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scription
초월적 지평 너머의 무엇을 찾아내고자 한 권영우의 시들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졸업하고 (사)중소기업융합중앙회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GRIT-M LAB Group〉의 COO로서 중소기업의 R&D 기획 등에 대한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는 권영우 시인이 첫 시집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을 출간했다.
권영우의 시집,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에서 ‘만약’은 가정법이라는 문학 수사법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만약∼’을 과거를 향한 제한적 수사에 묶어둔다면, 그 이후에 수행하는 모든 회고적 행위는 자아 성찰이라는 의미를 함축하지 못하고, 막연한 후회의 상태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시상이 형상화하지 못하므로 시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표제시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에서 형상화한 질문의 보편성은 두 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신산(辛酸)’이라는 시어가 함축한 삶의 농도, 살아냈으되 단지 살아낸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자긍심이 한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이 단지 생활이라는 의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늘 초월적 지평 저 너머의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순간이었음을 유추하는 방향이다.
시인은 “천 년 그늘을 키운 느티나무 아래”(「칠월의 그늘」)에서 자랐다고 믿지만, “파릇파릇한 새싹도,/ 무성했던 나뭇가지도/ 한 해를 넘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로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인은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하고 가정한다. 따라서 독자도 가정한다. ‘신아(新芽)’(「아직 말하지 않은 감정」)를 자주 떠올리는 시인에게 ‘만약’이라 가정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이다.
권영우 시인이 가정하고자 하는 세대를 이어주는, 즉 시대를 관통하는 의미는 「지게」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일단 ‘지게’는 홀로 서지 못하다. 이 시의 경우, “흙벽에 기대어 서 있는 지게 하나”로 그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 ‘지게’의 과학적 원리가 시적 효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시는 유추하고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하는데, 시인은 2연에서 이를 형상화한다. “어깨 가득 짐에 눌려/ 휘청였던 다리건만/ 걷는 만큼 길이 되었고/ 달빛 이고 청춘 지고/ 저 아득한 길을 걸으며”라고 시인은 보고 있지만, 시선이 흩어진다. ‘지게’라는 대상에 투여한 나의 상상과 실제 기억이 뒤섞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뒤섞임이 실제 시를 더 함축적 대상이 되게 한다. 지게는 사물이 아니라 아버지의 생이라는 사유의 비유이기 때문이다.
권영우 시인에게는 고향, 부모, 가족, 언어처럼 태생적으로 자신의 울타리였으면서 또한 보호막이었던 세계가 있다. 거기에는 아무래도 “어머니도 아니고 누이도 아닌/ 처음엔 어여쁜 꽃이었다가/ 어느새 앙칼진 가시만 남아/ 내 편인 듯 아닌 듯/ 종잡을 수 없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여자”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두 개의 이름이 새로운 본향(本鄕)이 되어 오래 입속에 머물 것이다. 그 이름은 ‘시와 아내’라 불린다.
권영우의 시집,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에서 ‘만약’은 가정법이라는 문학 수사법을 거뜬히 뛰어넘는다. ‘만약∼’을 과거를 향한 제한적 수사에 묶어둔다면, 그 이후에 수행하는 모든 회고적 행위는 자아 성찰이라는 의미를 함축하지 못하고, 막연한 후회의 상태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시상이 형상화하지 못하므로 시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표제시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에서 형상화한 질문의 보편성은 두 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신산(辛酸)’이라는 시어가 함축한 삶의 농도, 살아냈으되 단지 살아낸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자긍심이 한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이 단지 생활이라는 의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늘 초월적 지평 저 너머의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순간이었음을 유추하는 방향이다.
시인은 “천 년 그늘을 키운 느티나무 아래”(「칠월의 그늘」)에서 자랐다고 믿지만, “파릇파릇한 새싹도,/ 무성했던 나뭇가지도/ 한 해를 넘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로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인은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하고 가정한다. 따라서 독자도 가정한다. ‘신아(新芽)’(「아직 말하지 않은 감정」)를 자주 떠올리는 시인에게 ‘만약’이라 가정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이다.
권영우 시인이 가정하고자 하는 세대를 이어주는, 즉 시대를 관통하는 의미는 「지게」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일단 ‘지게’는 홀로 서지 못하다. 이 시의 경우, “흙벽에 기대어 서 있는 지게 하나”로 그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 ‘지게’의 과학적 원리가 시적 효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시는 유추하고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하는데, 시인은 2연에서 이를 형상화한다. “어깨 가득 짐에 눌려/ 휘청였던 다리건만/ 걷는 만큼 길이 되었고/ 달빛 이고 청춘 지고/ 저 아득한 길을 걸으며”라고 시인은 보고 있지만, 시선이 흩어진다. ‘지게’라는 대상에 투여한 나의 상상과 실제 기억이 뒤섞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뒤섞임이 실제 시를 더 함축적 대상이 되게 한다. 지게는 사물이 아니라 아버지의 생이라는 사유의 비유이기 때문이다.
권영우 시인에게는 고향, 부모, 가족, 언어처럼 태생적으로 자신의 울타리였으면서 또한 보호막이었던 세계가 있다. 거기에는 아무래도 “어머니도 아니고 누이도 아닌/ 처음엔 어여쁜 꽃이었다가/ 어느새 앙칼진 가시만 남아/ 내 편인 듯 아닌 듯/ 종잡을 수 없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여자”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두 개의 이름이 새로운 본향(本鄕)이 되어 오래 입속에 머물 것이다. 그 이름은 ‘시와 아내’라 불린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 북인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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