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자연’으로 돌아온 도시의 적자(嫡子) 조현석 시집 『차마고도 외전(外傳)』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로 등단했던 조현석 시인이 시단 데뷔 3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차마고도 외전(外傳)』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51번으로 출간했다.
조현석의 시가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적자(嫡子)였던 그의 시를 두고 ‘자연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한 건 출발지로 회귀했다는 뜻이 아니라 서정시의 근원으로 회귀했다는 뜻이다. “도시의 외곽 마르고 검게 병든 나무들 사이/ 흔들거리는 신호등 - 빨강, 파랑, 초록의 불/ 모두 켜져 나올 곳을 찾지 못하고/ 맴돌다, 주저앉고 말았다”(「벽에게 묻다」, 제1시집, 1992년)던 30여 년 전의 그의 시는 “살포시 실바람이 타는 천 갈래 구름의 현악(絃樂)/ 봄볕 좋은 물가에 앉아 귀에 고이는 소리 담는 게지”(「파르르 연두」)라고 노래할 만큼 변했다.
조현석의 시가 변했다. “현란하면서도 매끈하게 펼쳐지는 수사와 장식적인 이미지들, 세련된 감상성, 여성성”으로 무장한 채 “도시적 서정”(성민엽 문학평론가)을 유감없이 드러냈던 첫 시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불법체류자의 불안”(최인자 문학평론가)에 시적 자아를 기꺼이 투사했던 두 번째 시집, 시의 제목을 모두 “∼다”로 끝나는 서술형으로 통일하여 “내면의 고통과 우울”(이재훈 시인)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세 번째 시집, “실존적 결핍에서 비롯되는 갈증”으로 “견고한 고독의 세계”(고봉준 문학평론가)를 노래했던 네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를 관통하는 정서는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안과 절망이었다. 물론 이번 시집에서도 그 정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자연’의 발견(1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성찰(2, 3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4부) 등이 대신하고 있다.
표제시 「차마고도 외전(外傳)」과 「차마고도」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이제 그는 그의 슬픔과 아픔과 절망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도통했다는 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큼 ‘내공’이 쌓였다는 말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시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현란하면서도 매끈하게 펼쳐지는 수사와 장식적인 이미지들”(제1시집 해설, 1992년)이 많이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현석의 시가 ‘도시적 서정’에서 ‘전통적 서정’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시의 형식도 눈에 띄게 단아해졌다. 시세계가 변하다보니 시형식도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주위의 평가는 갈릴 수 있다. 미학적 퇴행으로 받아들이는 비판적 시각도 있을 것이고, 인간적 성숙으로 받아들이는 옹호의 시선도 있을 것이다. 결국 시를 주목해서 보느냐, 시인을 주목해서 보느냐의 차이일 테다. 전자를 두고 ‘애정 없는 비판’이라고 몰아붙인다면 그들은 후자를 향해 ‘비판 없는 애정’이라고 맞받아칠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비판의 치열함보다는 옹호의 공감 쪽에 설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시란 ‘잘 표현된 아픔’이라고 믿으니까. 시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없이 어찌 그 시인의 시를 평가하겠는가
조현석의 시가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적자(嫡子)였던 그의 시를 두고 ‘자연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한 건 출발지로 회귀했다는 뜻이 아니라 서정시의 근원으로 회귀했다는 뜻이다. “도시의 외곽 마르고 검게 병든 나무들 사이/ 흔들거리는 신호등 - 빨강, 파랑, 초록의 불/ 모두 켜져 나올 곳을 찾지 못하고/ 맴돌다, 주저앉고 말았다”(「벽에게 묻다」, 제1시집, 1992년)던 30여 년 전의 그의 시는 “살포시 실바람이 타는 천 갈래 구름의 현악(絃樂)/ 봄볕 좋은 물가에 앉아 귀에 고이는 소리 담는 게지”(「파르르 연두」)라고 노래할 만큼 변했다.
조현석의 시가 변했다. “현란하면서도 매끈하게 펼쳐지는 수사와 장식적인 이미지들, 세련된 감상성, 여성성”으로 무장한 채 “도시적 서정”(성민엽 문학평론가)을 유감없이 드러냈던 첫 시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불법체류자의 불안”(최인자 문학평론가)에 시적 자아를 기꺼이 투사했던 두 번째 시집, 시의 제목을 모두 “∼다”로 끝나는 서술형으로 통일하여 “내면의 고통과 우울”(이재훈 시인)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세 번째 시집, “실존적 결핍에서 비롯되는 갈증”으로 “견고한 고독의 세계”(고봉준 문학평론가)를 노래했던 네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를 관통하는 정서는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안과 절망이었다. 물론 이번 시집에서도 그 정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자연’의 발견(1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성찰(2, 3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4부) 등이 대신하고 있다.
표제시 「차마고도 외전(外傳)」과 「차마고도」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이제 그는 그의 슬픔과 아픔과 절망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도통했다는 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큼 ‘내공’이 쌓였다는 말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시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현란하면서도 매끈하게 펼쳐지는 수사와 장식적인 이미지들”(제1시집 해설, 1992년)이 많이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현석의 시가 ‘도시적 서정’에서 ‘전통적 서정’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시의 형식도 눈에 띄게 단아해졌다. 시세계가 변하다보니 시형식도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주위의 평가는 갈릴 수 있다. 미학적 퇴행으로 받아들이는 비판적 시각도 있을 것이고, 인간적 성숙으로 받아들이는 옹호의 시선도 있을 것이다. 결국 시를 주목해서 보느냐, 시인을 주목해서 보느냐의 차이일 테다. 전자를 두고 ‘애정 없는 비판’이라고 몰아붙인다면 그들은 후자를 향해 ‘비판 없는 애정’이라고 맞받아칠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비판의 치열함보다는 옹호의 공감 쪽에 설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시란 ‘잘 표현된 아픔’이라고 믿으니까. 시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없이 어찌 그 시인의 시를 평가하겠는가
차마고도 외전(外傳) - 현대시세계 시인선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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