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되는 정신의 과잉 - 현대시세계 시인선 160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 - 현대시세계 시인선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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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유하고 시를 쓰고 끝없이 탈주하는 운명을 드러낸 신종호의 시들
1997년 『현대시』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종호 시인이 2017년 두 번째 시집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을 출간한 후 만 7년 만에 세 번째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60번으로 출간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에 대해 성귀수 시인은 “보통의 시인들이 좇게 마련인 청각영상이나 비유의 조화로움이라고 하는 보편적 미덕의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보이며, 시집에 실린 각각의 시편들이 “성벽(城壁)을 때리는 투석용 화강암 덩어리 같다”라고 비유했다. 나아가 신종호 시인은 파편화된 상처들을 역치(易置)하거나 전치(轉置)함으로써, 독특하게 자각된 세계의 모순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러한 점은 세 번째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에도 드러나고 있다.
신종호의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을 보면 우선 시집 제목이 난해하다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 않겠지만 말 그대로 따라가면 정신은 과잉되어 있고 과잉된 정신은 해부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잉된 정신을 해부하는 것이야말로 시의 한 축이라 해도 그럴듯하다는 데에 이른다. 예술이 표상 혹은 재현으로서의 세계와 단절했을 때 필연적으로 어둠, 무의식, 죽음 등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 신종호의 시는 그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시종일관의 태도를 보여준다.
시인의 살아온 내력으로 회한, 옛날, 귀로를 말하는 경우에도 보편적 감성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생경한 어떤 측면이 늘 배치되어 있다. 범박하게 이야기하면 기표와 기의 세계에서 누락된 존재에 대한 탐구는 그의 시를 어렵게 만든다. 그는 이미 합의된 기호로서 아름다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신종호 시인의 시에 끝없이 나타나는 그와 그녀, 나와 당신의 복잡한 수식적 관계는 기호의 혼돈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표와 기의의 합의에 포획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탐구의 형식이 그에게는 ‘시’라는 말이다.
시집 1부는 ‘사랑의 회고록’이라는 부제의 연작이다. 어쩌면 사랑 그리고 회고록 둘 다 낡은 인상의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시어들이 품은 일상의 정념을 그리는 것이 이 연작의 목표가 아님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사랑의 부재(不在)는 사랑이라는 관념 혹은 행위에 대해 비극적 포즈를 보여주기도 한다. 시적 화자에게 사랑이란 사랑이라는 표상의 외부라는 것이다. 표상에 가려진 어떤 것 즉 들뢰즈가 말한 감각할 수 있지만, 감각밖에 할 수 없는 그러나 강밀하게 밀려들어오는 실체가 사랑인 셈이다. 표상 너머의 사랑에 대한 탐구가 사랑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에는 기호에 관한 관심과 탐구는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구조주의적 관점 특별히 롤랑 바르트의 기호론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라는 1차적 기호는 신화의 기표로 작용하며 특정한 계층의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를 보편화하게 된다.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말로 하자면 거짓된 자연스러움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언어는 다만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예술가들이 언어 기호에 끊임없이 의심을 눈길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시가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이다.
시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의 배경은 ‘재래시장’이다. 족발집, 정육점, 해장국집, 방앗간 등의 풍경은 현실의 재현에 가까운 시적 소재들이다. 그로테스크한 동물의 육체성에 대한 묘사를 통한 보이는 연민은 다만 시 전면의 의미망일 뿐이다. 시적 화자가 내세운 르네 마그리트는 애초에 재현의 공간과 원리를 파괴한 클레나 칸딘스키와는 다르게 재현의 낡은 공간을 그대로 수용하고 재현의 원리를 구현한 듯 보이게 회화를 구성하고 있다. 두 화가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위해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를 포기했다면, 르네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 속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고 푸코는 말하고 있다. 재현의 원리에 해당하는 ‘유사’는 사물에 대해 고정된 인식을 우리에게 부여하지만 ‘상사’는 원본 없는 복제의 무한한 반복을 통하여 사물 속에 내재된 형상을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준다.
표제시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처럼 정신의 과잉을 해부하고자 하는 욕망도 동일성의 세계를 살아가도록 암암리에 강요받는 현실에 대항하는 혼돈스러운 정신의 자기 검열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신종호의 시를 읽으면 인간은 왜 투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우리의 싸움은 시의 운명과도 유사하게 패배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한다. 사유하고 시를 쓰고 끝없이 탈주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우대식 시인은 이 세계의 모순에 맞서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정신의 향방을 “동일성의 세계를 살아가도록 암암리에 강요받는 현실에 대항하는 혼돈스러운 정신의 자기 검열”이라고 설명하면서 합의된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즉 기표와 기의가 포획하지 못한 실존의 누락된 영역을 탐구하는 탈주의 사유가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의 기류라고 설명한다.
신종호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은 사랑의 부재와 불가능성, ‘나’라는 존재의 분열, 차이를 무화시키고 동일성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성찰, 삶과 죽음의 교착에 대한 실존적 사유를 통해 자기 긍정과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모멸의 바람이 유령처럼 부는”(「꼬리의 모노드라마」) 이 시대의 어두운 뒤편을 포괄적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점은 시의 난해함이 난해함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난해함이 한 시인의 시적 개성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저자

신종호

저자:신종호

1964년경기도여주에서출생했다.숭실대학교국어국문과대학원박사과정을수료했고,1997년『현대시』로등단했다.2021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받았으며,시집『사람의바다』(천년의시작,2006),『모든환대와어떤환멸』(시인동네,2017)을출간했다.

목차

1부마른씨앗의날들
귀로(歸路)·13
벽·14
삼인칭의밤들·16
마른씨앗의날들·18
물빛뜨락·20
붉은몸살·22
모래울음·24
가을빛목청·25
한파주의보·26
여름의끝·28
세상에없는꽃·30
울산바위·32
탄탈로스·34
두개의원·36

2부구름의방
안개·39
집시의강·40
바로크적으로·42
능소화·44
그냥·46
가볍게·48
그리움의여분·50
어느하늘로·52
구름의방·53
낡은,봄·54
소쩍,쿵·56

3부정육과자본과통로
적막등짝·61
차가운기호들·62
공공씨의하루·64
정육과자본과통로·66
르네마그리트그림처럼·68
디오게네스의주정·69
버려진/질것들·70
테트라포드·71
시절유감·72
얼룩과얼룩·74
천상의꽃·76
매복같은사랑·78

4부해부되는정신의과잉
홍시·81
해부되는정신의과잉·82
연구개파열음·85
Domino·88
꼬리의모노드라마·90
마트료시카·92
잉여의주먹질·94
편집증·96
Nothing의사거리·98
거울,뒷골목·100
시간의짐·102
서해였다·104
불의울음·106

5부영혼의서랍
멸치육수·109
구석진11월에서서·110
수취인불명·112
베드로의독백·114
영혼의서랍·115
잃어버린신화·116
북극의밤·118
고드름·120
울음을쥐고태어난·122
미꾸라지·123
끝의열매·124

해설다시,구름의방으로들어가다/우대식·126

출판사 서평

사유하고시를쓰고끝없이탈주하는운명을드러낸신종호의시들

1997년『현대시』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한신종호시인이2017년두번째시집『모든환대와어떤환멸』을출간한후만7년만에세번째시집『해부되는정신의과잉』을현대시세계시인선160번으로출간했다.그의두번째시집『모든환대와어떤환멸』에대해성귀수시인은“보통의시인들이좇게마련인청각영상이나비유의조화로움이라고하는보편적미덕의강박에서완전히벗어난듯”보이며,시집에실린각각의시편들이“성벽(城壁)을때리는투석용화강암덩어리같다”라고비유했다.나아가신종호시인은파편화된상처들을역치(易置)하거나전치(轉置)함으로써,독특하게자각된세계의모순을결코잊을수없는방식으로우리앞에제시하고있다고평했다.이러한점은세번째시집『해부되는정신의과잉』에도드러나고있다.
신종호의시집『해부되는정신의과잉』을보면우선시집제목이난해하다느껴질것이다.그렇지않겠지만말그대로따라가면정신은과잉되어있고과잉된정신은해부된다는의미이다.그러나가만히생각해보면과잉된정신을해부하는것이야말로시의한축이라해도그럴듯하다는데에이른다.예술이표상혹은재현으로서의세계와단절했을때필연적으로어둠,무의식,죽음등에시선을돌릴수밖에없다.신종호의시는그운명을기꺼이감수하겠다는시종일관의태도를보여준다.
시인의살아온내력으로회한,옛날,귀로를말하는경우에도보편적감성으로서의그것이아니라생경한어떤측면이늘배치되어있다.범박하게이야기하면기표와기의세계에서누락된존재에대한탐구는그의시를어렵게만든다.그는이미합의된기호로서아름다움에는별다른관심이없다.신종호시인의시에끝없이나타나는그와그녀,나와당신의복잡한수식적관계는기호의혼돈에서비롯된것이다.정확히말하면기표와기의의합의에포획되지않은존재에대한탐구의형식이그에게는‘시’라는말이다.
시집1부는‘사랑의회고록’이라는부제의연작이다.어쩌면사랑그리고회고록둘다낡은인상의단어들이다.그러나이시어들이품은일상의정념을그리는것이이연작의목표가아님은어렵지않게읽을수있다.사랑의부재(不在)는사랑이라는관념혹은행위에대해비극적포즈를보여주기도한다.시적화자에게사랑이란사랑이라는표상의외부라는것이다.표상에가려진어떤것즉들뢰즈가말한감각할수있지만,감각밖에할수없는그러나강밀하게밀려들어오는실체가사랑인셈이다.표상너머의사랑에대한탐구가사랑의회고록이라할수있다.
이와함께『해부되는정신의과잉』에는기호에관한관심과탐구는지속적으로나타난다.구조주의적관점특별히롤랑바르트의기호론의관점에서보면언어라는1차적기호는신화의기표로작용하며특정한계층의세계관과이데올로기를보편화하게된다.그것은롤랑바르트의말로하자면거짓된자연스러움으로권력을행사하게되는것이다.그럴때언어는다만의사소통의수단을넘어우리의삶을규율하는보이지않는강력한기제로작동하게된다.예술가들이언어기호에끊임없이의심을눈길을보내는이유가여기에있다.그러한점을잘보여주는시가「르네마그리트그림처럼」이다.
시「르네마그리트그림처럼」의배경은‘재래시장’이다.족발집,정육점,해장국집,방앗간등의풍경은현실의재현에가까운시적소재들이다.그로테스크한동물의육체성에대한묘사를통한보이는연민은다만시전면의의미망일뿐이다.시적화자가내세운르네마그리트는애초에재현의공간과원리를파괴한클레나칸딘스키와는다르게재현의낡은공간을그대로수용하고재현의원리를구현한듯보이게회화를구성하고있다.두화가가보이지않는것을그리기위해보이는것에대한묘사를포기했다면,르네마그리트는보이는것과보이는것속에내재한보이지않는것에관심이있었다고푸코는말하고있다.재현의원리에해당하는‘유사’는사물에대해고정된인식을우리에게부여하지만‘상사’는원본없는복제의무한한반복을통하여사물속에내재된형상을우리에게새롭게보여준다.
표제시「해부되는정신의과잉」처럼정신의과잉을해부하고자하는욕망도동일성의세계를살아가도록암암리에강요받는현실에대항하는혼돈스러운정신의자기검열이라할수있을터이다.신종호의시를읽으면인간은왜투쟁해야하는가하는문제를골똘히생각하게한다.그리고이시대에우리의싸움은시의운명과도유사하게패배의운명을타고난것이아닌가한다.사유하고시를쓰고끝없이탈주하는것이시인의운명이라는것을다시한번깨닫게한다.
이번시집의해설을쓴우대식시인은이세계의모순에맞서시인이지향하고자하는정신의향방을“동일성의세계를살아가도록암암리에강요받는현실에대항하는혼돈스러운정신의자기검열”이라고설명하면서합의된언어로포착되지않는,즉기표와기의가포획하지못한실존의누락된영역을탐구하는탈주의사유가이번시집에실린시편들의기류라고설명한다.
신종호시집『해부되는정신의과잉』은사랑의부재와불가능성,‘나’라는존재의분열,차이를무화시키고동일성안으로편입시키려는자본의논리에대한성찰,삶과죽음의교착에대한실존적사유를통해자기긍정과자기계발에몰두하는,시인의표현을빌자면“모멸의바람이유령처럼부는”(<꼬리의모노드라마>)이시대의어두운뒤편을포괄적으로탐색하고있다는점에서주목된다.이러한점은시의난해함이난해함으로귀결되는것이아니라어떻게난해함이한시인의시적개성이될수있는가에대한문제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