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시간 :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여성적 유다의 창으로 본 세상

여자의 시간 :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여성적 유다의 창으로 본 세상

$14.00
저자

신단향

저자:신단향
경북군위에서태어났다.2007년시집『고욤나무』를내고2012년『시사사(시를사랑하는사람들)』로등단하였다.2017년12월우리詩작품상을수상하였고시집『상록객잔』(2017),『상록마녀』(2018)를출간했다.

목차


작가의말|제발훨훨바람처럼자유롭거라·5

장사꾼일기초·9
케이크를품다·37
여자의시간·71
상록객잔·99
머리꽃미소·121
구름속의얼굴·149
딸들의반란·171
상록마녀전·199

발문|욕망과‘유다의창’으로본세상/신승철·227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세라가잠시자리를비웠을때였다.윤홍은슬며시혜준을안았다.혜준은윤홍의두팔을뿌리치지않았고윤홍의입술이혜준의입술에포개었다.혜준은당황하였지만저항하지않았다.윤홍은페로몬향기를싱그럽게풍겼고까칠한턱수염이혜준의뺨을스쳤다.남자의포근한체온이가슴으로스며들어왔다.혜준은스르르긴장했던마음이무너져버렸다.그동안의쌓였던외로움의감정이커다랗게회오리쳐빠져나가는것같았다.
혜준은감았던눈을살그머니떠서윤홍의두눈을바라보았다.그도눈을감고있었다.얼마만큼진정으로사랑해줄지문득혜준은이순간겁이났다.혜준의처지를상세히안다면어떤모습을할까?
끌어안고있던윤홍의두팔을풀었다.자신감이없었다.윤홍은더욱팔에힘을주다가혜준의완강한거부에팔의힘을풀었다.혜준의눈에서눈물이한방울떨어졌다.남자에게여자로인정받는다는감격의눈물이었다.
이순간의입맞춤이얼마나진지해질것인지무엇을의미해야하는지당혹스러운생각에눈물이흐르는감정을억누를수가없었다.윤홍은혜준의어깨에손을얹고가만히혜준을바라보았다.혜준은윤홍의눈을피해얼굴을숙였다.가슴이두근거려쿵쾅거리는소리가귀에들려왔다.
―「여자의시간」중에서

사내에서그러한우리의관계를아는사람은정연이었다.정연이가사귀었던유부남인과장과결별하고,정신적으로갈등을느끼며나와술자리를하게되면서,자연그남자와의관계가들통난것이다.유부남이었던과장은부인과이혼을하면서정연이와함께살고싶다고했으나,부인에게발각이난후론상황이바뀌었다.그는퇴근시간에맞춰집으로달려갔고,정연이는멍하게바라보아야했다.그는늘바쁘다며정연이를피했다.나역시똑같은사연은아니지만,유부남인경리과장과아픈기억이되살아나,나는정연이를토닥거려주었다.그러한나에게그녀는언니처럼가족처럼다가왔다.싫지는않았다.가족들과멀리떨어졌고거의연락조차도하지않는나의처지로는오히려반갑기도했다.
나와그남자와멀뚱한시간의공백을어느순간부터정연이가메우기시작했다.그러면서우리는자주싸우기시작했다.때에따라서정연이는그남자가마치자신의남자친구인양,짙은교태와농담을걸었고,그남자역시도싫어하지않고받아주었다.나는가만히웃어주지만,속으론얼굴이붉어오고,정연이도그남자도미웠다.고함이라도질러혼내고싶었다.그러나겉으로는어쩔수없이호호거리며웃어야했다.팔짱을끼고매점에가서아이스크림을사오고,함께구내식당에가고.나는멀찌감치뒤따라갔다.정연이는흘끔돌아보며,뭐해빨리안오고.그사람과앞질러갔다.
정연이가그러는행동을왜거절하지않고받아주냐.그러는내말에그남자는친근하게다가오는그애에게어떻게그렇게해.그렇지않아도이제겨우웃음을찾은애에게.그남자가하는항변이었다.오히려내가심술쟁이가되어버린기분이었다.벌칙으로우리앞으로일주일동안말하지맙시다.회식이있었던날밤이었다.
―「케이크를품다」중에서

밤이깊었다.술취한숙희의눈에는나이트클럽네온불빛만이번쩍거리고,오가는행인들이좀전보다많이줄어있었다.큰길건너숙희의원룸까지바래다주겠다는상수를애써외면하고혼자길을걸었다.등뒤에서상수가말했다.우리다시시작하자.다시열심히살게.헤어짐이실감났다.머리가어지러웠다.술이가져다주는냉담한용기로마음의응어리를털어버리기라도하려는듯혼자중얼거렸다.
내생애가장힘들었던건당신때문이었어요.내가추워서오들오들떨때당신의미소한번만이라도있으면추위가녹았을텐데.당신은냉담하고차갑게날떠났어요.당신처자식안위는걱정됐어도,나는당신의소모품일뿐이었죠.이제는나도철이들어당신만바라보지않아요.나에게도책임져야할가족이이제는있어요.당신떠난후,제가아파야했던그시간은지금생각하면끔찍해요.이제후회하지않아요.영철씨의부탁으로충주호에갔을때잉태된,당신과나의자식인민이가내곁에있으니까요.제운명인걸요.이제는제가당신곁을떠나야할차례가아니던가요?언제나싱그러운푸름을간직하겠다는상록객잔에서푸르러싱그러운냄새만기억나던당신과의감정도끝을내겠어요.마음에맺혔던응어리가푸른빛처럼후련한걸요.이제다시새로운푸름을간직해야겠어요.안녕잘지내요.숙희의눈에서눈물이흘렀다.새한마리비그친청명한하늘위로날아갔다.지나던한사내가힐끗돌아보았다.
―「상록객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