풀어낸「빛의요람이고싶었던」.초등학교졸업전어머니가세상을뜨고급격하게나빠진눈이성인이되고는그상태를유지하다가오십줄에들어서서생긴,눈앞에날파리가날아다니는듯한‘비문증’때문에겪는답답함을낱말과문장에비유한「비문이소용돌이칠때」등을만날수있다.

제2장‘욕망에관하여’에는사실자신은두남자와살고있으며,그둘은번갈아가며자신을괴롭히지만그중하루에도몇번씩저만바라봐달라고투정부리는‘작은남자’에대한이야기가있다.이는식당에서함께일하는남편이아닌작가자신의가면속실체를호기롭게드러내는수필「작은남자」,가수양희은의히트곡〈한사람〉의노랫말을소재로어린시절일곱가구사글셋집의후미진골방에살았던왜소한체격의영이언니와의추억을그리는「산마루연가」등을읽을수있다.

제3장‘가여움에관하여’에는유시경작가가운영한식당에서5년간일하는내내일이고되거나몸이아파도한번도병가를내지않고독하게자리를지켜주어조선족에대한선입견을깨게했던이야기이다.월화(月華)가식당을그만둔뒤10년만에역전국밥집에서일하는것을봤지만,이내시선을피하며멀어진그녀의속내가궁금했던표제작「전선위의달빛」은여러가지서사와감정을느끼게해주는한편의소설같은문제작이다.

제4장‘자유에관하여’에는코로나에걸려2주간자가격리를해야했던아이때문에백일지난손자를만나지못하는아쉬움,식당운영에서겪어야할어려움들을써내려간「오!격리해제」,36년간운영하던식당을접고‘열심히일한우리,떠날까?’라며후련하게떠나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으로등재된‘한탄강물윗길’을걸었던일화를남긴「성장하는집」등이실려있다.

제5장‘시간그리고집착에대하여’에는서른살에함흥냉면제조기술을배웠으나뜨거운물에익반죽하느라하루도손이성한날이없는남편과,갈빗집의후식냉면은공짜라면서도이런저런불만을토로하는손님들과의하루를담담히써내려간「냉면의마음」,식당과주방은냄새와욕망의집합소라는명제에얽힌이야기「황홀한집착」.음식을찾아여러직종의손님들이밖에서묻혀오는세상의냄새와요리를만드는주방에서풍겨나오는냄새들에관한이수필은일상생활에서무심코흘려보낸것들에대해다시한번돌아볼수있는기회를준다.

유시경수필가는「작가의말」에서“어느날문득,설거지를하다물통에둥둥뜬두손을보았다.고무장갑을끼지않는나의손가락들이배수구위로요동치고있었다.칼에베인상처.펜혹처럼부푼두번째손가락첫마디를감추고싶어주먹을쥐고걸었다.문학에빠져글공부를했고그간절함을놓지않으려어지간히지탱해왔다.어느누가이르길,문학의본질은결핍과자유라했으니그에충실히살았다고자위한다.글의힘은그릇을닦는노란주방세제보다독한가보다.그릇에묻은비눗물은여러번헹구면없어지건만,내삶의문장들은수십번헹구어내도말끔히닦이지않으니이는나의능력부족일것이다.수필은어렵다.마음을다잡아다시쓰련다.비눗물처럼유연해져야겠다”는결의를내비쳤다.

책속에서

사거리역전어귀국밥집에서일하고있는그녀를보았다.우리가게에서뛰어이삼분도안되는거리였다.월화는나와눈이마주쳤지만이내시선을피하고제할일을하였다.얼핏보았는데쌍꺼풀수술을받았다.눈두덩이깊게패어못알아볼뻔했다.졸린듯가늘게웃음짓던그얼굴은어디로갔을까.세월이흘러인상이변해있었지만분명월화였다.그녀도나이가드니눈매교정을하였나보다.건달과살았다는둥주인을홀렸다는둥동네에악소문이돌았지만괘념치않겠다.나도한때‘갈빗집그여자는재취’라는풍문을안고살았으니까.
월화와헤어진지십년이지났다.나는지금,그녀에대해어떠한감정이교차한다.그것은사상도이념도아니다.월화를보면안쓰럽기그지없다.그녀를볼때마다괜스레미안해진다.그녀는중국으로돌아가지않을것이다.마음이편해보이니좋은남자와잘살고있으리라.조선족인들한국인인들,또한그녀가곧죽어도“나는중국인이라니까요!”라고외친들어찌할것인가.우리는서로연관된민족성을지녔으면서도,굳이잣대를들이대자면아무런혈연관계도아닐것이다.이런느낌이드는까닭은모르겠으나,월화에게내내살갑게대해주지못했다는생각을하게된다.
골목한가운데하늘을갈라놓은듯전깃줄이드리워져있다.무리진달은저녁내전선을옮겨다니다멀어져간다.내진실은그림자밑에숨었으니선량한달빛은그마음알아주려나.
―「전선위의달빛」중에서

나는주인의목숨을빌려이땅에태어난검정이다.검정이나이고그것이내이름이다.나는특별히빛나지않는다.부끄러움도많이탄다.드러내지않는것이야말로진정한나의권력이다.나는암흑속에서너를발견한다.불이켜지고사그라지기를반복하는동안너는내흙에서노래가되고춤이된다.터널끝,빛들은숨쉬며꽃피울준비를한다.너는나에게서태어나무럭무럭피어오른다.빨갛고푸르게,노랗고하얗게.너는핏줄이되고살이된다.피와살이된네가나와함께주인을위한빛그림을그리고있다.너와내가빛으로나오기까지세상은얼마나두려운것이냐.우린결국어떤색도아닌모든색깔로노래하게될지도모른다.나는위로를갖고싶다.나는순수를잉태하고싶다.난너에게내전부를내주겠다.
뼛속을긁어내고내장을비우고나면깃털처럼가벼우리라.생명의낱알은저밑바닥으로부터,텅빈우주로부터시작되는것.그것은빛이없으니차갑고장막으로드리워져있으니고요하며종국에는외롭고황량한곳이다.나는째깍대는허공에서너를찾는다.네주인의이름은검정이다.그것은나와그녀의이름이기도하다.우리는‘나’가아닌우리모두의주인에게서터져나왔다.아무색깔도아닌검정,시작을노래하는검정,다른색이될수없는검정,색깔의끝인검정이다.나를검정이라불러다오.무겁고침울한검정.모든빛을감싸안는검정.사라져버리는검정.
나는어둠속모니터.그렇게환생했다.
―「빛이고요람이고싶었던」중에서

지금은냉면전성시대.노포냉면집들의실록과야사가면발마다낱낱이새겨져있다.수백가닥으로쏟아지는애환들이역경을딛고달려가는느낌이랄까.함흥이면함흥이요평양이면평양이지,냉면한그릇에뭔잡다한고명이이리도많으냐묻는다면할말은없다.내가먹는냉면한그릇이야말로애증의쉼터,문학의움이라한다면오만한것일까.끝이없을이야기.‘문학은무릇냉면같은것이어야하지않을까?’라는신념이콧등을탁후려친다.
분주한이한그릇속의이야기만큼이나여름은몹시도길었다.냉면은사람사이를뜨겁게이어주기도했지만때론매몰차게끊어놓기도했다.분창속의반죽덩어리처럼뭉쳤다흩어져기약없이떠나는사람들.땀방울이송골송골맺힌그릇을받아탁자에놓고내려다보노라면,옴팍하게똬리튼면발위로수많은인물들이고명처럼앉아서미소짓는다.
이토록타인의노고와허물을되새김하며쾌락에젖는음식이라니.냉면의마음도내맘같을까.남의돈먹기쉽지않고맛있는냉면먹기쉽지않더라.세상에공짜는없었으나아낌없는그이의나눔은성공하였다.냉면덕에‘나는더욱단단해졌다’고위안삼는다.언젠가또다시손님을맞게된다면,기쁨이슬픔에게속삭이듯‘따뜻한’냉면을삶아낼수있을지는아무래도자신이없다.
―「냉면의마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