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잉크로 쓴 분홍 - 현대시세계 시인선 162

검은 잉크로 쓴 분홍 - 현대시세계 시인선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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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미정

저자:강미정
경남김해에서출생했다.1994년월간『시문학』에「어머님의품」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타오르는생』(도서출판빛남,1996년),『물속마을』(도서출판전망,2001년),『상처가스민다는것』(천년의시작,2003년),『그사이에대해생각할때』(문학의전당2008년,2019년복간본)등네권을출간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활짝,·13
둥근자세·14
두량짜리무궁화호열차·15
검은잉크로쓴분홍·16
펴진손바닥·18
옆모습을보여주는사람·19
옹이라는이름의문장·20
바닥에이마를댄슬픔·22
티끌·23
기꺼이다른것이되어가고있는중·24
에∼한말을얻다·26
쑥국·28
말을잃은몸·30
조막만한고요·32
절벽으로지어진집·34

2부
벚나무흰치마·37
늙은호박을옮길때·38
나비·40
풋것·42
덩굴장미꽃담정류소·44
새·46
해거름·48
촛농치료·50
3번출구로날아가는민들레홀씨·52
숨·53
모래의책·54
벙어리아주머니·56
달빛을듣다·58
지옥문사진·60
올해첫돈이라는말·62

3부
보름달이뜬봄밤·67
자결한꽃·68
홍진(紅塵)·70
절대로도망가지않음·72
어떤축문·73
불타는악보·74
있다고간신히말하는·76
욕·78
또다른순간을지나가고있다·80
입맛·82
아이러니한코로나·84
노래를불렀어·86
체내리는집·88
가야금줄에꽃을매단사람·90
숨결이라불리는시간·91

4부!
돌부처·95
백일·96
버린밥·98
상여꽃·100
연애·102
묶인새·104
차를우리는동안·105
수국꽃다발·106
색을쓰다·108
간절곶에서·109
저녁·110
배바위·112
침묵을벼리다·114
집으로가는길·115
돈방석집·116

해설젖은눈의글쓰기/오민석·118

출판사 서평


슬픔을강요하지않고사람을울릴줄아는기술의소유자강미정시인

1994년월간시전문지『시문학』으로등단한강미정시인이2008년에출간한네번째시집『그사이에대해생각할때』이후16년만에다섯번째시집『검은잉크로쓴분홍』을현대시세계시인선162번으로출간했다.
강미정의시집『검은잉크로쓴분홍』에가장자주반복되는단어가있다면,그것은눈물혹은울음의유사어들이다.강미정은젖은눈으로세계를본다.그녀는복잡다단한세계를눈물로약호화한다.그녀의젖은눈은주로가난한것,힘든것,죽어가는것,슬픈것,불쌍한것들의뒷모습을향해있다.그녀는그런세상의슬픈뒤꼭지를보고운다.진짜울음은슬픔으로그치지않는다.진정한울음은사유이고통로이며대안이다.진짜울음은진실이고사랑이기때문이다.그녀의눈물이넘칠때사랑이넘치며세계에대한진정성이넘친다.눈물은크다.눈물은모든것을안기때문이다.젖은눈은깊다.젖은눈은사랑이기때문이다.
강미정시인이젖은눈으로세상을읽을때,독자들은그시선에서순도높은사랑의영혼을읽는다.슬픔도힘이세다,는말은이럴때하는것이다.시인의젖은눈이빛나는것은그것이타자에대한큰사랑에서비롯된것이기때문이다.반면에자기설움의눈물은타자의외부에머물뿐이다.그것은사랑이없으므로속이없는울림과같다.시인이타자의고통을자신의것으로느낄수있는것은보편적아픔에매우민감한안테나를가지고있기때문이다.
강미정의시속에선서툰흔적을찾아보기힘들다.그녀의문장은오랜수련끝에잘닦인무인의솜씨처럼단호하며자연스럽고매끄럽다.그녀는젖은눈으로세상을읽되감상에빠지지않고,인간과세계의고통을이야기하되과장하지않는다.눈물의코드로세계를읽으면서도그는비개성의시학(thepoeticsofimpersonality)을실천하듯센티멘털리즘과거리를둔다.그녀는슬픔을강요하지않으면서도사람을울릴줄아는기술의소유자이다.
시「벚나무흰치마」가돋보이는이유는그것이상투적인구도에서멀찍이떨어져있기때문이다.가장화려한봄꽃의하나인벚꽃은통상약동하는젊음과절정에이른아름다움을상징한다.그러나시인이뽀얗게아름다운“벚나무그늘속”에배치한것은아름다운청춘들이아니라역설적이게도인생의종점에와있는“할머니네분”이다.이들은“와그르르쟁강,놋요강굴러가는소리”로축제처럼떠들며벚나무의화려함을절정으로이끈다.
강미정시인은더도아니고덜도아니고산다는것은“아무것도아닌것이되어가는”(「기꺼이다른것이되어가고있는중」)일이라고말한다.그러므로그녀는시속에거대서사나환상의세계가들어올자리를만들지않으며,대신삶에서쪼개져나온소소한하루들이오글거리도록한다.아버지와엄마로부터생겨난피붙이들과낯모르는사람의식솔들까지안부를챙기고섬겨서시집에살게한다.
그녀의감성과상상력이예민하게반응하는것들은이토록사소한생활,새들한감정이지만,시로빚어진그것은무한히자라나는삶의모습들이라는점에서아릿하게따뜻하고갸륵하다.또한천성적으로그녀는약하고버려진것들을거두어마음으로먹이고입히는사람인데,이런태도는시의어조와어법에그대로스며사랑하라는속삭임이시의저뒤편에서들려온다.문면에드러나지않아도“얼얼하게아리고맵고뜨거운”(「에∼한말을얻다」)삶을쓰다듬는그녀의손길도곳곳에서느껴진다.무엇보다묵묵한견딤의시간을누군가와나누고싶다면,한사람이다른이를위해해낸최대의선량을보고싶다면이시집이그대답을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