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은 노트 (손준식 수필집)

시간을 담은 노트 (손준식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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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개인의 내밀한 기억을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시키는 힘, 손준식의 첫 수필집
2018년 『서울문학』 시, 2023년 『인간과문학』 수필로 등단하고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협 회원, 서울문학문인회 부회장 겸 이사로 활동하며 시집 『어느 민들레의 삶』, 『나뭇잎 편지』를 선보인 후 제29회 영랑문학상을 수상했던 손준식 작가가 첫 수필집 『시간을 담은 노트』를 출간했다.
손준식의 첫 수필집 『시간을 담은 노트』는 시간을 응시하고 정서로 기록하는 문학적 노트이다. 그의 작품은 각각의 순간들을 붙들고 기억의 닻을 내린다. 이는 시간은 흘러가지만 글은 머문다는 문학의 본질이다. 글 속에 드러난 장면들은 독자의 기억과 맞닿으며 공통의 체험으로 전환된다. 작품은 개인의 내밀한 기억을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시키는, 조용하고 단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가족의 정의가 흐려지는 시대, 손준식의 수필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이 흘러가도 어떤 마음은 머물러 있다고. 우리가 다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움이 아직 살아 있다면, 가족은 해체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그의 수필이 바로 그 증거이다.
손준식의 수필에서 가족의 역사가 잘 드러난 작품은 「엄마의 기도」이다. 엄마의 기도는 작가의 엄마가 작가를 위해 드리는 기도이며 작가가 남편과 자녀를 위해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엄마의 기도」는 삶의 고통과 죽음의 불가해함, 사랑과 종교, 회한과 구원의 정서를 한데 아우르는 치열하고도 고요한 문장이다. 또 가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작품은 먹이를 나르는 참새와 자신의 어머니 모습을 나란히 배치한 「모성애」, 할머니인 자신과 자신을 키운 할머니를 기억하는 「할머니의 치맛바람」, 아들 회사에서 만든 배낭이 모티브가 된 「배낭을 메고서」,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아들의 효심」 등이다.
손준식 수필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개념은 ‘유머’이다. 이 작품집에서 유머는 고통을 감당하는 존재의 방식이다. 니체는 “인간은 유머를 통해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고 했고, 베르그송은 유머를 “삶의 경직성을 풀어내는 창조적 행위”라고 해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손준식의 유머는 특히 노년기, 간병, 가족갈등처럼 무겁고 감정적인 주제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정서적 완충지대로 작용한다. 작가는 마트에서 넘어져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들었을 때조차 멍을 가리기 위해 쓴 “선글라스가 낮은 콧등을 타고 흘러내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내 이럴 줄 알았지」)고 적는다. “어머니, 팬더곰이 되었네요” 하는 며느리의 농담도 수치심과 노화의 현실을 자기풍자적으로 유머화하면서 그 감정을 ‘웃긴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기술이다. 이때의 유머는 자기기만이 아니다. 존재의 균형을 잡는 사유의 방식이며 삶을 스스로 재해석하고 수용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손준식 수필집은 시간의 미학이며, 한 여성의 일생을 따라가는 문학적 시간의 아카이브이다. 수필에서 시간은 사건의 흐름이 아닌 기억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손준식의 수필에서도 시간은 회상과 현재가 교차하는 순환적 시간에 가깝다. 표제작 「시간을 담은 노트」는 손준식 수필집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제, 시간과 기록, 존재와 기억, 자기돌봄의 글쓰기를 가장 집약적으로 담아낸 작가적 자의식의 선언문이자 삶에 대한 문학적 고백이다.
이 수필은 “오래된 노트를 펼친다”는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단지 노트를 펴는 동작이 아니라 기억을 소환하고 시간의 궤적을 다시 걸어가는 의식의 문을 여는 장면이다. ‘진한 잉크 냄새’라는 촉각적 이미지, ‘한 줄 시로 시작된 기록’이라는 문장은 삶의 정체를 감각적 언어로 붙잡으려는 문학적 열망을 드러낸다. 손준식은 잊히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정리하고, 감정을 되새기며, 존재의 의미를 되짚기 위해 쓴다. 그래서 이 수필은 하나의 선언이다.
“나는 나의 노트에 나의 삶을 온전히 담았다. 그 노트는 곧 나 자신이다.”
저자

손준식

저자:손준식
경북칠곡군지천면신동리의‘웃갓’에서태어났다.
2018년『서울문학』시,2023년『인간과문학』수필로등단했다.
(사)한국문인협회회원,한국현대시협회원,서울문학문인회부회장겸이사로활동중이며저서로시집『어느민들레의삶』(2020)과『나뭇잎편지』(2024)가있다.
2024년4월에시「추억잠든곳에」로고향웃갓낙화담에시비가세워졌고제29회영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시간속을거닐다·4
추천의말|에토스적인설득미학|유한근·7

PartⅠ내이럴줄알았지
의자·15|내가부르는시월의노래·20|남편과술·24
그나물에그밥·30|내이럴줄알았지·36|모자·41
두아들이야기·45|터널속에서·51

PartⅡ세마리고양이
6월어느날밤에·59|끝자락에서보니·63|모성애·67
생일·71|세마리고양이이야기·74
애벌레의꿈·78|장수사진·80

PartⅢ아홉수와삼재수
배낭을메고서·87|특별한조기교육·92|할머니치맛바람·96
환선동굴을다녀와서·104|물안개공원·109
손자의중학교졸업식·113|아홉수와삼재수·117|흰눈발타고·121

PartⅣ식혜한사발
꽃무늬양산·127|핑계·132|어깨동무내동무·136
식혜한사발·143|낯선고향낯익은친구·146
농협,나의안식처·151|연옥여행을마치고·159

PartⅤ들국화그림자
시간을담은노트·165|웨딩드레스를입고싶었지만·168|사진·172
들국화그림자·176|그때그순간·180|잃어버린음식·184
문학의길을걷다·189|북콘서트를마치고·193|시비제막식·199

PartⅤ칠곡한티가는길
꿈이야기·207|엄마의기도·211|칠곡한티가는길·217
레지오장장례미사·225|신심이불타는날·228
기적의성모상·231|아들의효심·235

해설|흐르는시간,머무는마음|한복용·239

출판사 서평

추천사

손준식수필읽기는언제나즐거움을준다.지난세월로우리를데려다주는타임머신을탄듯자연스럽게소환된공간속으로빨려들어간다.가독성이강하다는것은작품의공감력과감동력그리고흡인력이강하다는것인데.이는글의색깔즉수필문채(文彩)의힘과더불어독자를설득하는힘때문이다.그힘은손준식의문채가가진사유의호흡에서나온다.산문의문체도시문체처럼운율이있다.그운율은사고또는사유의흐름에따른리듬으로,수필에생명력을부여한다.그리고독자를끌어당겨설득한다.손준식수필의문채는감각적이다.이는그가시인이기때문인지도모른다.그뿐만아니라손준식의수필은서사적이다.자연인으로서살아오는동안온축된체험이많기때문일것이고그것을풀어내는작가로서의상상력덕분일것이다.
―유한근/문학평론가,SCAU대교수

책속에서

내밑으로다섯살어린남동생이있었다.동생이고등학교2학년이던그해여름을나는잊지못한다.새학기첫날,동생은어머니가빳빳하게다려준하복을입고기차를타기위해집을나섰다.그러고다시는집으로돌아오지않았다.기차통학을하는친구들과교모를던지며여느때처럼장난을치다가,발을헛디딘동생이기차에서추락해하늘나라로갔다.
그날저녁,저녁밥을다먹도록동생이돌아오지않자온식구가걱정을하고있었다.그때이웃학생이다급하게대문안으로뛰어들어왔다.“저…윤식이가기차에서…”하면서다음말을잇지못했다.어머니는맨발로안마당을뛰어내리면서“왜!죽었나?!”하고큰소리로물었다.나는그때우리어머니가왜저러시나했는데,어머니의직감은무서우리만치적중했다.
하늘이무너지는슬픔으로장례를치렀다.어머니는말로다할수없는충격으로몸져누워몇날며칠식음을거부했다.움푹들어간눈은살아있는사람의형상이아니었다.그대로돌아가실까봐무서웠고그대로박제가될듯순간순간가슴이떨렸다.
나는그날이후로남학생들이하복을입고지나가는것만봐도가슴이내려앉았다.어머니는기차소리가들리지않는곳에서살고싶다고날마다통곡했다.어둡고괴로운마음의터널을우리친정식구들이어떻게지나왔는지,생각만해도까마득하다.오로지어머니께서성모님을의지한채기도하는마음으로버텼기에가능했지싶다.그덕분에슬픔의시간을무사히건널수있지않았나생각한다.그때내가어머니를위로해드릴수있는말은“엄마,성모님을생각해보세요.외아드님을떠나보내신십자가의길,그고통에비하면우리의슬픔은참아야하지않겠어요?”이한마디뿐이었다.
―「엄마의기도」부분

눈주위에있던멍이점점얼굴밑으로내려오면서색깔이옅어졌다.머리혹도차차작아지다가두달이상걸려서원래대로돌아왔다.오랜만에만나는지인이자기도넘어져서이마에멍든적이있다고,자기는그즉시병원에가서엑스레이를찍었다며내머리에난혹을걱정했다.그때서야나는엑스레이도찍지않았노라고했다.그는나에게미련하다면서혀를찼다.그만하기다행이지,내출혈이라도있었으면어쩔뻔했느냐고다시걱정을이었다.그사람말대로머릿속에서미세한출혈이라도일어났으면지금쯤나는병원에누워있거나이세상사람이아닐지도모른다.아찔했다.내미련한행동이부끄러웠다.
건강염려증도문제이지만나처럼너무무뎌도문제이다.매사조심성없고성격이급한것도문제라면또문제이다.몸도둔하면서생각이빠르니엇박자가날수밖에.
내가여기저기부딪힐때마다내이럴줄알았지,하며혀를차던남편얼굴이다시떠올랐다.개구쟁이사내아이둘을키우면서내성격이변한걸그는알았을까.눈을떼면두아들이일을터트리니한시도긴장을놓을수없었다.직장에다니랴,아이들돌보랴몸이열개라도모자랐다.아이들을친정에맡겨놓고도내시간은일들로가득했다.할일이쌓이니생각이넘쳐나고몸이곳저곳에알수없는멍이들어있었다.남편은속도모르고내게덤벙댄다며나무라기만했다.일을줄이라고도했다.갑자기그의따뜻한목소리가그리웠다.
―「내이럴줄알았지」부분

아들의배낭사업이자리를잡았다고는하나,생각할수록가슴한편이찡해오는건그때나지금이나다르지않다.생존경쟁의짐을지고외롭게달리는가장의모습이떠오르기때문이다.내가안쓰럽게바라볼때마다이젠사업을반석위에올려놓았으니걱정하지말라고하는데,그래도되는지마음이쓰인다.아들은맘껏웃으며살아도된다고빙긋웃어주었다.
지금은베트남사업장관리를공장장에게맡기고아들은한국사무실에서일한다.나와가까이있고싶다고했다.아들은나와같은아파트같은동바로옆집에살면서하루에도몇번씩얼굴을본다.출근할때마다하이파이브를하자고건너와귀찮게팔꿈치로툭툭친다.내가바쁘다고하면한번쯤빼먹어도되련만,그것을하지않으면안되는것처럼아예움직이지않을태세이다.손바닥이한번에맞지않으면짝,하고기분좋게맞을때까지‘다시’를외친다.어느날엔약속이있어서아들보다먼저집을나섰는데주차장까지뛰어나와기어이하이파이브를하고차에올랐다.나는공연히투덜대긴해도아들이엄마의기운을얻어하루를버티려고그럴거라생각해서얼마라도해준다.
친구들과여행가려고짐을챙긴다.아들이만든배낭이다.가벼운데다가멋도있고값도나가보여서‘명품가방’을멘기분이다.하긴명품아들이만들었으니명품인게맞다.배낭을아들머리쓰다듬듯손바닥으로쓰윽쓰다듬어본다.그리고어깨에멘다.아들이살아온삶의무게를그배낭으로부터온전히느낀다.손가방과는사뭇다르다.
마음같아선하늘위에유유히떠가는흰구름한뭉치담아서좋은나의아들과어디라도떠나고싶다.
―「배낭을메고서」부분