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 (남유정 시집)

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 (남유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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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말에서 받은 고통이나 상처를 스스로 반짝이게 하는 방법을 깨달은 시들
2018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유정 시인이 문단 데뷔 7년 만에 첫 시집 『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86번으로 출간했다.
말과 연애하는 자가 시인이고 말과 싸우는 자도 시인이다. 시인은 말에 예민하고 때로는 과민하다. 말에서 희열을 느끼고 말에서 절망을 느끼는 자, 같은 말이라도 뉘앙스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자, 말의 서슬에 가장 많이 가슴을 베이는 자, 창작의 고통으로 백지 A-4를 더 두려하는 자가 시인이다. 남유정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예민한 만큼 더 자주 더 깊이 상처를 받는다. 그의 좋은 시편들이 말에서 비롯된 상처의 기록인 경우가 많다.
상처는 건드릴수록 덧난다. 특히 말로 인해서 생겨난 상처는 곱씹으면서 커지고 깊어지기도 하지만 시 「하얗게 부서진 말들」처럼 ‘소문’이라는 악성바이러스까지 더해져서 악화되기 십상이다. 잠자리에 들면 더욱 증폭되는 날선 말들의 데시벨 때문에 잠은 포기해야 한다. “곱씹으며 삭혀보지만” 그건 삭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후벼파는 일이어서 “모래알 씹듯” 입안 가득 고이는 비명으로 잠과 밤은 겉돌 수밖에 없다. “뾰족한 말은 모난 돌이 되어 날아들고/ 가슴에 부딪히며 깨어져 가는 몽돌들” 때문에 잠자리는 “거친 파도가 난무하는 바닷가”처럼 혼란스럽다.
하지만 남유정 시인이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식은 가해자를 향한 저주와 반격의 앙갚음이 아니라, “파도에 둥글어지는 날선 조각들”을 “파도 속에 밀어 넣”어 다독이고 삭이는 견인(堅忍)과 용서이다. 나를 향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해하지 못한 말들”을 해변의 갯바위처럼 고스란히 견디면서 “망각 속에 꿈을 꾸”듯이 하얀 포말로 사라져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남유정은 말에서 받은 고통이나 상처에서 스스로를 반짝이게 하는 방법을 깨달은 시인이다. 표제시 「유난히 반짝이는」에서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시인은 “권태와 졸음을 떨치고” “인생 3막이 시작”되면서 “낭창 휘었다 탄력을 회복하는 거미줄”처럼 재생력이 생겼다. 우연히 우러러본 하늘에는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꼬리치는 것 같은 권적운(卷積雲)이 보인다. 마치 바닷속을 떼지어 몰려가는 정어리떼 같다. “혹등고래들이 뿜어올린 공기방울 울타리 속으로/ 흩어졌다 모”이는 한 무리의 은사시 정어리떼. 남유정의 아픈 시들은 시인을 견디게 하고 독자를 치유하게 한다.
시는 상처의 기록이다. 하지만 상처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상처에 머물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혹은 견디는지가 문제다. 지극히 아픈 상처는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저 껴안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시는 이때에 나오는 부산물이면서 진통제이다. 그래서 남유정의 아픈 시들은 시인을 견디게 하고 독자를 치유하게 한다. 이것이 남유정의 첫 시집 『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저자

남유정

저자:남유정
1970년경남창녕에서태어나서울에서자랐다.
2018년『시와경계』신인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현재(사)한국문인협회하동지부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유난히반짝이는

까만울음·13
티눈·14
비문증·15
흰공·16
하얗게부서진말들·17
물그물·18
유난히반짝이는·19
튤립·20
카프카의성·21
저녁루틴·22
산띠산띠산띠·24
혼밥·26
발자국소리·27
반말·28
건기·30

2부너무친밀한당신

자화상·33
지워버린전화번호·34
가로수·35
하지정맥류·36
눈발·37
멸치한마리·38
턱의표정·39
꽃비·40
참돔미역국·42
노란입술·44
속도의경계·46
폐어구스카프·47
독거노인·48
너무친밀한당신·50
내팔자·51

3부어디를가실라고

호접란·55
질긴것들·56
황반변성·58
이불빨래·60
엄마의눈썹·61
엄마의밥상·62
공갈빵·64
어디를가실라고·65
추억필름·66
꽃상여·68
월미도디스코팡팡·70
대문·71
남편의지갑·72
배롱나무·73
문어오림·74

4부설산습지가는길

하늘연못·77
설산습지·78
초파일·79
나락냄새·80
산책·81
기울기·82
후박나무·83
구부러진못·84
해바라기·85
북극성·86
키질·87
저녁·88
청사포에서·90
앗!지네다·91
벚나무아래·92

해설고통의바다를건너는은사시정어리떼/김남호·93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몰려가던바람이그물을쳐놓았다
낭창휘었다탄력을회복하는거미줄
구름이파리들도짧게꼬리친다

푸른하늘에유난히반짝이는은사시정어리떼
혹등고래들이뿜어올린공기방울울타리속으로
구름이우왕좌왕하는사이
격렬한몸짓으로돌진하는무리
우리삶도격렬비열저러하리라

흔들릴땐단도직입빛을향해진격할일이다
빛의길은어떤바람에도꺾이지않는다
흔들리고출렁이다휠뿐

그속을한결같이헤엄치는물결
오십년이다,권태와졸음을떨치고
스스로빛이되어저어가는오후3시
나도저렇게반짝이며헤엄쳐왔다
조금전인생3막이시작되었다
사랑하나세월하나
무심히건너가는중
---「유난히반짝이는」중에서

이숲에는끼익꺼어억거리는소리
할머니집부엌문열리는소리
호이잇호이잇신호를보내는휘파람새소리
삼정마을입구에서설산습지가는길

절터와화전민이살았다는곳
전쟁통에모두죽임을당했을까
소개령이내려져아랫마을로내려갔을까
온마을이자박자박첨벙첨벙물의나라

물에비친대나무소나무느티나무들
소나무가없었다면대나무는넘어졌을까
서로기대어의지하는듯
바람따라으이익으이익소리

인적없는곳나무들이살고있는마을
다리를슬쩍걸쳐놓은듯
어깨를툭치고팔짱을끼고흔드는듯
홀딱벗고홀딱벗고검은등뻐꾸기소리
---「설산습지」중에서

소문을집어나르며거품무는집게발들
귓가에몰려들어잠못드는밤
곱씹으며삭혀보지만모래알씹듯겉돈다

거친파도가난무하는바닷가
뾰족한말은모난돌이되어날아들고
가슴에부딪히며깨어져가는몽돌들

이해하지못한말들
망각속에꿈을꾸고
파도에둥글어지는날선조각들

닳아진말들을파도속에밀어넣는다
검은물결속에하얗게부서지는포말
달빛공기방울이하늘로날아오른다
---「하얗게부서진말들」중에서

매일전화하는당신좋아요
보고싶다고찾아오는당신좋아요
사랑한다면암그래야지요
친구보다도더중요한당신

아침밥을함께먹어요
이제서로를챙겨야합니다.
하루종일뭘했는지궁금합니다
핸드폰비번을서로공유해요
당신은비밀이있나요?

당신이좋아하는장미를주문합니다당신이먹고싶어하는파스타를만듭니다당신이가고싶어하는바다로여행을갑니다
그런데,당신은들꽃을좋아한다니요당신은된장국을좋아한다니요당신은집에서쉬는걸좋아한다니요그것도혼자서

우리는서로를쳐다보며닮아갑니다
서로를잃어갑니다
어느새한몸인우리
---「너무친밀한당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