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현상 너머의 속살이나 실핏줄’을 엮어내는 서미경 시인의 첫 시집
『작가와문학』으로 등단하고 천안문인협회와 〈바람시〉 동인들과 나사렛대학에서 늦깎이 시 공부를 하는 서미경 시인이 첫 시집 『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을 펴냈다.
서미경의 시집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돌아보기’이다. 첫 시집을 엮는 대개의 시인들이 그러하듯 그는 아직 자신의 과거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는 것이 모두 자기연민의 통속적 감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기 위하여 돌아보는 자기 연마의 과정은 버릴 수 없고 버려서도 안 되는 ‘옛‘에 뿌리를 둔다고 하겠다. 여기서 ’옛‘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르지만 이 또한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이해가 그 바탕에 있임을 이해해야 한다.
서미경 시인의 ‘돌아보기’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시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이다. ‘울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하듯이 배꽃처럼 곱던 어머니가 후르르 지는 풍경이라니! 그것도 배꽃 흐드러진 꽃그늘에서 배꽃처럼 하얀 어머니의 하염없음을 보는 일이란 세상의 어느 딸에게도 가슴 시린 일이다. ‘늙은 나무에겐 꽃도 무게’여서 어머니는 ‘이제 꽃구경도 옛 말’이라 하신다. 시는 진술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장황하지 않다. 할 말은 다 하는 듯한데 자신이 깨물고 있는 슬픔의 뼈를 등 뒤로 감추고 있다. 사물의 힘을 빌려 시적 이미지를 전개하는 조용함이 사뭇 경이롭다.
또 다른 시 「질문 받지 않겠다」에서는 베 짜기와 시 쓰기는 허방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 무형의 재료로 ‘베’와 ‘시’라는 유형의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행위를 은유한다. 신과 더불어 베 짜기를 겨루는 일이나 내가 나와 겨루어 건져내는 글쓰기의 작업이 그린 듯 닮았다. 바라보기에 거칠 것 없는 듯한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이지만 ‘거미도 제 다리를 주무르는 어떤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시인의 진술이 창작의 과정을 대변하고 있다. ‘질문 받지 않겠다’는 단호함은 아무리 그래도 시를 써야 한다는 스스로를 향한 자기 연마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서미경 시인은 다른 시인보다 ‘헛것’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이다. 현상 너머를 본다는 것은 결국 현상의 속살이거나 속살보다 더 깊은 그 속의 실핏줄 따위를 본다는 것인데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결국은 헛것을 끄집어내면서 제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이가 바로 시인 아니겠는가.
서미경 시인이 불러내는 시 「헛것」에 주목해보자. 모처럼 돌아보는 ‘옛 집’에서 ‘댓돌 위에 엎어진 하얀 고무신’과 그 고무신에 담겨 있는 ‘꽃물 들이던’ 어떤 ‘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쇠비름, 바랭이, 명아주가 차지한 옛 마당. 이제 그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줄어들어 그저 ‘풀’이라고 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듯이 서미경을 불러주는 이름들이 다 떠난 거기(과거)에서 늙은 부모의 ‘관절 꺾는 소리’를 듣고 있는 시인의 자세가 슬프지 않은 것은 ‘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 속에 자신을 세워둘 줄 아는 관조(觀照)의 자세가 단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가슴에 쟁여두고 사는 그리움의 실체란 서미경의 ‘헛것’에 다름 아니다. ‘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이 붐빈다니. 심상 속 그리움을 이만큼 불러낼 시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서미경의 시집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돌아보기’이다. 첫 시집을 엮는 대개의 시인들이 그러하듯 그는 아직 자신의 과거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는 것이 모두 자기연민의 통속적 감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기 위하여 돌아보는 자기 연마의 과정은 버릴 수 없고 버려서도 안 되는 ‘옛‘에 뿌리를 둔다고 하겠다. 여기서 ’옛‘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르지만 이 또한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이해가 그 바탕에 있임을 이해해야 한다.
서미경 시인의 ‘돌아보기’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시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이다. ‘울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하듯이 배꽃처럼 곱던 어머니가 후르르 지는 풍경이라니! 그것도 배꽃 흐드러진 꽃그늘에서 배꽃처럼 하얀 어머니의 하염없음을 보는 일이란 세상의 어느 딸에게도 가슴 시린 일이다. ‘늙은 나무에겐 꽃도 무게’여서 어머니는 ‘이제 꽃구경도 옛 말’이라 하신다. 시는 진술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장황하지 않다. 할 말은 다 하는 듯한데 자신이 깨물고 있는 슬픔의 뼈를 등 뒤로 감추고 있다. 사물의 힘을 빌려 시적 이미지를 전개하는 조용함이 사뭇 경이롭다.
또 다른 시 「질문 받지 않겠다」에서는 베 짜기와 시 쓰기는 허방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 무형의 재료로 ‘베’와 ‘시’라는 유형의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행위를 은유한다. 신과 더불어 베 짜기를 겨루는 일이나 내가 나와 겨루어 건져내는 글쓰기의 작업이 그린 듯 닮았다. 바라보기에 거칠 것 없는 듯한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이지만 ‘거미도 제 다리를 주무르는 어떤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시인의 진술이 창작의 과정을 대변하고 있다. ‘질문 받지 않겠다’는 단호함은 아무리 그래도 시를 써야 한다는 스스로를 향한 자기 연마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서미경 시인은 다른 시인보다 ‘헛것’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이다. 현상 너머를 본다는 것은 결국 현상의 속살이거나 속살보다 더 깊은 그 속의 실핏줄 따위를 본다는 것인데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결국은 헛것을 끄집어내면서 제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이가 바로 시인 아니겠는가.
서미경 시인이 불러내는 시 「헛것」에 주목해보자. 모처럼 돌아보는 ‘옛 집’에서 ‘댓돌 위에 엎어진 하얀 고무신’과 그 고무신에 담겨 있는 ‘꽃물 들이던’ 어떤 ‘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쇠비름, 바랭이, 명아주가 차지한 옛 마당. 이제 그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줄어들어 그저 ‘풀’이라고 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듯이 서미경을 불러주는 이름들이 다 떠난 거기(과거)에서 늙은 부모의 ‘관절 꺾는 소리’를 듣고 있는 시인의 자세가 슬프지 않은 것은 ‘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 속에 자신을 세워둘 줄 아는 관조(觀照)의 자세가 단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가슴에 쟁여두고 사는 그리움의 실체란 서미경의 ‘헛것’에 다름 아니다. ‘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이 붐빈다니. 심상 속 그리움을 이만큼 불러낼 시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헛것이 헛것을 기다리는 풍경 (서미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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