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한 번 깜빡

눈 한 번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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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성수 시인, 오랜 침묵 깨고 18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눈 한 번 깜빡』 출간
‘느닷없는 진지함’과 ‘유쾌한 명랑’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성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눈 한 번 깜빡』이 출간되었다. 1991년 『시와시학』 제1회 신인 공모를 통해 등단한 이성수 시인은 2004년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18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선보인 것이다.
이성수 시인은 문 밖을 산책하다 문 안에 들어 시간의 물에 상처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오래 문 밖을 떠돌았다. “절집 뒷간은 문도 없이 봄”(「하기야 동백꽃도」)이 오는 줄 알아채곤 동백이 피는 속도로 귀가해 시방은 방안에서 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절간 처마 끝 풍경을 떠올리며 “목숨 연명하는 소리”(「風磬」)를 추억하다가 “문이 왜 필요해” 하며 ‘벽’을 허물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세워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는 “잘 가” 하고 해맑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다.
그에게 시는 “뜻하지도 않은 곳에서” 만나 허물없이 웃고 떠드는 “뜻하지 않은 친구”이다. 어쩌면 ‘느닷없는 진지함’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이성수 시인의 ‘유쾌한 명랑’엔 “사막 한가운데”(이하 「개미귀신」)에 “뻥 뚫린” 구멍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게 다는 아니다. 가벼움만으로 무거움을 가름하긴 어렵다. 웃음의 이면에 감춰진 슬픔을 감지하면 ‘느닷없음’이나 가벼움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허물어진 시」에서 “나는 죽어가는 문장”, “내 병은/ 내 시”라 했듯 시인의 몸속에는 시가 흐르고 있다. 그냥 시인이다. 이성수의 시에선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저 무심히 바라보는 듯하지만, 대상을 연민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사물을 요모조모 관찰하다가 슬쩍 비틀기도 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진지한 듯 장난스럽고, 장난스러운 듯 진지하다. 그냥 천진난만하다.
이성수의 시집 『눈 한 번 깜빡』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28번 나온다. ‘꽃’이라는 말은 67번이나 나온다. 시집에 꽃이 활짝 피었다. 꽃을 좋아하면 늙은 것이라는데, 그는 정작 ‘늙다’는 말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반면 ‘젊은’은 1번, ‘청춘’은 8번이나 등장한다. 반어적일까? ‘청춘’을 상징하는 계절 ‘봄’은 35번 나온다.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과 봄꽃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게 시에 녹아 있다.
시인은 죽음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말 대신 겨울처럼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 죽음이라는 명사를 딱 한 번 사용(‘죽다’는 의미는 33번이고 돌아가시다 등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를 포함하면 더 많다)했는데, 그 “죽음은 이국적”(이하 「계엄령 내린 날」)이다. 시인에게 죽음은 길을 잃은 듯, “가슴까지 무너”진 듯 “무참한 일상의 반복”되는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눈 한 번 깜빡”이면 봄 지나 겨울이 된다. 가을의 자리에 서서 “엄마가 쓴 이번 생 이야기 읽어보려고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서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날도 더운데 우리 막걸리 한잔”해야겠지요. 우리는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한 생이 지나고 또 다른 생을 맞”는다. “커다란 스케치북”(이하 「삶은 종잇조각」)에 ‘삶’이라는 글자를 쓰고 “뭔가 골똘하게 바라”보는 어린 조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방 “깊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힌 “스케치북을 북 찢어서 꾸깃꾸깃 구겨버”리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시소를 탄다. “올라갔다 내/ 려/ 갔/ 다”를 반복한다. 이쯤 되면 삶이 장난인지 장난이 삶인지, 시가 생활인지 생활이 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거울 앞에서 엉덩이를 깐 사내가/ 근심과 번뇌의 경계를 넘자/ 순식간에 자세가 흐트러진다”(「반가사유상」 부분). 이성수의 삶이 머무는 지점이다.
저자

이성수

1964년서울에서태어나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1991년『시와시학』제1회신인공모를통해등단했다.시집『그대에게가는길을잃다,추억처럼』을펴냈으며,빈터문학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출판저널』기자생활을시작으로여러잡지사에서일했으며,‘푸른시민연대’문해자시교실자원봉사활동을계기로어르신들시강의활동을이어오고있다

목차

1부고양이의식사는얼마나위대한고행이냐
반가사유상·13
하기야동백꽃도·14
삶은종잇조각·16
멀고먼중화반점·18
사이·20
그까짓·21
양수리행·22
화천가는길·24
폭포·27
꽃의명함·28
꽃들은·29
고양이의봄날·30
봄날을보내는방법·32
봄꽃·33
폐문정진·34
달빛·36
제부도·38
운악산현등사·40

2부다시눈을깜빡이고말았다
눈한번깜빡·45
부리나케·46
월식·47
오래된아이·48
시공부시간·50
양말·54
버려진가구·55
노인의열쇠세개·56
오후4시·57
허물어진시·58
그림자를버리다·60
시집왔다·62
아득한·64
빌어먹을·65
땅거울·68
물고기는눈을감지않는다·69
하하하,아버지·72
미사일·74
열대야·76

3부내장을드러내놓는울음은손가락끝까지시리다
피는꽃·79
침묵의경전·80
문신·81
낮과밤의깊이·82
동구릉·84
벽·86
장마·87
중생대쥐라기허니문·88
얻어터진날·89
내가아직못쓴시·90
흔들리는흙·92
송광사에는풍경이없다·94
춤을추고있었구나·96
기린의골목·98
고드름·100
9월·102
일상의방향·104
지렁이·106
끈적끈적하게,빌어먹을·107

4부향기나는집이공중에떠있다
염색장·113
향기나는집·114
계엄령내린날·116
오래된빨래·118
십자가와거미줄·120
종점·122
돌아가는길·125
단풍·126
길·128
의도하지않읔오류·130
일출의그늘·132
꽃산적·134
어쩌자고·135

발문“하하하성수야!우리막걸리한잔하자”/김정수·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