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엄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깊은 골짜기, 따뜻한 품으로 걸어온 최영규의 시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시집 『나를 오른다』, 『크레바스』, 『설산 아래에 서서』 등을 선보였으며 (사)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최영규 시인이 시집 『엄니에게』를 출간했다.
최영규 시인은 1996년 등단 이후 줄곧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그 치열한 체험을 시적 언어로 치환해왔다. 그의 시적 궤적은 설산의 크레바스를 가로지르는 철저한 실존적 고독과 상처를 바탕으로, 수직적 시공간 속에 펼쳐져 있었다. 최영규의 시에서 ‘수직’은 중력에 굴복하는 하강의 통증이자 자아가 감당해야 할 실존의 무게로 제시된다. 즉, 이전의 작품들이 수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고독과 고통의 ‘상승과 하강의 미학’에 기반했다면, 이번 시집 『엄니에게』는 그 수직의 삶을 견뎌낸 뒤 도달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최영규의 시에서 ‘엄니(어머니)’는 단순한 혈연의 존재를 넘어, 세상에 처절하게 버려진 실존적 존재들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거대한 대지(Earth)’로 승화된다. 시인에게 삶은 끊임없는 결핍과 상실의 연속이지만, 그 고통을 멈춰줄 유일한 구원처는 ‘어머니’라는 근원적 대상이다. 이번 시집 『엄니에게』의 핵심 주제는 존재의 시원인 ‘어머니’로 귀환하여 삶의 허기를 치유하려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여정에 있다. 이 시집에서 어머니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젖냄새’와 ‘살덩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치환된다. 이번 시집은 바로 그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고백이다. 그가 평생 오른 것은 산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가장 깊은 골짜기, 가장 따뜻한 품을 향해 걸어왔다.
또 ‘갯벌’은 모든 오염된 기억을 씻어내는 순화의 장소이다. 시인에게 기억은 고통이지만, 그 기억을 씻어주는 것 또한 ‘갯벌’로 상징되는 모성(母性)의 이미지이다. 시인은 개인적 차원의 ‘모성(母性)’을 보편적 대지의 이미지로 치환시키고 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순화시키며 정화시켜주는 ‘갯벌’로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인의 고립된 실존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고향’과 연결지을 때, 최영규 시인의 ‘어머니’는 근대적 주체가 잃어버린 ‘고향의 상실’을 복원하는 공간적 의미로 확장된다.
이처럼, 시인은 시어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현대인이 겪는 고립과 소외를 대지의 생명력으로 치유하려는 시적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더 나아가 여기서 재생된 ‘어머니’의 모성(母性)은 ‘대지’의 가이아(Gaia)로 확산된다.
최영규 시학이 도달한 최종 목적지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근원적 상실을 우주적 생명력인 ‘달빛’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뼈뿐인 육신’이 대지가 되어 자식을 먹이듯, 시인은 자신의 상처로 타자의 체온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짓는다. 이로써 고독한 단독자의 슬픔은 보편적 존재들의 ‘배려와 소통’의 서사로 확장되며, 실존적 고통이 생태적 구원으로 승화되는 ‘실존적 생태주의’로 승화된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시집 『나를 오른다』, 『크레바스』, 『설산 아래에 서서』 등을 선보였으며 (사)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최영규 시인이 시집 『엄니에게』를 출간했다.
최영규 시인은 1996년 등단 이후 줄곧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그 치열한 체험을 시적 언어로 치환해왔다. 그의 시적 궤적은 설산의 크레바스를 가로지르는 철저한 실존적 고독과 상처를 바탕으로, 수직적 시공간 속에 펼쳐져 있었다. 최영규의 시에서 ‘수직’은 중력에 굴복하는 하강의 통증이자 자아가 감당해야 할 실존의 무게로 제시된다. 즉, 이전의 작품들이 수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고독과 고통의 ‘상승과 하강의 미학’에 기반했다면, 이번 시집 『엄니에게』는 그 수직의 삶을 견뎌낸 뒤 도달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최영규의 시에서 ‘엄니(어머니)’는 단순한 혈연의 존재를 넘어, 세상에 처절하게 버려진 실존적 존재들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거대한 대지(Earth)’로 승화된다. 시인에게 삶은 끊임없는 결핍과 상실의 연속이지만, 그 고통을 멈춰줄 유일한 구원처는 ‘어머니’라는 근원적 대상이다. 이번 시집 『엄니에게』의 핵심 주제는 존재의 시원인 ‘어머니’로 귀환하여 삶의 허기를 치유하려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여정에 있다. 이 시집에서 어머니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젖냄새’와 ‘살덩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치환된다. 이번 시집은 바로 그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고백이다. 그가 평생 오른 것은 산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가장 오래된 산, 가장 깊은 골짜기, 가장 따뜻한 품을 향해 걸어왔다.
또 ‘갯벌’은 모든 오염된 기억을 씻어내는 순화의 장소이다. 시인에게 기억은 고통이지만, 그 기억을 씻어주는 것 또한 ‘갯벌’로 상징되는 모성(母性)의 이미지이다. 시인은 개인적 차원의 ‘모성(母性)’을 보편적 대지의 이미지로 치환시키고 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순화시키며 정화시켜주는 ‘갯벌’로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인의 고립된 실존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고향’과 연결지을 때, 최영규 시인의 ‘어머니’는 근대적 주체가 잃어버린 ‘고향의 상실’을 복원하는 공간적 의미로 확장된다.
이처럼, 시인은 시어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현대인이 겪는 고립과 소외를 대지의 생명력으로 치유하려는 시적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더 나아가 여기서 재생된 ‘어머니’의 모성(母性)은 ‘대지’의 가이아(Gaia)로 확산된다.
최영규 시학이 도달한 최종 목적지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근원적 상실을 우주적 생명력인 ‘달빛’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뼈뿐인 육신’이 대지가 되어 자식을 먹이듯, 시인은 자신의 상처로 타자의 체온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짓는다. 이로써 고독한 단독자의 슬픔은 보편적 존재들의 ‘배려와 소통’의 서사로 확장되며, 실존적 고통이 생태적 구원으로 승화되는 ‘실존적 생태주의’로 승화된다.
엄니에게 (최영규 시집)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