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표류기 - 현대시세계 시인선 172

백령도 표류기 - 현대시세계 시인선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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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득한 슬픔이 서려 있으나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이다영의 시들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꽤 오랜 시간 국어교사로 학생을 가르쳤으며 2010년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해 2013년 시집 『끝없는 길 위에서』로 영랑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이다영 시인이 만 1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백령도 표류기』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72번으로 출간하였다.
한 사람의 인생/일생에는 일상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일, 즉 인간사도 상존한다. “외로움이/ 죽음의 위협보다 큰 것임”(「인간사(人間事)」)을 아는 나이가 된 이다영 시인은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을 선택한다.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마음이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선물을 주고 싶”어한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의 기쁨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간의 느낌”에서 행복을 느낀다. 시인은 그 “선물처럼 인생도 시도/ 잔잔한 물결이기를” 염원한다. 그 물결에는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심리와 아득한 슬픔이 서려 있다.
이다영 시인의 시에서 ‘슬픔’은 건강한 삶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인 감정이지만, ‘우울’은 내면 깊숙이 침잠해 몸에 파동을 일으킨다. 「우울 방정식」에서 보듯, 몸과 마음의 “바다에 넘쳐” 흘러 “넘실거리는 물결로 하루를 점령”한다. 슬픔에서 발원한 우울이 일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만, 우울은 쉽게 소멸하지 않고 슬픔이나 불안, 무기력 같은 문제를 수반한다.
시 「뫼비우스의 띠」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안과 밖의 구분은 공간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겉으로는 ‘파리’라는 미물과의 사투지만, 안으로는 자아와의 사투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보다 더 깊이를 알 수 없는 “전생과 현생/ 내생까지도 건 싸움”일 수도 있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마주 볼 수 없는 운명의 무한반복. “결코 끊을 수 없는” 무한궤도에 갇힌 한없이 나약한 존재의 슬픔이 엿보인다.
표제시 「백령도 표류기」는 백령도 여행을 갔다가 안개와 비바람에 출항하지 못한 상황을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다. 시인은 안개로 발이 묶인 이후 8일간의 행적과 심리상태를 간략하게 묘사한다. 8일은 입도를 제외한 표류의 날이다. 첫째 날, 생각이 많아진 “일행은 모두 말이 없”다. 둘째 날, 안개가 “펜션 주변까지 다가”오자, 시인은 “안개 속의 나를 안개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나는 보이지 않을 뿐 거기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없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여기/섬에 존재하지만, 저기/뭍에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날, 안개에 더해 비가 내리고, 넷째 날에는 비바람까지 분다. 다섯째 날에는 태풍까지 더해진다. 안개-비-비바람-태풍으로 제약의 강도가 세질수록 시인의 반응도 침묵-산책-무기력-기도로 변화를 거듭한다.
여덟째 날에 표류를 끝내고 마침내 “인천에 도착”하자 “섬에서의 모든 기억을 단칼에 베어”낸다. 섬에서 나오자마자,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 “섬에서의 모든 기억”뿐일까. “시의 오지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은 ‘섬에서의 표류’와 단절, 즉 현실적 제약과 “오래된 습관”(「주인」)에서 벗어나 “시 없이는 죽을 것만 같던 때”(「치수」)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표현은 아닐까. “변함없이”의 강조와 역설에 주목하면 “시의 오지” 역시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시를 쓰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저자

이다영

저자:이다영
인천에서태어났다.인천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2010년월간『순수문학』으로등단하였다.2013년시집『끝없는길위에서』로영랑문학상우수상을수상하였다.꽤오랜시간국어교사로학생을가르쳤다.지금은경기김포에서공인중개사사무소대표로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중독·13
시인·14
봄날같은겨울날·16
돈다·17
치수·18
아무리생각해도카푸치노·20
백령도표류기·22
백수의꿈·24
주인·26
시간의동굴·28
동생·30
인간사(人間事)·32
점검시대·34
아버지의무말랭이·36
희망·38

2부
제습기사용법·43
세리박에서클레오파트라까지·44
엑스터시·46
인생·48
그겨울의기억·49
새댁·50
지리산에서의아침·52
칼국수쌀국수·54
생일선물·56
이불을꿰매며·58
달자의웃음소리·60
추억의힘·62
애인들·64
연근을졸이며·66
엄마·67

3부
우울방정식·71
생명·72
눈치·73
노고단·74
아픈곳을들여다보는일·75
그많던그리움들은다어디로갔을까·76
운양동사진관·78
지루한그여자·81
봄이갔다·82
무료행복·84
그곳으로·86
함정·88
갈라파고스·90
곡소리·92
핏줄·94

4부
슬픔의무게·99
뫼비우스의띠·100
각·102
밥·104
낙엽의온도·106
달인·108
작가와술·109
프라하성의고독·110
꿀맛·112
립스틱의반란·114
남부터미널새벽풍경·116
폭락·118
남원·120
스켈레톤·122
소식·124

해설삶의순환과멈춤,그리고슬픔의무게/김정수·126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백령도표류기>

섬은온전하다

첫째날,발묶인우리일행을포근하게감싸안아준건안개였다안개로인해출항할수없음에도안개는말없이우리주변에서서성거렸다일행은모두말이없다

둘째날,안개는펜션주변까지다가왔다집과집사이의간격을가늠하기어려웠다안개속을걸었다가끔씩나타나는건물사이로도안개는치고들어왔다안개속의나를안개도찾기어려웠을것이다

셋째날,안개가길끝사잇길로조금씩빠져나가는듯하더니비가내리기시작했다그길을붙잡고나는또걸었다드문드문자리잡은웅덩이들이안개와비를고스란히안고있어걷다돌고를반복한다

넷째날,밤새펜션지붕을때린비바람소리에비바람처럼눈떠있었다

다섯째날,가이드는오늘배가뜨지못하면올라오는태풍으로삼일을더기다려야한다고말했다일행들의눈빛이변하기시작했다온전하지않았다

여섯째날,안개와비와바람이살갑게반기고사람들은무기력증과싸웠다더러는욕도허공에던져비바람의무게를더했다

일곱째날,기도했다
더이상쓸데없는욕심부리지않고
일상의소중함을깨닫고
하루하루감사하며살아가겠다고
이곳에서나가는순간부터

다음날,네시간의항해에대비해김밥한줄과멀미약을준비하고여객선대합실로갔다한명씩배에오르고어느때보다천천히김밥을씹으며꿈결처럼인천에도착했다무섭도록강한햇살이섬과섬에서의모든기억을단칼에베어냈다기도마저

섬은변함없이온전하다

<엄마>

몇년을더부를수있을까

괜히마음이초조해져
일부러일을만들어전화를한다

오늘주제는오이지

엄마가평생담갔던오이지방식을깨우치지못했다
인터넷레시피대로재작년부터인가만들어보지만

내가만든오이지를
남편이무공해로가꾸었다고
무공해를강조하면서자랑하듯보고한다

네가만든오이지는다맛있어

엄마는
내가보여준삶도다맛있었을까

엄마에게보낼오이를꾹꾹눌러대며
눈물도꾹꾹눌러댄다

<뫼비우스의띠>

파리한마리
사흘동안
집안에들어와
밖으로나가지못하고
떠돌고있다

내삶도
우주의어느한공간에서
이처럼떠돌고있으리
차마
잡을수가없다

문열어도나가지를않고
숨어있다나타나곤
나타났다간다시숨고
잊을만하면또다시찾아온다

미물과사투를벌이는이순간이
어쩌면내전생과현생
내생까지도건
싸움일지도모르지
결코끊을수없는

지울수없는
내한생(生)이
겨울한나절또의미없이
진행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