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의 슬픔

옆구리의 슬픔

$12.00
Type: 현대시
SKU: 9791165121839
Categories: ALL BOOKS
Description
어떤 순간에 발생한 우연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오두섭의 시들
1979년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긴 공백기를 보낸 뒤 『소낙비 테러리스트』, 『내 머릿속에서 추출한 사소한 목록들』 등의 시집을 내며 활동해오던 오두섭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옆구리의 슬픔』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83번으로 출간하였다.
오두섭의 시집 『옆구리의 슬픔』은 순간이라는 시간적 개념과 우연이라는 이 세계의 불연속적 특성을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한 매개로 삼고 있다. 그것은 구조된 세계를 합리적 질서에 의해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초월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현실을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그의 시에 그려지는 일상은 현실의 재현과는 거리를 가지며 일상적 이해보다는 이면적 진실을 추구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면적 진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육체적 감각이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어떤 순간에 발생한 우연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예민한 육체적 감각을 이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집 『옆구리의 슬픔』의 가장 앞에 실린 「깃털의 시」는 ‘서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집 전체가 사실 시쓰기에 대한 메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표성을 보여주는 시라 할 수 있다. “깃털”의 행방을 쫓아가는 미시적 시선은 섬세한 감각을 동반하고 있다. 허공에 뜬 “깃털” 하나가 공중을 부유하다가 문턱을 넘어 실내로 들어온다. 공중을 부유하는 “깃털”에서 “기억상실자처럼 얼굴들 사이를 유영하며 티격태격하는 몸짓이나 작별 직전의 포옹 같은” 것을 떠올린다. 구체적인 사물인 “깃털”에서 관념적인 몽유의 감각을 불러오는 독특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공중에 떠올라 순간 정지한 정적의 세계는 적어도 현실적 패배로 귀결될 것이 분명한 “내 언어로는 닿을 수 없”(「겨울 폭포」)는 세계인 동시에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하여 “나의 일필(一筆)을 믿는 것이다”(「연필들」)라는 당당한 선언을 하게 된다.
오두섭 시인의 시에서 혼돈스러운 낱개의 현실들이 그대로 펼쳐진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되는데 시 「난파선」의 출발도 그러하다.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 혹은 감각의 흔적을 붙들고 도대체 무엇인가를 고뇌하다가 자신의 삶의 어느 지점과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파도에 휩쓸린 빈 구명정과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며 수면 위에 서 있는 나의 형상은 혼란 그 자체이다. 난파의 흔적이 역력한 풍경 속에서 “포구에 얽힌 밧줄을 풀고 있는/ 누군가를” 본다. 그리고 밧줄을 풀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의 모습을 겹쳐본다. 아직 묶인 배는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는 생각한다. “부서진 톱날처럼 휘어진 수평선, 그 끝에서/ 돛을 부러뜨려야 했던 자는, 나였을까”라는 물음에서 난파의 능동적 주체로서의 “나”가 등장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난파로 인지하고 있으며 난파라는 상징적 의미가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은밀히 이야기하고 있다. 낙조 속에서 불타오르는 “배 한 척”은 부러진 돛으로 인해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비장한 풍경을 연출한다.
오두섭의 시는 원시적인 생명성의 가치를 옹호하고 자신만의 세계 해석에 골몰하고 있다. 그것은 끝내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의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철학적 언술을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시집 『옆구리의 슬픔』을 읽고 시쓰기에 대한 혹독한 자기 확인의 욕망과 그것이 몸과 사유로 어떻게 체현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부조리한 세계에서 스스로를 난파시킴으로써 자유로운 불안을 수용하는 용기가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되는지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지점은 자기만의 세계 해석을 통한 철학적 사유를 시적으로 관철한다는 점이다. 서정성을 추구하는 많은 시인들이 이 지점에서 대개 머뭇거린다. 그러한 점에서 오두섭 시인의 시적 개성이 빛을 발한다.
저자

오두섭

경북선산에서태어났다.1979년도매일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소낙비테러리스트』,『내머릿속에서추출한사소한목록들』을냈다.한국가톨릭문인협회회원이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깃털의시·13
전지(剪枝)·14
겨울폭포·15
불·16
이월·18
빈병·20
침습하는아침·22
떠도는말·24
연필들·26
몸의시·28
종극(終極)·30
삶,혹은·32
어둠의질량·34

2부
호수·37
숲에들때는·38
여인이있는정물·40
세겹의구름·42
생가의봄·46
흙의뿌리·48
안단테칸타빌레·50
네번째파도·52
달밤·54
월식·56
전봇대의시·58

3부
봄날의교신·61
오늘들·62
조문객들·65
골목에서·66
그날우리들의대화·68
그날한낮의택배물분실에관하여·70
하수구의노래·72
혹은추상적이거나·80
한겹의생·82
잔설·87
나는무덤이다·88
봄그즈음·90

4부
나사·93
종소리·94
이별의미래·95
밥·96
forgetmenot·98
옆구리·100
관성·101
조우·102
웃음소리들·104
난파선·106
스캔들전야·107
당신의안과밖·108
물의기억·110
연륙교에서·112
투고·114

해설패배의운명을감수한난파선의항해/우대식·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