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의 이야기

귓속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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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4·3제주의 비극에 윤리적 응답으로 정면 대거리한 오광석의 시들
2014년 『문예바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한국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문학웹진 산15-1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이계견문록』,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등 두 권의 시집을 선보였던 오광석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귓속의 이야기』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80번으로 출간하였다.
오광석 시인은 태생이 제주도인지라 제주 설화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담을 수용해 현대의 역사적 인과와 연결지어 작품으로 형상화해왔다. 이번 시집 『귓속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거리를 한다. 그것은 4·3을 겪은 제주에서 맞닥뜨린 12·3 비상계엄이 저항정신을 더욱 들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주먹의 대파를 넣고 끓인 라면을 먹는 말로 시작하는 「시인의 말」은 선언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제주의 4·3 이야기는 밀교(密敎)처럼 전승되었다. 시인 오광석은 구루의 역할로 국가의 폭력과 비인간성을 말한다. 그러니 이 시집은 4·3이 발발한 제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가깝게는 여수와 순천, 대전 골령골 등이 있고, 세상 끝까지 가서 요정을 소환해 이 세계의 비밀을 풀기 위해 시적 형상화를 시도한다. 제주의 삶 자체였던 4·3은 1975년 제주 태생의 시인에게도 가혹한 삶으로 다가왔으리라. 쓸 수밖에 없는 삶과 의무감을 지녔다.
시인 오광석의 시는 망자를 향한 기억의 윤리를 중심에 둔다. 죽은 자는 기억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4·3이라는 집단적 비극에 대한 시인의 윤리적 응답이라는 위치에 이 시집이 놓인다. 그가 기억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환상성과 현실의 결합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이 아니고서는 형상화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그는 설화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이 비극의 근원을 파헤친다. 이제는 역사와 마주하는 힘을 환상성에서 찾는다. 그가 만든 시적 세계에는 발록, 요마, 몽마, 구울, 듈라한, 가고일, 트롤, 환마, 드루이드 등이 나타나 횡행하고, 어둑시니, 그슨새, 지박령 등 한국 설화 속 초자연적 존재도 빼놓지 않는다. 이비극적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 그가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 바로 이 불가사의한 이야기와 비현실적 역사와의 연결이다.

오광석 시인의 『귓속의 이야기』는 “문 닫힌 벽장 속마다 놓아둔 귓속에서 이야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오는”(「귓속의 이야기」)는 기이한 이야기가 가득한 시집이다. 생경한 이야기이면서도 기시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비극적 이야기에 대한 보편화에서 비롯되어 그럴 것이다. 오광석 시의 가장 큰 특징인 설화성과 함께 몸의 기억으로 재현되는 감각으로 시를 형상화하는 결정적인 작품은 「환마(幻魔)」이다. 이 시는 개인의 병증을 집단적 역사와 연결하는 매우 인상적인 서사를 보여준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질환이다. 인플루엔자는 인류를 오랜 시간 괴롭혀온 전염병이다. 언제나 인간과 함께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는 악몽처럼 한동안 잊고 있으면 꼭 찾아온다. 이 시는 소생의 길을 내면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가편(佳篇)이다.
오광석의 시는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자 호명이다. 그에게 시는 말 못할 역사를 말하는 통로이자, 기억 회로에 불을 켜는 장치이다. ‘밀교’는 비공식 기억의 전달 체계로서의 문학이다. 이제 우리는 이 기억의 전개도를 갖게 된 셈이다. 최근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비로소 4·3이 인류의 기억이 되었다. 4·3시는 계속 새로운 모습을 모색 중인데, 이 시집은 그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그렇게 이 시집은 문학적 이벤트 호라이즌, 그 너머의 감각으로 연결을 시도한다.
저자

오광석

저자;오광석
2014년『문예바다』신인상에「기괴한자장가」외4편으로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이계견문록』,『이상한나라의샐러리』를출간했다.현재한국작가회의,제주작가회의,문학웹진산15-1편집위원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5

1부미치는날에만나요
시오름의봄·13
청문회·14
계엄령·15
나비·16
패션시대·18
이계의존재·19
싱크홀·20
술잔속세상·22
워프·24
시간의바다·26
세상의끝에는요정들이살고있을까·28
밤의사막·30
어둠의장막·32
소주비가내리면·34
미치는날에만나요·36

2부귓속의이야기
섬의새벽·39
귓속의이야기·40
트롤의노래·41
손가락·42
전망대·44
바닷가그집·46
어둑시니·48
과거에묻힌이름·49
금능바다를바라보아요·50
바퀴없는자전거·52
박성내의밤·54
여우물아가씨·56
그슨새·58
환마(幻魔)·59
즐거운제삿날·60

3부사라진마을남겨진사람들
땅속아이·65
늘봄·66
오래된유물·68
구멍난다리·70
대살·72
허벅장단·74
좁은돌집에우리모여살았지·75
검은겨울의꿈·76
귀가·78
너산밧·80
자리왓돌담·82
숨은아이를찾으러숲으로간다·84
섬의고리·86
까마귀마을·88
동백(冬魄)·90

4부기억속에살아나는
오동도동백꽃·95
동백의꿈·96
손가락총·98
골령골사람들·100
흑백사진·102
흑백사진속아이들·104
오륙도등대·106
터진목의귀향자들·108
잠든아이를업고가네·109
부활하는아이들·110
영도등대·112
궤·114
장두의길·116
사라진사람들이돌아온다·118
구술·120

해설기억을위한끝없는이야기/현택훈·122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귓속의이야기>

그는낫으로이야기를만들지짙은어둠을타고틈새로들어오는그는낫가진이야기꾼자는어른들의귀를댕강댕강잘라아무것도듣지못하게아무말도하지못하게자른귀를모아이야기를만들지그의이야기는귓속에남은부서진섬과산의파편들잘린귀들이쏟아내는파편들이뭉쳐만든이야기목없어말못하는산사람들귀없어듣지못하는섬사람들낫을휘두르며꺼내는이야기에아이들은자지러지는데어른들은두귀를막고숨이넘어가지머리빗을빗어내듯낫끝을귓바퀴위에얹으면어른들은두눈을꼭감고이불속에숨어떠는데아이들은간지러워깔깔대며옛이야기에빠져들다잠이들지오늘도불꺼진방구석마다문닫힌벽장속마다놓아둔귓속에서이야기가스멀스멀새어나오는데그는이야기를들을수없어아이들이웃다잠드는머리맡에앉아상상하며으스스웃는귀없는이야기꾼

[대표시]

<환마(幻魔)>

독감이찾아온날침대에누워연신오돌오돌떨다눈을뜨자거대한절벽에서있었지아래에돌풍이치고올라와휘말려빙글빙글돌다어느꽃밭에떨어졌지만발한꽃들을넋놓고보는데꽃감관이나타나서천꽃밭을침입한이유를물었지돌풍에휘말려왔다고하자꽃감관이이르길섬의아이가항쟁을끝내지않고이리도망쳤느냐하늘의법도를어긴대역죄로초열지옥으로떨어지리라산사람이어찌지옥에가느냐며꽃밭을구르는데대지가갈라지며솟구치는화염들활활타오르는몸을바라보며비명을질렀지나는아니오나는아니오비명을지르다일어나돌아보니뜨거운온돌방바닥이네불꺼진열기가득한어린날익숙한좁은방안무슨꿈인가싶어다시돌아보자사십년젊은어머니가무슨땀을그리쏟아냈냐며연신이마를닦아내고있었지하꿈인지환상인지이리도지독하네눈물이뚝뚝떨어져내리는데사내자식이이까짓독감하나이기지못한다며타박하는아내의목소리에현실로돌아올수있었지

<너산밧>

허물어져가는돌담
집터만남은자리
희미해진올레
여전히너는서있다
또렷하게떠오르는사람들
돌아오지못하고
그냥너만살았다
너만마을터를지키고있다
빌레못으로숨어들어간사람들
출구없는어둠속을헤매다
육신이녹아사라지면
산을내려온바람을타고
돌아오는사람들
홀로살아터를지키는
너만살았다고아무도타박하지않아
그냥오래된이야기라
스쳐가는사람들에게
나는여전히살아간다고
마을을지키고있다고
입구에서바람이불때마다
팔을들어흔들어보인다

애월읍어음리에있었]던제주4·3당시사라진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